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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스카이 Sep 11. 2019

3. 이 시간을 성공적인 투자로 바꿀 수 있을까?

직장을 다녀야 할까.

얼마 전 직장에서 일을 하니 행복하다는 동료의 말을 들었다. 같은 날 회사를 욕하고 비난하는 동료도 어김없이 만났다. 상황 나름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지금처럼 일하는 것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노동은 늘 나의 귀한 시간을 빼앗아가고 급여로 속박한다. 회사는 업무에 대한 몰입을 강조하고,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나를 구속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심지어 사상도 지배하려고 한다. 집단 최면을 거는 것인지 1년 내내 같은 구호를 외치게 하고, 때로는 정규 근무시간을 넘어 (내 의사는 묻지 않은 채.. 잦은 일이다) 회식이니 등산이니 끌고 다닌 적도 있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노동 계급임을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이런 식의 직장 생활로는 도저히 행복하지 않다. 


꼰대들도 알고 있다.


후배들에게 직장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거나, 회사와 자신의 발전을 같이 그려보라고 제안한다면, 보통 결론은 그렇다. 꼰대라고 불리게 된다. 실제 이야기 나누다 보면 회사와 자신의 인생이 엄연히 서로 다르다는 관점을 가진 후배를 만나기 어렵지 않다. 그들에게는 조직과 개인의 발전을 동기화하거나 연결시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치부된다. "이렇게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저 자신이 기특합니다. 회사가 비전을 제시 못 해주는데. 나는 이직이든 사업이든 내 삶은 스스로 챙겨야죠. 딱 월급만큼만 합니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더 이상 크게 저에게 바라지 마세요."라는데 사실 더 할 말을 찾기 어렵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것이 통용되는 지금의 기업들. 조직 내 정치 세력이 진리와 정의를 왜곡시킨다. 직원들의 사기는 꺾여가고, 통찰력 있는 CEO가 그립고, 미래를 향한 의기 충전한 선포식 따위는 기다리다 지쳐간다. 단기 실적으로 자리 연명만 하려는 경영자들의 꼼수가 보이고, 직원들의 경영진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치닫는다. 변화의 시대에 맞서라 외치지만 뚜렷한 전략도 으니 어쩌라는 건지 도통 이해되질 않고, 그래서 길을 잃고 동력을 잃어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이 모든 상황이 구성원들에게 걱정이자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와서 이런 회사와 함께 발전을 그려가자는 말이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펀드멘탈적으로 당장 망하지도 않을 회사인데, 중간관리자로서 침몰선이니 망할 회사니 불안을 조성하며 무작정 직장을 떠나라고 두둔할 일도 아니다. 실은 둘 다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흔들린 세상에서는 누구도 절대적인 시비를 가려낼 수가 없다."


회사는 결국 성과를 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다.


IMF로 아버지들이 희망퇴직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세대들이다. 외국계의 기업 문화가 들어오고(좋은 부분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직이 보편화되고, 지금의 노동 유연성까지. 많은 제도가 자본가들의 입장을 더 반영하는 것 같다. 이런 환경 속에 성장해 온 세대들이 지금의 대한민국 회사를 바라보는 인식은 분명 냉정하게 변해 있다. 한때 대한민국 산업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던, 조직 우선의 획일적 일방적 기업 문화는 이제 시대의 변화 앞에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맹목적인 외국기업의 문화나 인사제도 도입으로 인해 부작용이 나타났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와 조정은 계속되었고, 한국 기업이 서서히 달라지고는 있다. 새로운 세대와 기존 세대를 아우르는 포용의 조직문화 형성에 공을 들이고, 또한 창의와 능률이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다양성(Diversity)과 즐거움(Fun)이 기업의 핵심 가치(Core Value)로 등장함이 매우 당연해지고 있다.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회사는 늘 카멜레온과 같이 수시로 생존을 위한 변신을 추구하며, 시대적 요구에 응하여 왔다. 구글에서는 사내에 마사지 안마 의자와 낮잠용 침대가 버젓이 있고, 넥슨은 종일 게임을 하며 오류를 찾는 재미있어 보이는 업무도 한다. 이직 스카우트 등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한 IT업종의 파격적 횡보와 달리 일반 제조사들은 상당 변화가 느린 면이 있다. 하지만 즐기는 회사, 놀이터 같은 회사라는 콘셉트까지 시도하고, FUN경영이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이런 활동으로 회사의 대외 이미지는 많이 쇄신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현직에 있는 직장인들과 대화를 해 보면, 이런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부 구성원들은 조직 문화의 변화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실제로 일을 하는 현직 직장인들은 왜 이런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가. 노동 생산성 극대화를 통해 이윤을 추구한다는 기업의 본질적 목적이 변한 적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문화 혁신 캠페인도 사실 더 나은 성과가 기대될 때 가능한, 즉 일종의 투자일 뿐이다. 조건이 좋은 회사가 있는가? 그 말은 그만큼 일을 더 해야 한다는 뜻으로 간주된다.


