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이비 걸] 리뷰
이 글은 영화 [베이비 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선.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이 영화를 통해 여러분이 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건 간에. 기대하고 있을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아쉬움(?)에 몸서리치거나 화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그런 것"을 원한다면. 차라리 예고편을 몇 번이고 돌려보길 바란다.
다뤄야 할 것들은 안 다루고(?)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로미(니콜 키드먼)가 결핍(혹은 욕망)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녀의 양손에는 절대 한 번에 주어지지 않을 법한 것들이 뿌듯이 쥐어져 있다. 자동화 로봇회사의 대표 자리와, 완벽하다 불러도 손색없는 가족. 그러니 발까지 동원해 저글링을 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이상. 그녀의 삶은 안정적이고 틀림없는 솜씨로 유지될 것이었다.
그러나 홀연히 나타난 새파란 인턴 사무엘(해리스 디킨슨)은 그녀에게 손에 쥔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말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홈쇼핑 마감임박 사인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지 않던 로미였지만. 어째서인지 사무엘의 말을 지금 듣지 않으면 , 그가 두 번 다시는 자신의 인생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포물선이 두 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건만. 자신이 유지하고 있는 이 리듬이 조만간 자신의 손에 의해 깨질 것이라는 것을 로미는 알아챘을 것이다.
사무엘을 만난 후 로미의 행보는 안쓰럽고 눈물겹다 못해 비참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무리 다시 그녀의 일상으로 눈길을 주어도. 아무리 사무실 안으로 자신의 시선을 가두려 해도. 그녀의 완벽한 순간들은 사무엘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한낱 껍데기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정신을 바로 잡으려 애쓴 만큼 그녀는 사무엘 앞에서 추락한다. 떨어진 바닥에서 기어 다니는 자신을 보노라면 무너져야 마땅하지만. 그럴수록 사무엘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기꺼이 바닥을 기고 우유를 핥으며 고통 속에 몸을 의탁한다.
스스로 얻은 고통을 헤집어 가며 쾌감을 끌어올리는 동안, 그녀의 저글링은 천천히 느려지고 때로는 리듬을 잃어 아슬아슬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는 범위의 오류였을 수도 있지만. 인생에서 처음 부딪친 어긋남 앞에서 그녀는 마음의 동요로 인한 불안함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피어오르는 불안함에 사무엘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내는 순간. 그녀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이 게임의 법칙을 알게 된다. 자신은 절대 사무엘을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을.
로미의 판단은 빨랐다.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일도, 가족도. 벗어날 수 없는 물리법칙에 의해 추락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로미에게 그 순간은 쾌락이었지만. 그녀의 손을 떠난 가족과 일은 신음을 내지르지는 못했다. 고통과 배신감에 의한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만 냈을 뿐이었다.
이제야 자유로움을 느낀 그녀의 손에는 사무엘이라는 존재가 묵직하게 잡혀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매번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거리를 남겨두고 닿을 수 없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이 규칙을 잘못 해석했음을 눈치채야 했다. 사무엘은 절대 그 누구의 손에도 잡히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녀는 또 한 번 애써 외면하며 자신의 발로 가족과 일을 밟아댔다. 사무엘에게 닿기 위한 몸부림에 타당성이라도 얻으려는 듯이.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인생의 참담함 앞에서 그녀는 두 가지를 인정해야 했다. 이 모든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곁눈질이 아닌 소유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그녀는 다시 한번 통제 안에서 행복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이 난장판을 깨끗이 치우고 다시 저글링을 선보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말끔해진다고 해도 이 사고가 있었다는 것조차 지울 수 없다는 것도 인지한 채로.
그녀는 더러워진 손을 연신 자신의 허리춤에 닦아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여 헐거워졌지만 터지지 않은 두 존재를 다시 손에 올린다. 가슴을 펴고. 숨을 몰아쉬고. 맺혀있는 눈물을 털어내듯 눈을 꼭 감았다 뜨고. 툭툭. 다시 예전의 감각을 찾으려는 듯. 자신이 가진 것을 가볍게 가늠하며. 그녀는 다시 힘차게 손 위의 것을 허공으로 띄운다.
마치면서
이 작품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것은 로미 이자 니콜 키드먼이었다. 다른 부분들은 실패에 가깝거나 진부함이 느껴질 정도의 묘사에 불과했다. 이 불모지 속에서 꿋꿋하게 혼자 성공적인 묘기를 보인 그녀 덕에 관객들은 배경의 황량함을 조금씩 잊을 수 있었으리라.
[이 글의 TMI]
1. 정서경 작가님 북토크 갔다 옴. 나는 성덕이다.
2. 갑자기 추워져서 옷장을 보니 작년에 패딩을 버렸지 뭐야. 아이참 새로 하나 사야지 어쩌겠어. 그렇지?
3. 약과 먹고싶다. 참아야겠지.
#베이비걸 #할리나레인 #니콜키드만 #해리스디킨슨 #안토니오반데라스 #헐리우드영화 #여우주연상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칼럼 #재개봉영화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