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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철 Feb 04. 2022

내게 남아있는 일 들

내게 남아있는 일 들....


#1 생일상

 ‘소고기 국거리 부위로 반 근 만 주세요’ 시장 입구에 있는 정육점에서 아들의 생일 미역국에 쓸 고기를 샀다. 고기만 사다 놓으라는 그분의 주문을 어기고 설 명절 앞에 더욱 비싸진 딸기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낮에 비추인 햇살이 온 간데없고 어둑해지고 찬 바람까지 불었다. 어머니는 올해 구순이시고 아들은 꽃다운 나이인 방년이다. 찬 바람 부는 길 위에서 생일을 위해 나는 장바구니를 몇 번을 더 들어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아들의 생일상을 챙기는 나의 행동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미 변명해 주었기에 그렇다 치고 어머니의 생일상을 챙기는 ‘이기적 유전자의 배반 행위’는 몇 번이나 남았을까? 열 번이 채 남지 않았다. 열 번을 넘기기 위해서는 어머니는 백 세를 넘겨야 하고 그러기에 어머니는 지금 너무 약하시다.    


#2 장 담그기  

 매년 사당동에 사시는 친구 어머니를 도와 간장과 된장을 담근다. 어머니는 경상도 합천에서 올라와 서울 사당동에서 된장, 청국장, 두부, 콩나물을 직접 담그고 길러 시장에 내다팔아 자식들 모두 대학까지 보내신 분이다. 나는 전라도 익산에서 스무 살 때 서울로 올라와 경상도 어머니의 밥을 얻어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인연으로 지금은 일 년에 친구보다 어머니를 더 자주 뵙는다. 어머니는 연세가 올해 팔십 넷이고 건강도 예전만 못해 장사를 손에 놓은 지는 꽤 되었다. 그래도 간장 된장만큼은 집에서 직접 담그고 오래된 단골손님에게 까지 아쉬운 만큼이라도 나누어 먹는다. 매년 명절이면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가 주시는 밥을 먹고 손에 들려주시는 반찬을 들고 온다. 이번 설 명절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담백슴슴한 점심을 거하게 먹고 나니 어머니가 대뜸 말씀하셨다. ‘이번 간장 담그는 날이 평일인데 네가 올 수 있겠나? 못 오면 내 혼자 담가야 한다.’하고 외통수를 두셨다. 꼼짝없이 이번 간장은 어머니 감독하에 선수는 나 혼자다. 어머니와 간장을 몇 번을 더 담글 수 있을까?     


#3 고향 가는 길

 서울에 살면서 명절 귀성길은 늘 고행길이었다. 어느 해는 밤 열 시에 출발해 밤을 새우고 차 안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설 명절 귀성 전쟁에 참전한 횟수를 세어보니 서른 번은 족히 되겠다. 추석까지 더하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의 회귀 본능과 다름없다. 코로나로 인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방송으로는 귀성길을 막는데 역부족이다. 고속도로에 몰려든 차량은 얼음이 녹고 물소리 청명한 개울에 몰려든 은어떼이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더욱 끔찍했다. 7시간의 운전과 15분의 휴식을 거쳐 서울에 돌아왔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귀경길도 어쩌면 내게 몇 번 남지 않았다.     

 


 세상에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만물이 무상하기에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알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깨우친 양반이 붓다이다. 한편으로 만물이 변하지 않고 영원한 세상을 그려보니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어 보인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는 불멸의 삶을 끝내기 위해 도깨비 신부 김고은을 찾아다닌다. 영생이 곧 형벌이다. 시지프스 신화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끝없이 반복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역설적으로 세상이 무상하다는게 참 다행스럽다. 

내게 몇 번 남지 않은 일들이 점점 쌓여간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온 일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세어보면 지금 이 순간의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오히려 끝이 있기에 삶은 고통스럽지만 살만하고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내게 남은 겨울 중 한 번이 지나고 있다.  앞으로 내게 남은 계절의 숫자를 헤아려 본다. 곧 다가올 봄에는 이름을 달아 주어야겠다. ‘내가 발견한 첫 번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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