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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Dec 05. 2023

동생과 돼지저금통을 털었다.

처음 시작은 돼지 저금통이었다. 나와 성준이는 빨간색 돼지 저금통이 하나씩 있었다. 천성이 부지런한 부모님은 절약과 저축을 강조하셨다. 200원이라도 용돈을 받으면 100원은 저금통에 넣도록 가르치셨다. 우리 집 돼지 저금통은 항상 배가 불렀다. 그런 돼지 저금통을 잡는 날이 올 줄이야.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서 나와 성준이는 오락실 게임에 빠졌다. 한판에 50원 하는 오락실게임이 왜 그렇게도 재미있던지 10살 12살 형제는 신나게 손을 흔들며 오락실을 다녔다. 물론 엄마의 눈을 피해서. 용돈이 풍족할 일 없었던 우리는 항상 아쉽게 끝이 나는 오락실 게임에 중독되었다. 이제 마당에서 딱지치기 공놀이는 제쳐두었다. 둘이 마당 볕 좋은 곳에 앉아 어제 했던 게임을 자랑하기 바빴다. 우리 손이 얼마나 빨랐는지, 왕의 약점이 어디인지 머리를 맞대고 쑥덕쑥덕 잘도 떠들었다.


"형 돈 있어?"

"어제 다 썼지. 넌 있냐?"

"나도 어제 다 썼지. 형 진짜 돈 없어?"

"우리 받은 거 저금통에 다 넣었잖아"

"형 나 저금통에서 돈 꺼내는 거 알아"


열고 닫는 게 없는 빨간 돼지 저금통이었지만, 가늘고 길쭉한 자나 가위 같은 걸로 동전 입구를 살짝 기울이면 그 틈새로 동전 한두 개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곶감 빼먹듯 돼지의 배를 비워 나갔다. 가득 찬 돼지 저금통을 자랑스레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우리는 돼지의 배가 비어 갈수록 엄마에게 들킬까 두려워 옷장이나 책상아래 돼지 저금통을 숨기곤 했다. 그러고도 돼지 저금통은 금세 비었고, 마지막 동전까지 빼내어 오락실로 달려갔다.


"형 돈 없어? 이제? 우리 오락실 못 가?"

"우리가 돈이 어딨냐? 돼지 저금통 알면 우리 엄마 아빠한테 죽어"

"나 오락실 가고 싶다고~ ㅠㅠ "

"알았어 기다려봐"


집을 사는데 모든 저축을 다 사용하시고, 공무원의 박봉으로 생활하시던 부모님은 성준이의 당뇨병으로 더 쪼들리셨다. 약값이며,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여비며 돈이 모일 수가 없었다. 결국 어머님은 아침에는 우유 배달 낮에는 보험 영업을 하시며 돈을 버셨다. 당시에는 보험비를 직접 수금도 하셨나 보다. 어머니의 가방에는 항상 현금이 들어있었다. 20~30장이 되는 돈이었고, 우리는 한 두장이 비어도 모르실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보험 가방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슬쩍 가져왔다.


그날 이후 우리는 오락실의 VIP였다. 50원에 한 판 게임을 할 수 있는데 만원이면 200판이 넘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동네 또래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 우리가 하는 게임을 부러운 듯 쳐다보고 따라다니는 꼬마에게 100원을 주고, 같은 반 친구를 우연히 만나 또 100원을 주었다. 그리고 신나게 게임을 했다. 하루에 천원도 금방 썼다. 쓰고 남은 돈은 차마 집안으로 들여오지 못하고 마당 깡통에 넣어 돌틈사이에 감추었다. 그러면 절대 모르실 거라 믿었다. 그렇게 서너 번 엄마의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훔쳤다. 당시엔 훔쳤다 생각도 안 하고 그냥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댄 것이다. 어머니가 훗날 말씀하시길 처음 한 두 번은 어머니께서 돈을 잘 못 세었던가 어디 빠트리셨다고 생각하셨단다. 하지만 세 번 네 번째가 되자 우리들이 손을 댔다 생각하셨고, 어디 나쁜 형아들이 돈을 가지고 오라고 시켰을까 걱정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를 몰래 따라오셨고, 우리는 오락실에서 딱 걸렸다. 그리고 정말 뒤지게 맞았다.


