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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인들의 도시

영화 [세븐] 리뷰

by Munalogi

이 글은 영화 [세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피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사진 출처:다음 영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등장하는 가상 도시 무진의 특산물은 안개다. 안개는 전체적인 소설의 분위기 조성에 큰 역할을 하는 것과 더불어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도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 데 있어 그 어떤 불만도 없다. 마치 노래 가사처럼 소설 속 모든 장면들에서 쨍쨍하기만 했다면. 오히려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1/10 이하로 줄어들었을 테니까.


현) 고담시티의 개발 전 모습을 닮은 듯한 영화 속의 구) 회색도시도, 명확한 지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법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데에는 비(rain)의 역할이 매우 크다. 밀스(브래드 피트)도, 서머셋(모건 프리몬)도. 형사 월급으로는 우산조차 살 수 없냐는 의심이 들 만큼. 살인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실내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 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 상황이 양손에 커피를 들고 있을 때건, 아직은 용의자에 불과한 존 도(케빈 스페이시)를 쫓을 때건 상관없다. 서머셋이 내쉬는 한숨의 열 번 중에 두 번 정도는, 그가 비 때문에 도시를 떠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존 도의 살인이 없을 때마저도 우울한 것만 같은 도시의 분위기 구축에는 비가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영화 속 무대를 온통 습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부족한지, 비는 돌고 도는 선과 악의 형태를 존재 자체만으로도 명백하게 보여준다.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자욱한 범죄의 기운들이 존 도라는 인물에 의해 응집되어 비로 내리고. 그 비는 선도 악도 구분하지 않은 채 평등하게 모두를 적신다. 이 비를 조금 피한다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고. 모조리 젖어버렸다 해도 보송한 자신의 영혼을 잃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는 단 한마디도 없지만 충분히 기분 나쁘게, 그리고 조용히 영화를 지배한다.




총알;과연 옳은 발포였는가.
사진 출처:다음 영화

일주일 뒤면 은퇴를 앞둔 서머셋도. 서머셋 앞에서는 자꾸만 작아지는 경력을 가진 밀스도. 총을 쏘아본 경험 앞에서는 공평해(?) 진다. 마치 그것이 거친 형사 생활의 지표라도 되는 것처럼. 두 형사의 눈에서는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어떤 감정이 담긴다.


밀스의 경우는 그 눈빛이 아쉬움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회색도시의 비가 듣기라도 한 것인지(?) 존 도의 등장 이후로 밀스는 여한 없이 총을 쏘아댄다. 총을 겨누는 데 있어서도 망설임은커녕 총구 앞에 서 있는 존 도를 향해 희열이 담긴 미소가 담긴 표정마저 숨기지 않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서 느끼는 기쁨의 아이러니에 대해 설파하는 존 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하면서도 멈출 기세는커녕, 발포하는 것이 이제는 자신의 특권인 것이라고 밀스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 그의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총격이 존 도의 생명을 단 1분 남겨두고 멈추었을 때. 밀스는 이 기회가 넘어가면 자신이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란 걸 느꼈을 것이다. 그는 여태껏 유지해 온 자신의 형사 생활을 걸고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선택한 것은 살인이었다. 이미 죽은 존 도의 시체 위에 총알을 박아 넣는 밀스를 보고 있자면, 처절하다는 말 외에는 건넬 수 있는 위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울고 있는 얼굴이, 들썩이는 어깨가. 이런 순간을 위해 총알을 아낀 것이 아님을 말하는 듯, 스스로를 향한 처량한 항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만 같아서.


서머셋의 경우는 어땠을까.

비록 이 도시에 환멸이 났을지언정. 그에게는 총기 사용의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안심 혹은 다행에 가까웠을 것이다. 길고 긴 형사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 한 발의 총성마저도 누군가를 향하지 않고 경고의 한 발로 마무리한다. 여기서 이제 그만 끝내자.라는 듯한 말을 대신한 단 한 발로. 그는 선 안에 남기를 택했다. 그것이 비록 이가 갈리고 때로는 밀스처럼 억울함에 복 받히는 날이 있더라도, 그 편이 더 낫다는 쪽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서머셋을 비겁한 사람으로 남게 하지는 않는다. 그는 용의자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순간에도 밀스의 안위를 걱정했으므로. 새로운 악의 탄생이 아닌, 저물어가는 선의 끝자락을 붙잡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한때 동료였던 그를 바라보았으므로. 안타깝지만. 그는 은퇴하고 나서도 불면의 밤을 맞이하는 순간이 많아질 것이다.




