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에 또 새롭게 시작한 것이 있었다. 바로 받아쓰기다. 한글을 배우는 1학기에는 가급적 지양하는 추세이고 2학기에도 안 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받아쓰기가 아동학대라며 민원을 넣는 학부모가 있었다나. 사실 안 하면 제일 편한 건 교사다. 연습시켜 주고 시험 치고 틀린 것 세 번씩 쓰기 숙제 내서 검사하고 안 해오면 남겨서까지 지도하는 그 노고를 감당하는 건 교사의 교육적 양심과 열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열심히 하는데도 아동학대라는 소리를 들으니 교사들의 사기는 꺾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학년 선생님들 몇 분이 받아쓰기를 시작할 거라는 소식을 알려주셔서 내심 하고 싶었던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급수표를 받아 든 아이들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괴성과 비명까지 내지르는 아이도 있다. 예상외로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100점 받고 엄마한테 요구할 선물 이름을 줄줄 읊는다. 화요일 아침 활동 시간에 쓰기 연습을 하고 목요일 아침에 시험을 친 뒤 틀린 문제 숙제는 금요일까지 제출하는 것으로 아이들과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1급 시험을 보니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등장했다. 번호를 바꾸지 않고 순서 그대로 불렀더니 부르지도 않았는데 다음 정답을 외워서 미리 적는 아이가 있는 것이다. 2급부터는 당장 번호를 섞어 부르기 시작했다. 역시 급속도로 하락하는 점수.
벌써 13급까지 시험을 쳤다. 받아쓰기를 했던 지난 학기 동안에 어떤 문제를 먼저 부를까 요리조리 재다 1번! 하고 부를 때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공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조용한 가운데 또각또각 연필 소리가 메아리로 퍼지는 그 순간을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문제를 다 쓰고 8시 50분에 제출했는데 55분에 쪼르르 와서 “선생님, 다 매겼어요?”하는 아이들은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채점 후 나눠주는 공책을 받아 들고 100점이면 좋겠다며 조심스럽게 공책을 펼치는 아이들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점수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점수를 적을 수밖에 없는 선생님을 이해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