"으앙~~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

"엄마 이젠 정말 안 그럴게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누가! 어디서! 엄마 지갑에 손을 대?! 누가 그렇게 가르쳤어?! 엄마 아빠가 그리 가르쳤어?!"

"엉엉.. 아니.. 오락실.. 에서.. 으흑 어떠ㄴ 형들이... 흙 돈 가지고 오라고"

"너 내가 못 본 줄 알아? 어디서 거짓말까지 해에? 내가... 내가 왜... 새벽으로 낮으로 이렇게 일을 하는데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일을 하는데애~~ 어떻게 니들이 그럴 수 있어어~? 니들은 엄마가 안 보여? 엄마 아빠 힘들게 일하는 게 안 보여?"


나는 왜 그랬을까? 제 딴에는 덜 혼나 보겠다고 있지도 않은 오락실 형들을 방패 삼으려 거짓말까지 지어냈다. 나는 몰랐다. 엄마가 이미 다 파악하고 우릴 꾸중하신다는 걸. 내 얕은 꾀는 어머니의 마지막 보루를 무너뜨렸다. 어머니도 지쳐있었다. 어린 시절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던 배고픔도, 젊은 시절 남의 집 살이를 해가며 돈을 벌던 창피함도, 결혼하고 자신의 집을 갖기 위해 동전하나를 아까던 그 어려움도 그녀를 어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건강은 그녀를 삶에 지치게 만들었다. 평생을 나아지지 않는다는 말. 평생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초롱초롱 눈망울을 가진 9살 아이에게 이해시킬 수 없었다. 나아질 수 없다는 말에 지쳤다. 평생 이라는 말에 지쳤다. 그녀의 잘못인 듯 지쳤다. 그렇게 그녀도 지쳐가고 있었다.


뒤지게 맞았던 우리 형제는 거기서 속옷만 남겨놓고 마당으로 쫓겨났다. 생전 이런 일을 당해 본 적 없는 우리 형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둘 다 하얀 빤스 한 장에 눈물 콧물 줄줄 흐르는 그지 같은 몰골이었다. 다행히도 대문밖으로는 쫓아내지 않으셨다. 대신 현관문을 잠그셨다. 우리는 현관 앞에서 잘못했어요를 반복하다 너무 추워서 보일러실로 갔다. 연탄보일러의 뚜껑을 여니 뜨끈한 열기가  추위를 가시게 했다. 뜨거운 연탄불에 빨간 손을 녹여가며 엉망이 된 서로를 바라보고는


"형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이게 왜 나 때문이야. 너 때문이지! "


서로에게 책임을 미뤘다. 엄마에게 혼났다는 것도 잊은 철부지 소년들은 보일러실에서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싸웠다. 매캐한 연탄 냄새에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형 냄새가 이상해 머리 아파"

"너도 그래? 잠깐만"


"엄마~ 성준이랑 보일러 실에 있는데 머리가 아프대요~ 문 좀 열어주세요"


엄마는 다 듣고 계셨나 보다. 내가 말하자마자 부리나케 문이 열리고 성준이와 나를 들여보내 주셨다. 일단 옷을 입혀 주시고는 동치미 한 사발을 성준이와 내게 나눠 먹이셨다. 연탄보일러가 돌아 따스한 아래목에 우리 형제는 눕히고는 손발을 주물러 주셨다. 가만히 누워 쌕쌕 거리는 우리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고, 우리는 연탄가스 덕에 일찍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지친 눈빛이 아니셨다. 동생을 바라보는 눈빛엔 널 지켜내고 말 거라는 다짐이 보였다. 어린 시절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못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어머니의 눈빛을 이해한다. 어머님의 다짐과 감정을 알 것 같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 동네 오락실은 VIP 형제가 사라져 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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