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칼의 나라, 일본

제갈해리의 일본 탐구

by 제갈해리

꽃과 칼을 동시에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일본에 대해 쓴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의 관점만 보아도 그렇다. 매력적인 꽃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 일본을 우리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왜 일본이 매력적인 꽃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일까? 그것은 일본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관광 명소인 일본.


서양인들에게 아시아 국가 하면 생각나는 나라를 물어보면 단연 1위는 바로 일본일 것이다. 그만큼 일본은 세계 시민들에게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서양인 중에서는 일본의 문화를 동경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일본의 초밥은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고, 일본의 고궁들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너도 나도 일본의 전통문화를 배우고, 일본의 옷을 입어보고, 일본의 맛을 알고 싶어 한다. 우리 한국으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일본의 지진.


그러나 일본은 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국가이기도 하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있어 강도 높은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사방이 바다인 열도이기 때문에 해일도 자주 생긴다. 일본인들은 항상 재해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열도에 살고 있어 농사보다는 어업을 통해 해산물을 섭취하거나 약탈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바다에서 종사하는 인구가 많고 또한 해적들도 많다.


백제와 가야로부터 선진문물을 수용한 왜.


일본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 들어서야 야마토 정권이라는 국가가 등장했는데, 그전까지는 씨족 사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삼국시대의 국가, 특히 백제, 가야와 무역을 하면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다. 특히 백제는 자신의 문화를 일본에 전수해 일본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최근 일본 천황이 자신을 백제의 후손이라고 얘기한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만큼 백제문화는 일본문화에 뿌리 깊이 자리 잡았다.


여몽연합군에 맞서 싸우는 왜구.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는데, 일본의 해적들은 백제, 가야, 신라 등지에서 식량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학살했다. 오죽하면 왜구가 침입한 신라를 돕기 위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남하했겠는가. 이 왜구들은 고려, 조선시대까지도 빈번하게 우리 해역을 침범해 들어와 당시 조정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중국 대륙의 황하.


재해가 많이 일어나고 사방이 바다인 열도에 살고 있으며, 어업이나 약탈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일본인들은 대륙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넓은 평원과 그곳에서 수확되는 온갖 곡식과 열매들, 그리고 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안정성. 대륙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대륙 진출을 꿈꾸게 된다.


일본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의 한 장면.


일본의 한 가지 특징 중 하나인 칼. 그 칼은 전국시대로부터 내려온다. 사무라이들이 각 영지의 쇼군을 지키고 쇼군은 영지를 통솔한다. 쇼군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 사무라이들의 삶은 쇼군을 위해 존재했다. 그들은 전쟁에 나가 절대 후퇴하는 법 없이 적병을 처단한다. 승리하면 그들에게 영광이 주어지고, 패배하면 그들은 할복해 자결한다. 어찌 보면 인정사정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전국시대는 피의 바람이 불었던 때였고, 그 전국시대를 통일한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일본 전국시대의 삼영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얘기하기에 앞서 일본의 삼영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일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새장 속의 새가 울지 않을 때 세 사람의 위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우선, 오다 노부나가는 새가 울지 않으면 새의 목을 베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새가 울게 만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결국 인내와 끈기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서울 용산구 소재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임진왜란 전시물. 조선 해군이 왜군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살펴볼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새가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는 것은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순식간에 조선의 수도 한양을 점령한 것은 그런 집요하고 치밀한 성격도 한몫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성웅 이순신에게 보급로가 차단되어 퇴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


칼의 문화, 복종의 문화, 무사 문화가 전국시대부터 일본인들에게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 이것은 일본인들의 내면에 깊게 자리 잡은 계율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서양인들에게 보여준 얼굴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인 꽃의 얼굴이었다. 서양인들이 일본을 격식 있고 기품 있는 나라다, 예의가 바른 나라다 하는 이유가 바로 꽃의 얼굴을 한 일본인들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가채와 하얀 가부키 화장, 색색의 기모노, 그리고 여성들의 다소곳한 행동들. 그런 것들이 서양인들에게는 새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국화와 칼.


일본인들은 꽃의 얼굴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다. 일본인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은혜도, 원망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반드시 되갚아준다. 그들의 피 속에 흐르는 칼의 문화, 즉 복수의 문화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부터 내려오는 피의 복수와 적에 대한 불복종.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이 뜨겁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 같다고 한다면 일본인들의 성격은 차가운 숫돌에 벼린 칼 같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냉정하다는 말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인정하고, 한국에 사죄한 하토야마 前 총리.


일본 여행을 가거나 하면 여행가들은 너나없이 일본인들이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고 극찬한다. 일본의 예의와 우리나라의 예의를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의 예의가 형식적이며, 정형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주야장천 외치는 '고멘나사이'와 '스미마셍'은 어느 상황에서건 항상 쓰이며, 그 말을 남발하고 있다. 그들이 정말 미안해서 미안한 것인지, 미안하지 않은데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애니메이션의 나라 일본,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 일본.


필자는 일본을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으며, 일본의 훌륭한 전통문화와 일식을 좋아한다. 일본인 친구들도 몇몇 두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국가를 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며,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지만, 아직도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정치적으로 우경화되어 헌법을 고쳐서라도 다시 군국주의 국가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일본제국의 자살특공대 카미가제.


'카미가제'를 기억하는가. 신의 바람이라는 뜻으로, 원래 세계를 제패한 원나라가 일본을 정복하기 위해 수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넜다가 태풍으로 인해 모든 배가 좌초된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은 원나라의 일본 열도 정복 실패를 신의 도움이라 칭하며, 약 600년 후 2차 세계대전 자살특공대의 이름을 카미가제라고 짓는다. 오직 군국주의 국가에서 나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천황 중심의 통치 체계에 복종하고 있었다. 그래서 개인의 목숨보다 국가에 대한 희생을 강조했다. 이것 역시 칼의 문화요, 복종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우리와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심리적으로는 가장 먼 나라 일본의 이중성, 즉 꽃과 칼에 대해서 살펴봤다. 21세기 세계화의 시대에서 우리는 과연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지나치게 가깝게 대해서도, 지나치게 멀게 대해서도 안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일본과 일본인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기 전까지 우리는 일본을 쉽게 대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은혜도, 원망도 잊지 않고 되갚아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치밀하며 집요하다. 일본에 장인들이 많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지 않을까.


일본과 일본인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해야 하겠지만, 상호 간에 협력해야 할 부분에서는 협력하는 게 옳다. 우리는 과거만 사는 것도 아니요, 미래만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일본을 시시각각 신중하게 판단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