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는 그날 말이 되었다.
티 팬티 하나만 입은 채 말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섰다.
가면 속에서 세상은 달랐다.
흐릿한 어둠 속에서 관객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반응이 나를 더욱 깊이 말의 세계로 끌어당겼다.
무대 위에서 나는 주인공을 따라다녔다.
그의 절망에 동참하고, 그의 기쁨을 나누었다.
나는 그를 지켜보고, 지켜주는 존재가 되었다.
관객들은 그 장면에 몰입했고,
나는 그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가 단순한 배역 이상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공연이 끝나고 가면을 벗었을 때,
나는 여전히 말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날 때까지도 나는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단순히 무대를 돌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무대 위의 한 존재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 존재는 점점 더 나의 본질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