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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씨 Jun 10. 2022

질투는 너의 힘

잠깐 불타오르고 끝나는 무기력한 질투에 대하여

  요즘의 나는 나쁜 의미로 뇌를 비우고 살았던 것 같다. 잡다한 생각없이 명상하느라 뇌를 비우는건 좋지만 말초적인 즐거움에 빠져 뇌를 비우는건 그닥 즐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영양가 없는 일을 매일 반복하며 아주 잠시 즐거워했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그마저 질려 버렸다. 그리고 살짝 기분이 우울해진 타이밍이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을 재우고 살금살금 빠져나와 스마트폰을 쥐었다가 오늘은 좀 다르게 자유시간을 보내자, 하고 생각없이 책 두권을 꺼내들었다. 한 권은 나의 롤모델 팀 페리스의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한참 전에 샀던 모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으니 몇 페이지를 못가 시야가 흐릿해지며 졸음이 쏟아졌다. 그만 읽을까? 하고 책을 덮으며 뒷표지를 본 순간, 갑자기 잠이 확 깨버렸다.



'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우수상 수상자 명단에 낯익은 얼굴과 이름이 있었다. 바로 대학 동기였다. 그닥 친하진 않았지만 워낙 인원이 적은 학과였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등단했다는 소식은 들은적 있었는데 상도 탔었나 보네. 살짝 부럽기도 하면서 궁금했던 나는 요즘 뭐하고 지내는지 검색을 해봤다. 이름이 흔해서 바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름 뒤에 작가를 붙이니 그래도 인물 정보와 프로필, 몇몇 신문 기사들이 떴다. 등단 후 꾸준히 책을 내고 있는 것도 대단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졸업한 학교의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워우, 잘 나가네.'



  솔직히 순수문학 작가에게 고정 수입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주 유명한 작가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이 동기는 탄탄한 고정 급여까지 셋팅해 놓고 있었다. 부럽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반성 모드로 들어섰다. 한 달동안 정신을 놓고 시간 낭비를 한 자신에게 현타를 느끼며.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기형도의 시가 있다. 최근에 포토샵을 배우면서 시화 숙제를 내야 하길래 생각없이 골랐었다.


이미지 찾는데 더 오래걸린 포토샵 숙제



   아무 생각없이 골랐던  시를 오랜만에 다시 읽어 나는 유독 '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는 마지막 행이 기억에 남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아낀다. 모든 생각과 행동의 중심은 ''이기 때문이다. 내가 편하고 내가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 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한다' 개념은   적극적인 개념인  같다. 아무 생각없이 잠깐 즐거운 일에  자신을 갈아넣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나를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응원하는 느낌이랄까.



   잘 나가는 동기를 보며 질투가 살짝 났지만 나는 안다. 나에게 질투는 나의 힘이 아닌 너의 힘. 내 기운을 북돋아 주는 자양강장제가 아니라 남의 일처럼 무심히 지나칠 얕은 감정이란 것을. 나에게 질투는 잠깐 불타오르고 꺼지는 무기력한 일이란 것을.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 질투가 생각없이 졸던 나를 깨워준 신선한 충격이라는 것이다. 하루라도 좋으니 충격 좀 받고, 제대로 스스로를 사랑해야겠다. 질투는 너의 힘, 하지만 감사히 이용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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