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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Jul 09. 2022

이 뻑킹 서울을 이용해 먹을 거다.



슥 슥


‘뭐고. 누가 엉덩이를 쳐 만지고 있노.’


 대체 어떤 미친놈이 다 큰 남자의 엉덩이에 손을 가져가 대는가. 오른쪽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촉감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곧 쌍욕을 줄줄 흘리고 있던 내 눈에 손가방 하나가 들어왔다. 뒷사람의 손에 들려있던 그 손가방은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앞뒤로 왕복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쪽 끝 지점은 역시나 내 오른쪽 엉덩이였다.


 “하...”


 뭐, 그럴 수 있지. 이해는 한다. 다만 기분이 잡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속으로 ‘시발시발’ 거리며 옆으로 살짝 위치를 옮겼다. 물론 많이는 못 움직인다. 이미 빼곡하게 들어찬 버스에서 충분한 여유 공간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까.


띵동


 다행히 곧 내릴 때가 왔다. 하차 벨을 눌렀다.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에서 내렸다. 보도 블럭을 밟자마자 초여름의 습한 기운이 사방에서 달려든다. 워낙 높은 습도로 인해 ‘차라리 수영을 해서 가야겠네’ 따위의 잡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삑삑삑삑 드르륵


 한 5분 걸었을까? 집에 도착하여 도어락을 풀고 들어갔다.


 삑


 바로 에어컨을 파워 냉방으로 틀었다. 넥타이를 풀고 정장을 기계적으로 벗는다.




 “운동가기 싫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누워있었기 때문일까? 불금이기 때문일까? 이대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나태함이 기어 올라온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오는 원룸. 한 3평은 될까? 너무 좁아서 침대를 놓을 생각조차 못했다. 정말 고시원 방에 버금가는 코딱지 만한 크기다. 겨우 이딴 방이 전세 1억 2천이나 하다니. 속에서 열불이 채인다.


 ‘장난치나. 하동에서 1억 2천이면...’


 당연히 서울과 하동군 촌구석의 집값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의미 없는 투덜거림을 때려치웠지만 쓰린 속은 어쩔 수 없다. 타오르는 속을 달래기 위해 소맥을 말았다. 오늘은 불금이니까 참을 필요 없잖아. 운동이고 뭐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시원한 소맥이나 밀어 넣을 거다. 아, 물론 혼술이다. 몸뚱이만 가지고 올라온 나 따위에게 서울 친구가 있을 리 없잖아.


 그렇게 얼마를 마셨을까?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다음날이 되었다. 아마 취했나 보다. 뭐, 그건 그거고 눈을 다시 감았다. 주말인데 푹 자야할 거 아니냐.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오후 2시였다.


 대충 일어나 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다시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고 인스타를 보고 멍까지 때리다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 됐다. 배에서 배가 고프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배달 어플을 켜서 저녁 메뉴를 찾기 뒤지기 시작했다.


 ‘배달료 뭐이리 비싸노...’


 심한 곳은 5000 ~ 6000원까지 하는 배달료. 서민 음식 중의 서민 음식인 떡볶이를 시켜도 기본 2만 원이 넘는다. 이게 사람 사는 인생인가? 그래도 어쩌랴 주말인데. 결국 투덜거리며 주문을 넣었다. 그리고 배달이 도착하자마자 배를 채웠다.


 ‘심심한데?’


 하루 종일 뒹굴거렸기 때문인지 심심함이 몰려온다. 소화도 같이 시킬 겸 코인노래방으로 갔다.


 천원에 2곡


 이놈의 퍽킹 서울. 역시나 비싸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내 주민등록초본의 주소지조차 서울시로 표시되어있는데. 적응해야지 별수 있나. 속으로 투덜거리며 대충 노래를 불렀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은 느껴지지 않는다. 찝찝한 마음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글이라도 적자’


 잠시 걸었다고 전신에 흐르는 땀. 에어컨을 켜서 땀을 식히고 있으니 하루를 너무 대충 보냈다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죄의식을 덜기 위해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좁아터진 원룸 탓일까? 키보드 소리가 더 크게 울리며 내 귀를 자극한다. 그 소리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한다.


 “시발”


 습관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반년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기 때문일까? 가슴을 옥죄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하루하루 부정적으로 변해간다. 입에서는 욕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변해가는 스스로가 보인다.


 ‘이게 사람 사는 거가?’


 전쟁터 같은 출퇴근 길. 좁아터진 원룸. 비싼 물가. 술 한잔하자고 불러낼 사람도 없는 외로움. 밥만 먹고 살아가는 어제 오늘.


 ‘이렇게 살아가는데 굳이 비싼 서울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서울에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올라왔던 나. 그런 나를 걱정하던 지인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예상했던 걸까? 겨우 이 정도는 내게 아무런 타격이 되지 않을 거라 장담하던 내가 오기를 부렸던 걸까?


 겨우 이런 거에 흔들리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자존심이 상한다. 내 몇 없는 강점 중 하나가 독기와 끈기였는데. 고작 1년도 되지 않은 서울 생활에 백기를 흔들고 싶어졌다.




 ‘뭐가 문제냐...’


 스스로를 돌이켜본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어렴풋이 떠오른다. 문제는 서울의 답답함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나한테 있었다.


 나는 아무런 터전이 없는 서울에 왔으면서 내 고향에서처럼 지내고 있었으니까. 그냥 일만 하고 밥만 먹었다. 글을 쓰고 싶을 땐 글을 쓰고 친구를 보고 싶을 땐 지방으로 내려가서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지내놓고서는 하동에서의 평안함을 기대했다니. 그래서는 안 된다. 이곳은 서울이지 하동이 아니다.


 부모의 품? 내 고향? 내 사람들? 그 무엇도 없는 곳이다. 밥만 먹고 살면서 평안함을 기대하려면 고향인 하동으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려갈 수는 없다. 이미 기호지세다. 내려가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바퀴벌레처럼 어디에서든 적응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잖아.


 ‘서울에 왔으면 서울을 이용해라!’


 서울에 없는 것도 많지만,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문화, 인프라, 교육, 새로운 사람... 그 모든 것을 다 이용해 먹을 거다.


 그래서 움직였다. 아는 형님께 부탁하여 프로필 사진을 찍었고 인스타를 다시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 합평을 받는다. 독서 모임과 전시회를 나가서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제 진행중이다. 나는 하루하루 발전한다. 이 썩을 뻑킹 서울을 다 이용해 먹으면서 말이야.




 그럼 서울 생활의 외로움과 답답함은 어떻게 했냐고? 당연히 지금도 느껴진다. 아마 내일도 느끼겠지. 그런데 어떻게 하랴. 난 이걸 처리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냥 오늘 하루에 집중할 뿐이다. 고민해봤자 나오지 않는 문제는 내일의 ‘나’에게 떠넘겨버릴 뿐이다.


 이 선택이 미래에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면 그때 감당하겠다. 내 무식한 머리는 이 따위로 들이받는 것 밖에 떠올리지 못하니까.


 '그저, 내가 옳은지 그른지는 시간이 알려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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