회색의 도시, 회색의 사람들;선과 악의 스펙트럼
사진 출처:다음 영화

회색.

도시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작품 속 모든 것은 회색이다. 흰 것과 검은 것으로 대변할 수 있는 양 측이 섞였을 때 나오는 색이 그것이건만. 영화는 이 회색으로 통칭되는 것들에도 스펙트럼이 있음을 시사한다. 가장 흰색에 가까운 사람을 뽑자면. 아마도 그것은 서머셋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서머셋 마저도 완벽한 흰색을 띠고 있지 않다. 베테랑 형사, 어쩔 수 없는 사건 외엔 모두 해결한 형사라는 타이틀 아래에서도, 부정한 방법으로 FBI에게서 조사 자료를 얻어낸다. 여태껏 그래왔다는 듯이. 그리고 이 방법 외에는 없다는 듯이.


서머셋과 등을 지고 있는 인물은, 당연히 존 도일 것이다. 마지막 시체 두 구의 행방을 알려주겠다며 두 형사와 함께 무대의 끝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그는 비질란테의 운명에 대해 설교하지만 연쇄 살인의 동기가 아무리 하얀색이라 한 들. 그를 이루고 있는 나머지의 암흑이 집어삼키고 난 자리에 남은 것은 그저 어둠일 뿐이다.


이 둘 사이를 방황하는 인물이 바로 밀스이다. 그는 선배인 서머셋이 한 치의 부끄럼도 없는 경찰 생활을 했을 거라 믿었다. 그랬기에 그가 50달러짜리 새로운 수사 기법(?)을 보여줬을 때 밀려오는 구역질에 가까운 감정은 잠시 선배를 향한 존경심을 거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밀스는 청출어람의 실력으로(?) 존 도의 집에 영장 없이 들어가 수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해서라도 범인을 잡아야만 했던 자신의 마음이 선배와 같을 거라 믿었고. 그것이 결국 정의라 믿었을 테니.


그러나 그는 쓰러진 존 도의 시체 앞에서 깨닫는다. 자신이 앞서 느꼈을 그 모든 특권들과 기쁨이. 결국 존 도가 살인을 하는데서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그 감정을 부정하려 했지만, 부정할 수 없었고 점점 존 도의 어둠과 비슷한 색으로 자신이 물들었음을 알게 된다. 흠결 없는 선도 악도 없지만. 결국 자신이 선택한 것은 검정에 가까운 회색이었다는 것도.





마치면서
사진출처:다음 영화

밀스가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을 기억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을 목격자가 되어 바라보아야만 했던 나를 기억한다. 그는 단지 트레이시(기네스 펠트로)를 비롯한 다섯 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을 죽인 것이 아니었다. 울분에 찬 총알은 주저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경계선 마저 관통했다. 견고했던 내 고정관념만큼이나 강하게 마주한 그 불쾌감은 침범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쾌감은 빠르게 나를 진정시켰다.


총알 자국 너머의 세계가 가져다주는 두근거림은 외려 내가 갇혀있는 곳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했다. 나는 언제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착하고 올곧으며 무언가를 대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주인공에 의해 Dog박살이 나는 것이 승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회색지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마지막을 보고 나니 마음이 복잡했다.


악인에게 서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기에, 존 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어쩌면 또 다른 악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제2의 존 도 인 밀스에 대해서는 모조리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눈물이 그친 얼굴로 경찰차의 뒷좌석에 앉은 그를 보며, 그가 과연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겐 경계를 허물게 해 준 영화이지만, 밀스의 인생에는 커다란 구멍으로 남겨진 일이기에. 그의 상실이 어떤 식으로 그를 잠식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 글의 TMI]

올해 들어 가장 잘 한 습관(?)중 하나는 재개봉한 영화를 챙겨보는 습관이었다. 다음 달부터는 반지의 제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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