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하여...
시간 속에 피투 된 모든 생명은 동일한 운명을 타고났다. 내일은 알 수 없고 내일은 반드시 오고 만물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이 운명을 알면서 인간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내일에 대한 불안이 생존에 유리한 여러 행태를 만들어냈다. 무리를 짓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내일을 예측하려 경험을 동원하며 때로는 기다리지 못하고 내일을 결정짓는다. 인간은 잠시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내 안의 내 목소리가 멈추지 않는 이상 내버려 두고 지켜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서두에 감당이 안 되는 거창한 말을 써놓았나 싶다. 정작 내가 하려는 말은 내일은 정말 모르겠고 지나고 보니 그 내일이 어느새 지나버렸더라고 조잘대고 싶었다. 오늘을 살다 보면 알 수 없는 내일도 지나버리고 그러다 보면 생은 어느새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은 수시로 상기시켜야 한다. 믿음은 휘발성이 강해 입만 벌려도 한숨 속에 섞여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당연한 선택보다 당연하지 않은 결정을 내릴 때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강요된 선택에 내몰려 살더라도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맨발로 걸어가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내일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 놓은 환상처럼 느껴진다. 혼자서 깨우치고 홀로 결정짓는 삶은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 내가 아침에 배우기 시작한 배드민턴 조차도 레슨을 받아보면 그전에 나는 배드민턴 채를 잡은 게 아니라 파리채를 휘두르고 다녔다.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한다. 선생님을 잘 만나야 환상 같은 삶이 눈에 그려지고 손에 느껴지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대충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지금 불안하다. 코로나로 가족들이 감염되어 일주일을 집에 갇혀 지냈다. 상투를 잡은 주식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어머니의 병세는 호전과 악화를 거듭한다. 아들은 새 학기를 맞이하러 집을 나가 살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불안과 손을 맞잡고 오는 녀석은 걱정이다. 걱정 중에서 요즘은 서로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섞여 있다. 인간은 거짓말을 통해 무리를 짓고 서로의 안전을 담보한다. 결혼하면서 우리는 서로 정치와 종교에 대해 집에서는 중립지대로 선언하였다. 따라서, 집에서는 각자 믿는 바를 상대의 허락 없이 말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지금 밖에 나가면 반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거짓말을 만들어냈으면 한다. 이 세상은 누구라도 살아갈 땅과 공기를 나눌 수 있다.
세상의 반이 여자이고 그 여자를 사랑한 존 레논의 ‘woman’의 가사처럼 말이다.
Woman
Please let me explain
I never meant to cause you sorrow or pain
So let me tell you again
And again and again
I love you, yeah yeah
Now and forever
I love you, yeah yeah
Now and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