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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Jan 15. 2021

순백의 축복에 온몸으로 화답한 날

ⓒ 바람풀



이런 겨울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따뜻한 겨울로 기록된 지난겨울. 눈도 얼음도 구경하기 어려웠다. 올 겨울엔 함박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이어지며 강물이 얼었다.마을을 가로질러 굽이굽이 흐르는 화양천도 꽁꽁 얼었다. 여름에는 물장구치고 겨울이면 썰매 타며 뒹구는 솔멩이골 아이들의 놀이터.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알싸한 공기와 한 줌 햇살로 반짝였던 지난 주말, 몇몇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기로 작당했다. 왕소나무 마을에 사는 연욱이 남매, 입석리 별이네 송면리 혜인이네 남매. 그리고 다못골 지훈이 남매와 우리 집 지오와 나린 자매. 각자 컵라면과 간식을 준비해서 다못골 강가에 모였다.


어서 와. 얘들아.
한 집 두 집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빙판을 만들기 위해 썰매 타기 전 눈부터 치우는, 뭘 쫌 아는 아이들.
서로 밀고 끌어주고 뒹굴고 자빠지며 온몸으로 놀아보자.
꼬챙이 나무 썰매로 릴레이 경주


모두가 챙겨 온 형형색색 플라스틱 썰매는 내려놓고 다들 나무 썰매 타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나무판에 썰매 날을 달아 정목수가 만들어준 썰매다. 얼음판에 꼬챙이를 힘차게 내리꽂은 다음, 온몸에 힘을 빼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제자리에서 낑낑 대는 아이, 스스로 타는 법을 터득해 신나게 나아가는 아이, 가다가 자빠져서 빙판에 제 몸을 떼구루루 굴리며 노는 아이. 저마다 제 방식대로 썰매를 탄다.   


두 팀으로 나눠서 썰매 타기 경주를 시작했다.


"이겨라. 이겨라. 우윳빛깔 ***!"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친구 등을 밀어주며 아이들이 열띤 응원을 펼친다. 엄마들도 작은 썰매에 엉덩이와 두 다리 간신히 구겨 넣고 앉아 썰매 경주에 끼어든다.

낄낄낄 깔깔깔 까르르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재미질꼬?


누가 웃겨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다.

샘물처럼 퐁퐁퐁 솟구쳐 나오는 웃음이다.

온몸의 세포가 좋아 죽겠다며 터져 나오는 웃음이다.

놀이에 푹 빠져본 자만이 터트릴 수 있는 호탕한 웃음이다.

앞으로 걷게 될 험난한 길도 거뜬히 지나게 만들어 줄 단단한 웃음이다.  

이 웃음을 온몸 깊숙이 간직해야지.


코 끝은 시린데 몸에선 기분 좋은 열이 피어났다. 내 안의 어린이가 툭 튀어나와 동네 아이들과 한바탕 뒹굴며 놀았다.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웃을 수 있게 해 준 아이들의 힘이다. 언 강이 녹기 전에 한번 더 놀아야겠다. 그때는 불을 지펴 솥단지 걸어두고 어묵국을 한 솥 가득 끓이리라.


목화솜 이불 같은 눈밭에 누워 팔다리를 움직여본다.
눈 밭에 온 몸으로 날갯짓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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