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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May 07. 2023

간장종지의 회고, 그리고 다시 다짐

어떤 날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거듭 일어난다.

흠 오늘은 좀 실망스러운걸, 나 자신? 내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되자. 하고 툭툭 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스스로의 치부를 목도하는 일은 곧잘 일어나지만, 이를 현명하게 처리하는 것은 매번 참 어렵다.

마주하기도 어렵지만,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타자를 치고 있는 이유는, 머릿속을 지배하는 이 연기 같은 자기혐오를 조금이나마 풀어내고 정리하고 갈무리하여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실제로 어디 가서 말하기도 창피한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을 끄적이고 있자면 묵혀둔 것들을 내다 버린 듯 상당 부분 해소가 된다.


이 실망의 사건들은 사실 꽤나 애매모호해서, 다른 관점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받을 수 있을 법한 시시콜콜한 일들이기 마련이다. 뭐 그런 걸로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느냐 할 수 있다. 그러나 왠지 켕기고, 왠지 찝찝스러운 이 기분은 가실 길이 없고, 그 자질구레한 해프닝은 이렇게 머릿속 도마 위에 올라 이리 뒤껴지고 저리 헤쳐지고 있다.


알게 모르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야 생각했던 믿음은 마치 유리그릇 같아서 참으로 손쉽게 깨어진다. 나이와 경험이 늘어갈수록 이 유리의 두께감이 더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얇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잠시면 툭툭 털고 일어나던 기질도 어쩐지 오늘따라 발휘되지 못하고 회복이 더디다. 연약한 믿음은 수시로 깨어지고,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일들은 계속 일어날 텐데.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머릿속을 차지하고 앉은 오늘자 '실망'의 이름은 결국 '말'인데, 가장 신경 쓰이고 찝찝한 종류의 실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말이란 뱉어지는 순간 내 통제 밖의 것이 되어 되돌리거나 수습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내 안에 쌓였던 답답함을 토로하려다 보니 어쩐지 그 사람 앞에서 해선 안될 말을 한 것 같고.

속상한 마음에, 다른 사람에게 내 사람의 괜한 흠을 잡은 것만 같고.

별 뜻 없이 꺼낸 이야기로 내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를 사진 않았을까 걱정되고.


오랜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괜한 말들을 한 것만 같아 푸욱 한숨을 터뜨린다.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수밖에.

다짐도 반복되면 체화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밥 먹듯 되뇌는 이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말은 아껴 내보내고, 많이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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