피차 구걸하는 게 아니다.
대중매체나 SNS를 통해,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에게 갑질하는 사람의 사례를 종종 본다. 그런 갑질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당연하다. 돈 몇 푼 따위로 그들을 아랫사람 보듯 하는 횡포는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의 가족이고 친척이며 친구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얼마나 고단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구걸하는 게 아니다. 돈의 대가로 서비스와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편, 그 반대의 목소리도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이다. 합당한 ‘서비스’를 기대하고 돈을 지불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서비스를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음식의 맛이 없는 경우는 다 말해 무엇하랴. (외식 사업을 하면서 왜 맛이 없게 만들어 내놓는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한 사람이다.) 하지만, 지불한 돈이 아까운지 안 아까운지 결정하는 건 맛보다 ‘친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절한 대접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영업장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내 돈 내고 박대받는 기분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친절하게 손님 대응할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있으면서 창업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게 불가사의하다.
손님 역시 구걸하러 간 게 아니다. 돈의 대가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다.
자영업자와 손님의 관계는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계약 관계이고, 서로 존중해야 하는 상호 인간관계이다. 그런 면에서 갑이니 을이니 위아래 관계를 연상하는 이런 용어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늘 나는 갑 아닌 갑의 위치에서 을에게 바라는 바를 말해보고자 한다.
자부심 넘치는 카페 주인장 할머니
내가 다니는 도서관 앞에는 머리 하얀 할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있다.
머리가 하얗다 뿐이지, 실제 나이는 잘 가늠하기 어렵다.
언젠가, 샌드위치나 먹을까 해서 그 카페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주인장의 풍모와 분위기에서 뭔지 모를 자부심이 가득 드러나는 걸 느꼈었다.
좋게 말하면 당당하고 나쁘게 말하면 거만한 그런 느낌.
요즘 눈만 돌리면 존재하는 카페의 ‘친절’에 익숙해 있던 터라, 그런 주인을 본다는 건 당황스러웠고, 당연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안 갔었는데, 그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잊어버렸었다.
한 달 전쯤, 휴관일인 줄 모르고 도서관에 갔더니 문이 닫혀 있었다.
그냥 돌아오기가 내키지 않는 참에 그 카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거기서 좀 작업을 하면 되겠다 싶어서 들어갔다.
작은 규모의 동네 카페인데다가 나이든 분이 운영하는 데라서, 혹시 하는 생각에 들어가면서 카페 안에 노트북 연결할 콘센트가 있냐고 물었다. 주인장 할머니는 아무 대꾸를 안 한다.
못 들었나 싶어서 한 번 더 물으니 말없이 손가락으로 콘센트를 연결할 수 있는 구석 자리를 가리킨다.
얼떨결에 차를 한 잔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지만 후회가 밀려왔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손님 맞는 반응이 영 시원찮은데... 다른 데로 갈 걸... 괜히 차를 시켰네.... 요즘 흔하디 흔한 게 카페인데.... 내가 굳이 왜 여길....’ 등등.
차를 받아 오면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괜히 들어왔나 보네요”라고 했더니, “다짜고짜 말하니까...”라며 퉁명스런 목소리로 대꾸한다.
순간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하면서 그 장면을 리플레이해 보았다.
돌이켜 보니 나이든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카페에 갔을 때보다 특별히 더 정중하게 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도 확실치 않다.)
그래도 자영업자들이나 종업원들에게 예의를 차리려고 조심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는, 문제가 될 정도로 말을 건넨 것 같지는 않았다. 내 착각일까? 어쨌든 그의 불편한 심정은 나에게도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더 불쾌해졌다. ‘아니, 그럼 뭐 어떻게 물어봐야 되는데?’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시작하자, 주인장은 일부러 내 자리까지 오더니 ‘혹시 인터넷 시험 보는 건 아니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그 역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인터넷 시험을 보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어서 ‘얼마나 있을 거냐’고 물어본다. 이런 걸 묻는 주인은 처음 본다. 카페에 손님은 나 말고 단 한 명이 있었다. 카페는 도서관보다 의자도 불편하고, 도서관처럼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도 없어서 길어야 두세 시간인데...
이래저래 기분이 잡쳤지만 이왕 차까지 시켰으니 내 할 일 하기로 한다.
카페 주인과 지인인 듯한 (나 말고 유일한) 손님이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가 간간히 귀에 들어온다. 손님이 주인장에게 ‘선생님’이라고 지칭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니 왈칵 더 짜증이 났다. 또다시 내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횡행했다.
‘아, 그러셨어? 선생님이라서 그렇게 도도하신가?’
‘선생님이면 선생님이지, 대접받으려면 이런 일을 하지 말았어야지...’
‘손님이 모두 아랫사람으로 보이나?’
‘나도 선생님이었거든요, 쳇.’
고학력 전문직 출신의 자영업자가 주는 불편함
고학력 전문직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의 자영업자는 손님 입장에서는 늘 편안치 않다.
자기는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라는 티를 온몸으로 내뿜는다.
자기는 원래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라는 외침도 온몸에 묻어 있다.
당신들보다 내가 더 뛰어나고 내가 더 잘났다고 틈만 나면 증명하고 싶어 한다.
현직에 있을 때, 회식을 위해 교외에 있는 한정식집을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다.
‘품격있는’ 집이었다. 식사하는 방에 진열된 도자기랑 수공예품들에 감탄하고 있는데, 주인이 들어와서는 자신의 화려한 이력과 진열된 물건들의 가치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싫은 법이다. 당연히 그 집은 다시 가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식당에 ‘강의’를 들으러 간 것도 아니고, 전문가를 ‘뵈러’ 간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단지 동료들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즐거운’ 대화를 하려고 간 것이고, 그러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였을 뿐이다.
식당 주인은 고가의 진열품과 전문가적 식견을 자랑함으로써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손님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돈을 버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전문가’ 출신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카페는 피하고 싶다.
손님을 편하게 해 주려는 마케팅 전략
언젠가 한 백화점에서, 종료 시간이 되도록 머물다가 영업이 끝났다는 음악방송을 들으며 나온 적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가득 메운 여성들은 알고 보니 백화점 직원들이었는데, 그들의 화려하고 세련된 옷차림에 놀랐었다. 그제야 그들도 어느 손님 못지않게 예쁘게 치장하고 다니는 ‘일반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근무시간에는 수수한 유니폼을 입어야 하고, 일체의 장신구를 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직원들이 손님보다 더 화려하거나 세련되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영업의 ‘철칙’이다.
백화점의 직원들이 너무 화려하거나 너무 잘나 보이면, 손님들이 직원들 눈치를 보게 된다. 맘 편히 물건을 고르고 질문하기도 어렵다.
손님들이 편한 마음으로 쇼핑을 할 수 있게 하려는 ‘마케팅’ 전략이다.
손님들에게 직원들은 수수해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친절’에 관해서는 최고의 경지에 달해 있도록 교육을 받는다고도 한다.
(물론 손님들에게 지나치게 저자세로 응대할 것을 강요한다면 그 또한 잘못이다. 직원도 같은 사람이란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손님을 ‘편하게’ 해 주려는 서비스 전략은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 하겠다.
손님들 불편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하면서 돈을 벌겠다는 자세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자기의 경력에 자부심이 가득한 사람은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 서비스업종을 창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접받고 싶으면,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한 서비스업종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잘난 주인장은 제발 손님 앞에 직접 나타나지 말고, 친절을 잘 가르친 종업원이 손님을 상대하게 했으면 좋겠다.
이전의 분야에서 전문가이셨듯이, 서비스업에서도 프로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