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왜곡의 함정
남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면, 분하고 열이 뻗치곤 합니다. 그럴때 열받음의 정도는 이전에 가져왔던 믿음의 깊이에 비례합니다. 그 사람을 많이 믿었을수록 실망감과 분노감이 커져갑니다. 차라리 믿지 않았던 사람이면 그나마 마음이 편했을텐데요.
만약 여러분의 마음이 스스로에게 속임을 당하고 있었다면 기분이 어떠실까요? 사실 우리는 많은 순간에 스스로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믿기 어려운 사실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쾌한 사실이 될 수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매우 당연하게도, 우리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주관적입니다. 아무리 객관적인 생각 혹은 감정을 느껴보려고 노력을 하더라도 주관성의 굴레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평생을 공부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일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의 마음은 객관성에 점차 가까워질 뿐이지 무조건적인 객관성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듯 나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려운만큼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마음의 주관성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이 속임을 당하고, 그 속임수로 인해 지나치게 괴로워지는 순간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인지왜곡의 정의
사람의 마음에는 인지왜곡(cognitive distortion)이 종종 등장합니다. 미국정신의학회 사전에서는 인지왜곡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인지왜곡 :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사고, 인식, 혹은 믿음을 말한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심리 과정이다.
사람이 가진 고유한 인간성은 주관성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관성은 현실 인식을 방해하며 인지왜곡을 유발합니다. 사전에서 설명하였듯이 인지왜곡은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수준의 인지왜곡이 우리의 삶을 우울하거나 불안하게 만들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설명드릴 흔히 보이는 인지왜곡의 사례들을 보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시는 것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인지왜곡의 종류
1. 흑백논리(all-or-nothing thinking)
흑백 논리는 워낙에 이미 잘 알려진 인지왜곡입니다. '완벽한 성공이 아니면 무조건 실패' 혹은 '항상 나의 아군이 되어줄 사람이 아니라면 무조건 적'과 같은 이분법적인 생각들이 해당합니다. 뚜렷한 가치관이 없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회색지대가 하나 없는 흑백논리는 인생을 상당히 피폐하게 만들어갑니다.
우리 나라와 북한 사이에 있는 중립지역인 DMZ가 서로의 긴장을 부분적으로나마 완충시키는 역할을 해주듯이, 흑과 백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는 그 사람의 인생을 보다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완벽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부분적인 성공과 부분적인 실패가 함께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큰 마음 먹고 준비했던 회사 발표가 내가 기대했던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나름대로 성공의 의미를 가진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0%의 성공이 아니면 무조건 실패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부분적인 성공은 결코 성공으로 느껴질 수 없겠지요.
이처럼 흑백논리를 자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분적인 성공이 존재하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로 인지왜곡에 속고, 그로 인해 긴장을 풀 수 없는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2. 과도한 일반화(overgeneralization)
부정적 경험 하나를 근거로,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신념을 만들어내는 인지왜곡입니다. 입사 면접에 한번 떨어졌다고 해서, 나는 안될 사람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전에도 설명드렸듯이 인지왜곡은 모든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면접까지 봤는데 입사에 실패한다면 좌절감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같은 상황에 좌절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걱정될 겁니다.
나는 안될 사람이라고, 과도한 일반화를 사용하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것은 오히려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차악의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원래 나는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이였는데 합격하지 못했다면 더욱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 차라리 내가 합격하지 못할 사람이였으니 이번 좌절은 당연한 일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 마음의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과도한 일반화를 통해 일시적으로는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반복되는 인지왜곡으로 인해 마음이 더욱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길게 보았을 때는 과도한 일반화를 하지 않고 '나는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은 것은 더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당연한 사실이겠지요.
3. 걸러내기(mental filter)
커피를 내릴 때 필터는 마시면 안되는 것들을 걸러내어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내리도록 돕습니다. 마음의 필터도 비슷하게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마음에는 정수기 필터와는 반대의 역할을 하는 필터가 있습니다.
마음에서 걸러내기 현상이 발생하면 좋았던 일보다는 나빴던 일들만 생각납니다. 당장 어제를 돌아봐도 안 좋았고 기분 나빴던 일들만 기억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생에서 부정적인 일들만 기억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생기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마음을 보호하는 기능이 일부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걸러내기를 통해서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들을 되돌아보며, 방심하지 않은 채로 인생에서 찾아올 수 있는 부정적인 사건들에 미리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내가 보다 큰 위험에 처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일생동안 걸러내기를 지속하는 사람의 마음은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함께 존재합니다. 좋은 일만 생기는 인생, 혹은 나쁜 일만 생기는 인생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보다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너무 좋은 일만 기억하며 자신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도 문제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나쁜 일만 기억하며 자신을 실제보다 나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그보다는 훨씬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는데, 걸러내기 현상으로 인해 스스로 좋았던 기억을 잘 꺼내지 못합니다.
좋은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회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스스로를 보는 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걸러내기로 인해 나의 마음이 왜곡되지 않았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