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마크 호텔, 로비와 주변만 서성인 이야기

by 초록 사과 김진우

경포의 하늘을 배경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대지에 우뚝 선 순백의 건축물, 강릉의 씨마크 호텔(www.seamarqhotel.com)은 미국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작품이다. 코로나가 현장학습의 발목을 잡기 전 몇 번에 걸쳐 학생들과 방문했다. 우리 예산으로는 택도 없는 가격의 호텔이므로 객실에 머물 순 없었지만, 나머지 공간만으로도 마이어와 그의 건축 언어에 대한 공부가 가능하다.

사실 이 건축은 사이트가 압권이다. 지역의 환경과 자연을 건축의 요소로 활용한 건축가의 의도를 드러내기에 적합하다. 건물 안 로비를 향해 곧장 들어가지 말고, 시간을 두고 주변을 둘러보길 권한다. 호텔 남동쪽에 놓인 강문교를 건너 호텔로부터 오히려 멀어져 본다. 뒤돌아보면 호텔의 객실에 해당하는 수직 매스와 큰 축에서 파생된 그리드가 보인다. 객실의 80%를 오션뷰로 만든 구조의 입면이다. 1.5m 3.1m 캔틸래브 슬라브가 양방향으로 계획된 플로팅 발코니, 그 덕분에 숙소에서 바라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다는 경험자의 얘기. 언젠가는 나도 이 호텔에 머물고 싶은 이유다.


강문 해면의 모래사장과 산책로를 오가며 주변 소나무 숲에 가려지다 보이는 수평 매스를 즐긴다. 항상 겨울에 갔었는데, 강릉의 겨울바다와 하늘색은 유난히 청명했다.

강문교를 되 건너와 동선을 좌측으로 꺾으면 건축가 황두진이 설계한 한옥 <호안재>를 만난다. 하룻밤 숙박비만 1400만 원이라는 최고급 한옥 스위트 객실이다. 입구는 굳게 닫혀있지만 아쉬움을 달랠 방법은 있다. 호텔 홈페이지에서 360도 virtual realtity를 누르면 내부 구석구석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호안재를 지나 길을 오르면 로비로 들어가는 주출입구가 있다. 로비로 들어서면 다시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우리를 처음 맞이하는 것은 안내 데스크가 아니다. 높은 천정고의 텅 빈 공간이 입면의 유리창에서 멈춘다. 개방감이 극대화된다. 시선은 다시 유리창 너머 방금 보고 온 경포 바다로 이어진다.


안내 데스크는 우측으로 꺾인 구석에 존재한다. 로비 입구에서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30m가 넘는 목재 테이블 위로 지금은 고인이 된 잉고 마우러(Ingo Maurer)의 조명작품이 펄럭인다. 로비의 높은 천정과 주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광은 조명의 움직임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장식을 철저히 배제한 로비는 이 두 오브제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숨을 죽인다. 수직 수평선으로 일관된 공간에서 불쑥 등장하는 원형 계단도 이 테이블, 조명,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풍경을 위해 살짝 뒤로 물러나 있다.


30m가 넘는 목재 테이블 위로 지금은 고인이 된 잉고 마우러(Ingo Maurer)의 조명작품이 로비의 주인공이다. ©jinwookim


로비는 의자 박물관 같기도 하다. 잉고 마우러의 조명 아래 줄지어 놓여 있는 목재 의자부터, 라운지 바에 놓인 불후렉 형제의 소파, 원형 계단 옆에 위치한 미스 반 데 로헤의 르 컴포트 소파, 에에로 사아린넨의 움 체어 까지. 오래된 것은 20세기 초반에 디자인된 소위 의자 디자인의 클래식이지만, 마감은 최신 버전이다. 패브릭과 스틸 파이프의 색감과 질감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이 들 중 맘에 드는 것 하나 골라 앉아 시선을 밖으로 던지면,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경포의 하늘과 바다가 그림처럼 눈앞에 걸린다. 일 년 열두 달, 사시사철, 아침저녁으로 변화무쌍한 창밖 풍경 때문에 호텔의 로비는 같은 날이 없다. 건축과 인테리어의 백색, 비움, 절제의 목적을 알려준다. 건축이 딛고 있는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받아내겠다는 의지다. 빛과 그림자의 연출로 공간을 채워가겠다는 뜻이다.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테라스가 있다. 로비 내부에서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웠던 풍경이지만 한껏 더 가까워진다. 거기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면 투숙객이 아니라는 것에 주눅 들지 않고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좀 걷고 싶으면 호텔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를 거닐면 된다.


리처드 마이어 건물과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1995년 여름, 바르셀로나에서 완공을 앞둔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을 지나쳤다. 공부가 깊진 않았지만 마이어의 건축 언어가 보였다. 2019년 드디어 다시 찾은 현대미술관, 책에서 배운 내부 공간의 건축적 산책로를 거닐었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맥락을 외부 광장으로부터 내부로 연결해 낸 동선 기획이다.


오픈하기 전 현대미술관과는 달리 성년의 나이를 넘긴 건축물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미술관 전면 유리 파사드 앞의 난간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나고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 적절하다. 적당히 닫히고 적당히 열린, 너무 크지 않은 광장은 그야말로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다. 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난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머물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한다.


마이어의 건축, 백색으로 일관된 지나치게 절제된 공간은 왠지 정이 안 간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땅에서 만난 유명 건축가의 공간 산책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책으로만 배운 내용을 확인해 보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시 찾아본다. "절수형 에너지 시스템을 사용하고, 실내에는 친환경 자재 활용하며 건축 폐기물의 90% 이상을 재활용한다는 것, 건물 외관의 흰색 표면은 TX 액티브 콘크리트 패널로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한 흰색 유지 (안정원의 디자인 칼럼https://www.ytn.co.kr/_ln/0128_201704110705520669)에서 인용)"​한다는 것도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무엇보다 나는 호텔의 유리창 안에 액자처럼 걸린 경포의 바다와 하늘에 매번 감동한다. 전문가의 손과 안목을 통과한 풍경이 늘 새로운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건축은 진정 텅 빈 캔버스와 같다. 주변 자연의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사실 이 건축은 사이트가 압권이다. 지역의 환경과 자연을 건축의 요소로 활용한 건축가의 의도를 드러내기에 적합하다.©jinwoo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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