회사는 결코 우리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산업 발전과 학문적 기틀 속에서 자본가들은, 그들의 추종자 엘리트 집단을 통해 늘 노동자 계급을 늘 연구하고 관리 방식을 진화시켜 왔다. 회사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운영 체계는 모든 학문적 토대 위에서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은 학자들이 완성한 집단 지성과 전략의 산물이며, 노동의 효율적인 착취라는 목표에 최적화되어 있다. 인간공학, 산업공학, 심리학, 경영학 등, 오랜 탐구와 노력의 결정체가 형상화된 것이 바로 회사라는 조직이다.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고, 자본주의를 떠 받친다. 급여와 보너스는 이들이 고안해 낸 유용한 경영 전략의 툴이자, 노동자를 사육하기 위한  먹이가 되어,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회사에 예속하게 만든다. 급여는 달달하고, 성과 조건부 보너스는 당신의 역량에 차별화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존감을 고취시켜 준다. 회사를 통해서 자신을 검증하고 평가를 받으면서 안주하게 된다. 회사의 노림수이다.


한편으로는 이 위대한 조직 시스템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니, 위선적이다. 이렇게 정해진 틀 속에서 안주하다 보면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잠재적 역량들은 표출될 수 있는 기회마저 잃게 될 수 있다. 세상을 홀로 마주할 수 있는 본능과 그 야생성은 퇴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체성을 잃지 않고 직장을 다니는 것이 필요하고, 특히 급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추후에 다루도록 한다)

 

순응하는 것도 떠나는 것도 쉽지 않다.


직장을 다니는 것 만으로 우리는 무조건 예속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곳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제 진실을 마주하자. 회사는 혹독한 곳이고, 나는 이 곳에서 반드시 무엇인가 보상을 얻어내야 한다.


아메리카노 한잔을 손에 들고 남녀가 어울려 웃는 회의 문화. 스트레스 없는 여유로운 직장생활을 그려 보지만, 사실 이것은 환상이다.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그런 모습은 달갑지 않으니 완성될 리 만무하다. 와해성 혁신(Disruptive Innovation)과 창의적 사고를 주창하는 일부 기업에서 근무 환경의 개선이 시도되고 있지만, 기업 총수와 자본가들의 진정한 인식 변화가 전제되는 것인지는 아직 의문이다. 결국 성과 없는 회사란 그들에게 구조 조정 내지 처분의 대상이고, 아직도 많은 경영자들에게 직원은 회계처리 상 비용에 해당한다. 숫자를 빼고, 우리의 행복과 미래를 담고 가는 공간으로 직장이 묘사된다면 허상이다.


주 40시간이라는 현 정부의 노동 정책이 현실화되려면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경영 혁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혁신과 업무 방식의 변화 없이, 노동시간만 줄이면 기업의 생산성은 현저히 저하될 수 있다. 이것은 노사를 떠나 모두가 공멸하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업무 효율을 강화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는 지지부진하고, 그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회사는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고, 노동자들에게는 혹독하다. 오늘도 눈 앞의 실적만을 닦달하며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우리가 누리는 조금의 여유에도 제동을 건다. 실적에 치이고, 이리저리 팀 회의, 사업부 회의에 불려 다니며, 성과 촉진 방안을 보고하고 돌아오면, 그 보고는 또 다른 보고로 이어지며 늪에 빠지게 된다. 당신에게 그럴싸한 환상을 씌우겠지만, 뼈 속까지 세뇌시키며 성과를 위해 달리도록 재촉할 것이다.


"수년 또는 수십 년을 바칠지도 모를 시공간에 대해, 진지한 고찰 없이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무책임한 방치이다."


나와 당신이 함께 인생의 상당 시간을 바치게 되는 직장이라는 곳의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시스템 속에서 순응하여 안주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결코 쉽거나 즐거워서 택한 것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직장은 태초에 즐거움을 주기 위해 고안된 공간이 아니다. 그리고 물리학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인지 이 공간의 시간은 바깥세상보다 빠르게 간다. 하루하루가 어느새 수년 또는 수십 년이 되어 버리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당신이 선택한 길이다.


