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안쓰는 요리를 합니다

by 이주리

[불안쓰는 요리를 합니다]


불쓰는 요리를 하게 되면 요리 난이도가 많이 올라갑니다. 일단 설거지거리가 어마무시하게 쌓이고요. 냄비나 후라이팬, 볶음주걱 등등. 게다가 기름기도 있어 설거지 할때 더 신경써야 되고, 연기에, 냄새가 나니 후드도 켜고 창문도 열어야 되고, 눌러붙거나 탈까봐 계속 들여다 봐야 합니다. 마지막에 가스렌지 주변에 여기저기 튄 기름자국 닦아내고 나면 녹초가 되어서 괜히 남편만 잡습니다.(우리남편 미안)


그래서 저는 불 안쓰는 요리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한식 메뉴는 거의 불쓰는 요리인데요. 우리가 자주 먹는 반찬을 예로 들어볼까요? 두부조림, 멸치볶음, 버섯볶음, 계란장조림, 계란말이, 제육볶음, 각종 전 등등. 기름에 부치거나 볶던지, 간장 아니면 고추장에 졸이던지 그 패턴을 벗어나지 않지요.


그런데 저희 남편 나라(프랑스)에 가면 거의 대부분 찬 음식을 먹습니다. 아침에는 바게뜨에 버터, 쨈, 요거트. 점심에는 샌드위치. 샌드위치도 우리나라처럼 달걀, 감자 삶아 으깨 마요네즈 섞고, 각종 야채 넣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안 만들고요. 그냥 빵에 참치마요네즈 끝. (한마디로 성의가 없어요) 뭔가 부족한거 같으면 샐러드를 곁들이기도 하는데, 그냥 슈퍼에서 봉지 뜯어서 그냥 접시에 담아놓고, 시판소스를 뿌려 먹습니다. 치즈 한조각 먹고 마무리. 저녁식사에도 힘을 주지 않아요. 수프(각종 야채를 다 갈아서 끓임)에다 치즈가루 뿌리고, 바게뜨빵을 찍어먹고, 햄(냉장고에서 꺼낸 그대로 먹음) 통째로 꺼내 놓으면 각자 먹을만큼 자기 나이프로 썰어먹고요. 치즈 한조각, 디저트로 과일, 요거트 먹고 끝.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6시가 저녁식사 시간이라면 5시쯤부터 부엌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잖아요. 쌀씻어 밥을 안치고, 된장국에 끓일 온갖 채소들을 썰고 다지고, 주메뉴가 제육볶음이라면 야채 썰고 고기에 양념 만들어 주물럭하고, 밑반찬 몇개하고, 김치 썰어서 놓고. 10분이면 다 먹어치우고 배를 두드리며 아이고 배부르다 이러면서 앉아있다가 이제 고난이도의 정리 및 설거지를 하잖아요.


프랑스에서는 평일에는 저렇게 간단식으로 먹다가, 주말 점심이면(닭을 오븐에 구워먹거나 소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고 와인에 푹 끓인 우리나라 소갈비찜 같은 메뉴) 요리다운 요리를 해서 먹습니다.


그래서 전 프랑스에 가면 항상 살이 빠져요. 일부러 다이어트도 하는데 디톡스하는 느낌으로, 단식원에 갔다는 느낌으로 지내기도 합니다. 근데 첫째아이낳고 모유수유할때는 정말 너무 허기져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과일 엄청 많이 먹고, 혼자서 계란 후라이를 하고, 계란 삶고, 아니면 한국식으로 감자볶아 먹고 돈까스도 튀기고, 시어머니 부엌에서 온갖 냄새를 풍기면서 요리를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손님이 와도 뭐 크게 대단한 요리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손님이 온다하면 일단 뭘 대접해야 하나부터 걱정하고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내야 한다고 생각하죠. 프랑스는 여전히 찬 음식을 대접합니다. 바게뜨빵에 빠떼(돼지고기나 오리고기를 으깨서 후추나 허브같은 각종 양념에 저민 요리인데, 슈퍼에서 주로 병에 넣어서 팔아요)를 발라먹거나 햄(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상태 그대로)을 썰어 올려먹고 감자칩(슈퍼에서 사온 과자류)를 먹으며 와인같은 술을 마십니다. 방울토마토나 오이스틱 같은 걸 같이 내놓기도 해요. 손님들은 손으로 집어먹으면서 음식에는 별로 신경을 안쓰고 술 얘기는 많이 하고(이 술이 어디서 사왔고, 맛이 얼마나 괜찮은지 같은), 대화에 집중합니다. 그러다가 빵에 치즈 발라먹고, 케이크 먹고, 초콜렛 좀 먹고. 이게 끝이냐고요? 식사 대접이 그게 다에요.


음식에 너무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고, 저렇게 대충 먹어서 되겠냐 싶은데,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별달리 허약하다는 생각은 안들더라구요. 저희 남편은 어릴적부터 저렇게 대충 먹었는데도 키가 190이고 몸도 튼튼합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엄마가 너무 잘 챙겨주셨는데도 키는 160이고 몸은 골골. 손목에 힘이 없어서 칼질도 못할 정도이고, 애 둘 보면서도 맨날 체력이 달려서 허덕이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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