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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Mar 21. 2024

평범한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나라

우리 큰애 담임선생님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밤중에 집에서 심장마비로 가셨단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학교에 큰애를 등교시키고 오는 참에 아는 엄마가 말해줘서 알았다. 수업이 없으니 애를 학교 가서 데려와야 한다고. 나는 막내가 집에 있어서 남편이 학교에 큰애를 데리러 갔다. 남편도 너무 놀라고 충격이라 믿을 수 없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돌아가실 수가 있다니.


한참 있다 남편은 혼자 돌아왔다. 학교에 심리상담사가 와서 울면서 어쩔줄 몰라 하는 아이들하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준다 했다. 우리 딸은 한참을 울었는데 집에 안가고 친구들하고 같이 있다가 온다 했단다. 남편이 너무 걱정 안해도 될거 같다고 했다.


다행히 그날 이후 방학이었다. 프랑스는 한달반 학교 가고, 그마저도 주4일제라 수요일은 안가고, 보름은 방학이다. 이 스케줄을 서너번 반복하면 여름방학은 석달, 겨울방학은 한달쯤 한다. 우리 딸은 집에서도 갑자기 선생님이 문득 생각나면 밥먹다가도 울고 그랬는데 그래도 방학이라 학교를 안가니 다른 사람들 만나 활동하면서 조금씩 잊혀지는 듯 했다.


보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는데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받아 오셨다. 아이들은 새롭게 적응해갔다. 그렇지만 학교는 여전히 돌아가신 선생님을 잊지 않았다. 학교에 카니발이라는 큰 행사가 있는데 개성 넘치는 멋진 분장을 하고와서 애들끼리 뽐내는 그런 행사다. 그 행사를 애도기간이라 한달 후로 연기한다 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추모식이 열렸다. 월요일 저녁 7시에 학교 운동장에 선생님 가족, 동료 선생님과 전교 학생, 학부모, 시장님까지 모였다. 200명쯤 되는 것 같았다. 돌아가신 선생님 사진에 꽃 한송이씩 놓고 노래를 부르고 편지 낭독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 딸도 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같이 편지 낭독을 했다. 선생님을 기리는 나무도 같이 심었다. 한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화려한 화한 하나, 말끔한 현수막 하나 없었지만 참으로 감명 깊었다. 학교에서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학교 책임도 아닌데 이렇게 온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한 자리에 모여 애도한다는게 참으로 감동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어떨까. 학부모 대부분은 내 새끼 마음 상할까만 걱정하고 내 새끼 공부하는데 지장될까만 걱정하겠지. 교장 교감은 괜히 자기한테 불똥튈까봐 말도 못꺼내게 하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감정의 동요 하지 말고 학생은 그저 공부 공부만 하면 된다는 것을 배워갈테다. 한국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ai가 되어갈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같은 교사로서 프랑스 교사가 많이 부럽기도 했다. 프랑스에 오니 한국서 잊고 있었던 인간성, 감정같은 것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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