당신에게도 선택권은 있다.

주당 수십 시간씩 자신의 삶을 직장에 바치던지, 일찍이 다른 일에 도전하든지. (사실 바친다는 표현은 너무 세속적이고, 사고의 전환을 위해 투자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바른 듯하다.) 이 직장에 투자를 한다면, 회수하고자 하는 목표와 회수기한은 명확한가. 현재의 삶을 투자한다는 것은 더 나은 미래의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투자는 누가 주도하는 것인가. 나의 미래를 회사에 맡기는 것이라면, 회사와 나를 분리하여 각자의 이상과 발전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인가. 이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이므로 고민해 보게 된다.


현재 시간의 효용 가치를 극대화하고 더 나아가 보다 풍요롭고 안정적인 미래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현재 개인의 가장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직장과, 그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더불어 공생 발전을 강구하는 통찰이 필요하다. 시간 투자 대비 효과를 고려한다면 직장 내 성공에 도전하는 것이 결코 멍청한 일벌레들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개인과 직장을 이분법으로 격리할수록 양쪽 모두에게 비효율이라는 트랩(Trap)에 빠지게 된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인생을 살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니, 반드시 신중히 고찰해 볼 것을 제안한다.


회사도 회사 나름이다고 말할 수 있다. 기업 철학도 오너의 신념도 없는 썩어빠진 회사도 있기 마련이다. 또한 좋은 근무 환경과 개인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우수한 기업도 있을 것이다. 직원 성장을 위한 체계가 없거나, 있어도 현업에 휘둘리다 보면 활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결국 회사라는 환경에 나를 무조건 맞추고 방치하면 확률적으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비판과 수용, 타협과 변화를 적절히 병행하여, 회사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 삶의 일부로서 회사 생활에 대한 주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치와는 다른 것이다. 정치는 조직 내 세력을 만들고 부조리에 타협하기도 한다. 주체성이라는 것은 회사를 자원으로 보고, 이 자원을 활용하여 미래의 자신과 그 삶의 지향점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다.  


성공도 다양한 형태일 수 있다. 승진이 되어 임원을 노릴 수도, 업무 전문성을 쌓아 이직하며 연봉을 올릴 수도, 미래 독립 사업을 위한 예행 경험을 해 볼 수도 있다. 직장의 감시와 요구에 타협하고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일수록,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꾸준한 성과 창출로 조직과 신뢰가 만들어지게 되면, 더 재미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기회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수준을 넘어, 자신 스스로 선택하여 활용할 수도 있게 된다. 힘들어도 많은 사업적 경험을 영위하고 자신의 성장에 도전해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부담 가는 주요 업무를 교묘히 피해 가며 [길고 오래가자]는 시간 때우기 식 직장 생활을 할 수 도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성취하며 인정받음과 동시에 개인의 경쟁력 향상과 주체적 미래를 성공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 두 관계의 타협점을 인지하고, 공생적 발전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 조직에서는 바로 이들을 엘리트라 부른다.


생각이 행동을 지배하고, 행동이 미래를 바꾸는 법이다


세상에 공짜 없고, 내가 투자한 만큼 회수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저 불평불만만 가지고 직장을 대하기에는, 자신의 인생과 시간을 건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아마 생애 최대의 투자 중 하나가 직장일 것이다. 자신의 삶에 주체적 책임을 지고 갈 나이에 이제 이런 투자를 하였다면, 투자된 만큼 가치가 회수되어야 한다. 여기서 가치란 반드시 급여액 복지 같은 금전적인 보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세상을 경험할 수 있고, 더 나은 전문성을 체득할 수 있는 업무 환경과 기회 같은 역량체득 보상도 포함된다. 두 보상 조건의 밸런스가 중요할 수도 있고, 특정 보상이 압도적으로 나을지도 모른다. 직장이 의미가 있으려면 이런 보상이 명확해야 한다. 금전적인 면만을 보고 선택해서는 안된다. 5년이든 10년이든 직장에 투자한 기간 동안 자신의 시장 가치와 프리미엄이 완성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변하지 않는 회사의 변화를 기다리며 살기에는 우리가 너무 많은 소중함을 투자하고, 베팅하고 있다. 결국 나의 주체성만이 나를 이끌 수 있다. 어떤 직장인의 모습으로 살기를 선택하든지 미래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결정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점이다.

"생각이 행동을 지배하고, 행동이 미래를 바꾸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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