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보는 나, 내가 인식하는 나
동료분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러 음료를 주문하는데, 한 분이 내게 '미식가인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예상치 못했던 말에 의아해서 '네? 제가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유를 듣고 보니 내가 점심메뉴나 음료를 선택할 때 얼마 전 먹은 메뉴는 잘 고르지 않고 새로운 메뉴를 고른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머리에 물음표가 10개쯤 떴다.
...? 보통 다들 그러지 않나...?
나에겐 너무 당연한 것이라서, 그런 이유로 그 말을 듣는다는 건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분은 며칠은 같은 메뉴를 먹어도, 심지어 두 끼, 세끼 연속으로 같은 걸 먹어도 전혀 상관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순간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얼마나 많은 타인을 판단하고 있을까.
문득 어떠한 특성을 발견해서든, 칭찬하기 위해서든, 단점을 꼬집고 싶어서든. 누군가 나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들이 결국은 다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 기준에서 상대적으로 누군가의 특성이 두드러져 보일 때, 그 점을 짚어 말로 표현하곤 한다. 상대에게서 보이는 모습이나 행동, 장점, 그리고 단점까지. 결국은 자기 기준에서 느꼈던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쯤 편해졌다. 타인의 말과 판단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당연한 명제를 다시금 깨닫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보고 느끼는 나를 덜 의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가 보고 있을 내 장점이든, 단점이든 결국은 다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 그리고 심지어 그 기준이 모두가 제각각 다른 개인이라는 것. 그 사실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줬다.
유독 그런 시기가 있다. 다른 사람이 인식하는 나의 모습이 유달리 신경 쓰이는 시기. 보통은 내가 인식하고 느끼는 '나'의 상이 흐려질 때 그렇다. 마음의 힘이 떨어져 내가 인식하고 있는 내가 흐려질 때.
눈코 뜰 새 없이 일이 바빠지면서 오롯이 나로서 보내는 시간이 극히 줄어들다 보니 삶의 균형이 무너진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시선이 자꾸 사회생활 속 나의 입지나 역할에만 편중되고, 지극히 사적인 '나'를 돌아보거나 돌볼 시간이 없다.
타인의 모호한 상대적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인식하고 돌아보는 나에게 보다 집중하자는 다짐을 해본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세상과 사람을 판단한다. 누군가의 시선과 기준에 흔들리거나 의탁하지 않고 나의 관점에서 내가 인식한 나를 믿고 가야 한다. 이 또한 연습된다면 타인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일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그러려면 우선 바쁜 와중에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잊지 말기로 한다. 휩쓸리지 않고 바로 서 있으려면 뿌리와 심지가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