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요즘 뭐 하냐?"
" 그냥 학교 다니고 자격증 공부하고 그래요"
"너 내가 강추하는 경제 세미나 있는데 가볼래? 네가 간다면 내가 특별히 제일 앞자리로 자리 빼줄게"
"어.. 생각해 보고요"
"너 이런 기회 흔치 않아. 너 실전을 배워야지 언제까지 책만 볼 거야!"
뜬금없었다. 갑자기 경제 세미나라니.. 며칠 후 압구정역 2번 출구로 10시까지 오라는 문자가 왔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약속장소로 나가서 전화를 걸었다.
"저 도착했는데요"
그 순간 눈앞에 BMW가 서더니 창문을 열고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그 형이었다.
" 야 타!"
오렌지족도 아니고 그 형은 싼 티 나는 검정양복에 손목에는 짝퉁으로 보이는 명품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은테 안경을 쓰고 나를 보며 씩 웃었다.
" 어떠냐? 차 멋있지.?"
이 형은 나를 바보로 아는 거 같았다. 디자인이나 키로수만 보아도 적어도 10년은 넘은 차였다. 실내는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고 외관은 구형디자인에 밤버는 찌그러져 녹이 슬어 있었다.
"누구 차예요?
" 내 차지 누구 차긴 누구 차냐? 내가 투자를 잘해서 돈 좀 벌었다. 그래서 너한테도 기회를 주려고 이렇게 불렀어 고맙지?
"전 돈이 없는데요? "
" 돈 없어도 돼. 일단 한번 들어봐"
그 형은 압구정동에 있는 고급 일식집에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일본풍의 인테리어에 테이블이 없고 방으로만 되어있는 곳이었다. 처음 가보는 고급일식집에 나는 잠시나마 혹했다. 어쩌면 이 형이 정말 돈을 많이 벌어 성공했을 거라 생각했다. 형은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은 잠시 미루고 가방에서 두툼한 검정 파일을 건내 나에게 보여줬다.
자신이 투자하는 회사의 목록을 보여줬다. 흐릿하게 복사된 종이에는 회사의 간단한 연혁과 소개가 들어있었다. 형은 침을 튀기며 열심히 회사의 전망과 투자 수익에 대해 떠들었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이 형은 내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바보로 알고 있었다. 나는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어때? 괜찮지?"
" 잘 모르겠는데요."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 형은 은테안경을 손으로 집어 올리면 인상을 썼다.
" 밥부터 먹자"
직원을 부르자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 오랜만이야?"
그 형은 대뜸 아는 체를 했다. 여자는 짧은 미소를 건네고 메뉴판을 건넸다.
"소바 2개"
여기는 소바가 맛있다며 소바 2개를 주문했다. 쓴웃음이 나왔다. 고급 일식집에 들어와서 소바를 시키다니.
혹시나 더치페이를 하자고 할까 봐 마음 한편에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순식간에 한 주먹밖에 안 되는 소바를 꿀꺽하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 형은 음식값 16000원을 계산하고 나를 이끌고 압구정 어느 골목길로 데려갔다.
내가 도착한 곳은 압구정 어느 골목에 있는 4층 높이의 건물이었다. 건물 밖에는 정장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엇인가를 열심히 대화하고 있었고, 나와 같이 정장을 안 입은 사람도 간간이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더 많았다. 복도마다 계단마다 검은 정장 입은 남녀가 한데 어울려 귀가 울릴 정도록 웅성거리고 있었다.
건물 2층에 들어서자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 형은 나를 이끌고 제일 앞자리로 데리고 들어갔다. 앞에는 대형 칠판이 놓여있었고,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사람들이 '환영합니다 사장님' 라며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네어왔다.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사장님이라고 서로를 불렀다. 그러니까 모두 사장님들이었다.
강사 한 명이 나오더니 투자회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투자회사들은 그 형이 보여줬던 리스트와 달랐다. 대부분 건강식품, 의료기, 생활용품 등이었다. 내용은 엄청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 있는 투자자들의 위해 따로 홍보를 안 하고 특별히 내놓은 상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상품에 투자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1시간가량의 설명회를 마치고 1부가 끝났다고 했다. 난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그 형은 복도에 나를 세웠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내 또래의 정장을 입은 남녀가 오더니 명함을 나눠준다. 모두 같은 회사명에 각각의 이름만 다른 같은 명함이었다. 3층의 어느 방으로 날 데려갔다. 그 방에는 원형테이블이 놓여있었고 서너 명의 정장 입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역시나 서로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를 설명하였다. 누구는 어떤 차를 가지고 있고, 누구는 얼마짜리 옷을 입고 있고, 또 누구는 통장을 보여주며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 형은 밥까지 사줬는데 이렇게 가면 서운하다고 했다. 정확히는 밥이 아니고 면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2부를 듣기로 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