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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뒤의 앳된 얼굴

영화 [세계의 주인] 리뷰

by Munalogi

이 글은 영화 [세계의 주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술, 사라졌다는 착각;위대한 쇼맨
사진 출처:다음 영화

마술을 거행(?)하는 해인(이재희)의 손은 가족 앞이라는 혈연찬스(?)를 쓴다 해도 서툴기만 하다. 아무리 현란한 손기술로 숨겨보려 해도, 공의 꼬리는 길기만 해서 금세 숨은 곳을 들키고 만다. 그럼에도 이 어린 마술사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다. 모든 슬픔과 고통들을 담은 상자를 사라지는 것으로 자신의 공식적인 데뷔 마술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 그것도 엄마, 누나. 그리고 아빠까지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이 마술 하나를 위해 여태껏 연습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천재 마술사의 데뷔쇼는 마지막까지 아름답지는 못했다. 꺾일 줄 몰랐던 마술사의 자신감은 어깨와 함께 푹푹 꺼져 땅에 닿을 것만 같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서운했지만, 자신의 필살기에 실패한 지금은 가족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자신을 보러 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관중들의 근심이 쓰인 알록달록한 종이로 가득한 투명한 상자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숨겨지지 않은 채 덩그러니 무대에 남겨진 것을 보았을 때. 해인은 아마 자신이 더 이상 편지를 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만 같다. 삼촌이 마법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라지만. 그저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까.


아토피로 인해 가려울 것이란 걸 알면서도 과자를 먹으며 목덜미를 벅벅 긁는 이 마술사의 모습이 냉정 하다기보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것이 더 마음이 아프다.



사과, 암시;드러내지 못하는 모든 순간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작품 속 인물들은 그들이 입어야 할 사건이라는 옷을 걸치는 데 있어 꽤 주저한다. 다리 한쪽을 쑥 집어넣었나 싶으면 다른 발 자리이기도 하고, 이제 단추를 다 잠갔나 싶으면 앞뒤가 바뀌어 있기도 한다. 이 미적미적 거리는 인물들을 보면서, 관객은 양 미간 사이의 힘으로 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유추해야 한다. 그때까지, 주인을 비롯한 이들의 행동이 도통 받아들여지지 않고 때로는 격앙되어 보이기도 한다.


정확한 단어로 정의하지 못하는 이 분위기를 영화 내내 계속 헤쳐 가야 하는 걸까.라는 막막함에 다다를 때쯤. 관객들은 영화의 최종 목적이 옷을 다 입어내는 것이 아닌, 옷이 지닌 무늬를 더 자세히 보아야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 이후로 관객들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도, 속도감도 필요 없어진 상태로 완전히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런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타격이 매우 크다. 빤히 사과를 쳐다만 보고 있는 주인의 모습이라던가. 그저 봉사활동이라 생각했던 그녀들의 모임, 그리고 미도(고민시)의 일터에 찾아간 주인과의 장면 등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들은 내쉬는 숨의 볼륨마저도 아껴 쉬어야 할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두 명의 주인;과거의 내게 건네는 말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주인은 누리에게 매번 묻는다.

아프지 않냐. 많이 아팠을 것이다. 아프지 않은 것이 정말이냐.라고. 이 어린것은 주인의 마음도 모른 채 덤덤한 얼굴로 언니를 올려다보며 아니.라는 단호한 대답만을 던진다. 어찌 된 것인지 한참 큰 이 고등학생이 유치원 해님반(아님) 아이에게 밀리는 것 같이, 혹은 조금은 이 애늙은이를 향한 약간의 꺼림도 함께 느껴진다.


그런 누리에게서 주인은 누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계속 괜찮다고 말해온 과거의 주인을.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주인은 자신 앞에 서 있는 그때의 자신을 꼬집는다. 아파야 한다. 나중에 아프지 않으려면 지금 아파야만 한다. 그래야 한 번이라도 세차장에 덜 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듯이.


이 순간은 태선(장혜진)에게도 다가온다. 어린 주인의 입을 빌어 지금의 주인이 어떤 말을 한 것인지 아는 순간에. 세차장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힘썼던 주인의 엄마는 비로소 그때의 딸을 안아준다. 그리고 자신도 드디어 내뱉는다. 아프다.라고.





마치면서
사진출처:다음 영화

장장 다섯 시간을 써야 했다. 이 조잡한 리뷰를 써내는데 까지. 하고 싶은 말이 많기도 했지만,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하느라 괴로워서 중간에는 밖에 나가 달리기까지 하고 와야 했다.


우선은 이 영화가 주인의 자기 연민으로 점철되지 않아서 고마웠고, 피해자에 대한 위로랍시고 과장하거나 탈현실적이지 않아서 고마웠다.


물론 태선과 주인은 세차장을 몇 바퀴나 도는 일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차는 그 세차장 투어동안 깨끗하고 또 반짝이겠지만. 주인의 마음은 여전히 다 닦이지 못한 채 항상 조금씩의 얼룩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도가 그을려버린 기둥만 덧칠이 안 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그 작은 얼룩 때문에 멈춰서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지. 위로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주인은, 그럴 것이다.


[이 글의 TMI]

1. 꽈배기 정말 맛있다.

2. 오늘 러닝 5킬로 달성 오예

3. 그리고 무릎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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