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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Sep 21. 2024

달콤한 부름

단편 소설

 두 세계가 맞닿은 해안선을 하늘에서 내려다본다. 그 경계는 칼로 그은 듯 선명하다. 왼편은 하얀 모래사장이다. 오른편은 광활한 바다가 지평선 너머로 이어진다.


 왼편 세상은 움직이는 것들로 넘실거린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알록달록한 파라솔들. 그 아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젊은 연인들은 서로의 눈동자에 빠져 세상을 잊은 듯 속삭이고 있고,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았다가 부수고 있다. 때때로 파도에 젖은 강아지들이 물을 튀기며질주하면 그 모습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바다를 등지고 바라보면, 멀리로는 휴양지가 보인다. 높이 솟은 건물들의 유리가 햇빛을 난반사하고 있다. 해변 도로를 따라서는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엔진 소리, 음악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커졌다가 어느새 잦아든다. 


 카페테라스에서는 바닷바람에 뒤섞인 커피 향이 풍긴다. 테이블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가족들, 나른한 얼굴의 청년들, 천천히 움직이는 노부부들... 다른 한쪽에서는 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이 한창이다. 기타 선율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감상하는 구경꾼들. 


 그러나 뒤돌아 바다를 바라보면 그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바다의 색은 화가의 붓질처럼 변화무쌍했다. 얕은 물가에서는 일렁이며 하얗게 반짝인다. 그러나 조금씩 물이 깊어질수록 푸르름이 더해간다. 에메랄드빛은 곧 청록색으로 변한다. 눈이 머무는 가장 먼 바다는 짙은 남색을 거쳐 결국 깊고 어두운 검은빛으로 변해갔다. 어두워지고 짙어짐과 동시에 움직임도 사라져간다. 그 너머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미지의 어둠만이 존재한다. 


 여자는 지금 경계에 서 있다. 바다와 바다 아닌 세상. 그녀는 모래 위에 서서 오른 편 바다를 바라본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도 빨라진다. 그녀는 저 너머의 검은 바다를 상상해본다. 그 어둠 속에 무엇이 존재할까? 우리가 아직 알지 못 하는 어떤 생명체가 꿈틀대고 있을까? 안개가 자욱한 곳에 만일 섬이 있다면, 그 섬엔 시간이 흐르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 온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그녀가 바다를 향해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면, 그녀 안의 어떤 목소리가 그녀를 제지한다.

 “위험해. 돌아가.”

 그녀는 걸음을 멈춘다.

 “저 곳엔 네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

 그녀의 영혼은 두 조각으로 쪼개진다. 하나는 미지의 어둠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고, 다른 하나는 안전한 모래 위에 두 발을 딛고 있길 고집한다. 파도 소리는 그녀를 유혹한다. “이리 와. 네가 꿈꾸던 모든 진실이 여기 있어.”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유혹하는 파도가 무섭다. 그 파도가 그녀를 완전히 집어삼킬 것만 같다.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다. 모래에 소리없는 발자국을 남기며. 고개를 돌리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석양을 등진 채 그는 다가오고 있다.  

 “또 여기에 와 있군.”

 그가 그녀의 곁에 다가와 선다. 

 그 남자는 화학을 전공했다. 그에게 세상은 입자들의 충돌과 결합 그리고 해체이다. 아마도 그에게는 오른편 바다 역시 입자들이 충돌하고 결합하는 도식의 세계로 보일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의 체온이 여자에게 전해진다. 어느 순간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여자를 잡아끌엇다. 그의 몸은 가볍고 날쌨다. 그러나 여자의 몸은 자꾸만 모래에 발목이 잡혔다. 그의 발자국은 점점 깊어졌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놓쳤다. 남자는 얼마쯤 더 달려가서 멈추었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남자는 되돌아보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이 한 말과 무관한 듯한 어떤 기쁨으로 넘실거렸다.


“난 그냥 싫은 걸.” 여자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그녀의 말은 그녀 자신의 귀에도 변명처럼 들렸다. 

 그들은 바다와 모래의 경계에 함께  서 있었다. 파도가 밀어닥치자 남자의 눈은 더욱 반짝였다. 그의 흥분된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봐. 액체가 가열되면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증가해 액체의 증기압이 대기압과 같아지는 끓는점에 도달하면 기포가 형성되는 현상이야.”

 여자는 웃었다. 

 “그럼 저기 들어가면 나는 익어버리겠네? 그래서 내가 바다를 두려워하는 건가? 거대한 끓는 지옥이라서?”

 여자의 말에 남자는 놀란 표정이다.

 “뭐?”

 순간 여자는 자신이 농담과 진담의 경계에 서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천천히 해안선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러자 남자가 그녀의 몸을 다시 바다 쪽으로 밀었다. 그 손길은 부드럽고도 강력했다. 

 “넌 지금 그 활성화 에너지의 언덕 위에 있는 거야. 넘어가긴 힘들지만, 일단 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

 그의 말은 마치 시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녀에겐 여전히 난해한 시였다. 

 파도가 그들의 발끝을 적셨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 몸이 움찔했지만,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봐” 남자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끓는 지옥은커녕, 오히려 시원하잖아?”

 그들은 조금씩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발목을 감싸고, 점점 더 높이 올라왔다. 무릎께에 이르자 남자가 여자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어때? 아직도 끓는 지옥 같아?”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와 따뜻함이 공존했다.

 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예상과는 다른 감각들이 밀려왔다.

 “아니... 생각보다 괜찮아. 차갑고... 신선해.”

 남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봐, 네 상상 속 공포가 실제보다 훨씬 컸던 거야. 이것도 일종의 화학반응이야. 네 마음속 두려움이라는 산과 이 바다의 염기가 만나 중화되는 거지.”

 여자에게 그의 말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물은 점점 깊어졌고, 파도가 그들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의지한 채 균형을 잡았다.

 가슴께까지 물이 차올랐을 때, 남자가 말했다.

 “준비됐어? 이제 완전히 들어가 볼까? 우리가 함께 만드는 새로운 화학반응이야.”

 그들은 손을 꼭 잡은 채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물이 온몸을 감쌌다. 순간 모든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귓가에 물소리가 가득했고, 눈앞은 푸른빛으로 가득 찼다. 공포와 흥분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 전신을 관통했다.

 물속에서 남자가 여자를 꽉 끌어안았다. 그는 여자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너한테선 여전히 과자냄새가 나.”

 “...”

 “어떻게 이 짠 바닷물 속에서도 그 달콤한 향이 남아있는 거지?”


여자는 춤을 추듯 팔을 저었다. 남자는 그녀를 더욱 힘주어 앉았다. 물속이었지만 남자는 여자의 향을 폐부 가득 들이마실 수 있었다. 어째서 그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자 또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바다 속에서 어떻게 체취를 맡을 수 있는지. 남자에게 안긴 채로 어떻게 자신이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지. 

 남자의 말은 그녀가 이해하는 범위를 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이제 물속이 편안했다. 그들은 격렬한 파도 밑에서 부드럽게 유영했다. 조금 더 떠올랐다가 조금 더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그들은 어디론가 한참을 흘러갔다. 화학반응이거나 혹은 물리적인 운동의 결과로 그들은 마침내 배가 고팠다.


 “난 배가 고파.”

 “나도 배가 고파.”

 허기 때문에 남자는 더욱 깊이 여자를 끌어안았다. 여자는 그 억센 팔 안에서 더욱 연약한 춤을 추었다.


 그들은 수면 위로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포처럼, 새로운 생명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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