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리터 물통 두 개를 사서 물을 채우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실었다. 할아버지 산소에 심은 소나무 ‘반송’에 물을 주기 위해서이다. 아버지는 8대 조부모님 묘까지 관리하는 일을 서울 사는 나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되겠다고 몇 년을 두고 말을 하시다가 구십을 넘기고서야 묘지정리를 결행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할아버지 묘까지는 나에게 남겨놓고 몇 해 전에 작고하셨다. 매년 벌초를 아니한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할아버지 산소는 칡넝쿨의 습격이 거세었다. 급기야 칡넝쿨에 갇힌 할아버지 산소는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성질급한 나는 늙으신 작은 아버지를 설득해 할아버지 산소마저도 파묘를 강행했다. 그래도 조금의 성의를 다하겠다고 봉분을 없앤 자리에 반송 한그루를 실한 놈으로 골라 심고 상석과 갓비석은 그래로 두고 반송 아래에 조부모님들을 다시 모셨다. 묘지의 산일은 하루 종일이 걸렸고 일을 다 마치고 난 후 작은 아버지는 아침의 섭섭함이 조금 가신 듯 나에게 고생 많았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가셨다. 그게 작년 추석을 지난 직후의 일이다.
물통에 물을 받아 차에 싣고 할아버지 산소에 내려가는 내 모습에 기가 찼다. 이제껏 작은 아버지가 벌초한 할아버지 산소에 추석 말고는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내가 심은 소나무 ‘반송’이 발단이었다. 모든 일이 잘 마무리가 된 듯 보였다. 봉분이 있는 묘지는 모두 정리가 되었고 상징적으로 좋은 소나무 한그루를 심고 주변 정리를 마쳤다. 서울에 올라와 한동안은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는 잘 살까?’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이 스파크를 일으켰고 곧바로 지식백과사전을 뒤지기 시작했다. 소나무는 이식하고 관리해주지 않으면 삼 년 동안 생존할 확률이 삼분의 일이라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소나무를 이식한 상태는 사람으로 따지면 암환자와 같다는 말까지 들은 이후에 온 신경이 소나무에 쏠렸다. 다음날 종로 농약상에 가서 살균살충제와 뿌리 발근제 등 약제를 샀다. 소나무를 심은지 한 달 만에 다시 산소를 찾았다. 문제는 물이었다. 물통을 들고 산에 오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쉬면서 들고 온 물이 메마른 땅에 흔적 없이 사라지면 한 숨만 나왔다. 다시 내려가 물을 길어 오려면 읍내에서 물 동냥을 해야만 했다. 겨울을 지내고 봄에 두 번을 다녀오고 오늘은 물을 주고 제법 무성해진 가지를 쳐서 통풍이 잘 되도록 해주었다. 삼 년을 버티고 살면 소나무가 땅 맛을 알아서 잘 살 수 있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물을 지어 나를 도리밖에 없다. 일을 마치면 오는 길에 사 온 술을 올리고 추석 외에는 해 본 적이 없는 절을 두 번 올렸다. 추석 때도 안 오겠다는 마음으로 묘를 정리했는데 이제는 서울에서 물 길어다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다시 한번 기가 찼다.
심리학에서 자주 나오는 이론 중에 ‘인지부조화 이론’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생각이나 태도와 행동이 서로 모순될 때 마음이 불편해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내가 허리와 어깨가 쑤시도록 할아버지 산소에 물을 길어 나를수록 아마도 나는 한 번도 보지도 못한 할아버지와 징조 할아버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오늘 절 두 번 올릴 때는 속으로 할아버지에게 말까지 걸었다. 아마 아버지도 그래서 구십이 넘으시도록 8대조 할아버지까지 산소를 지키셨나 보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산소에 갈 때마다 산을 넘으면서 이 분은 네게는 4대조 할아버지 할머니이시고 다시 산길을 걷다 이 분은 너의 7대조 이시다라고 말씀하시면 나는 자동적으로 절 두 번으로 잊어버렸다. 매년 반복했지만 어느 묘가 몇 대조인지 알 수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추석에 절 두 번으로는 선산을 지킬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내가 오늘을 돌아보니 아버지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