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이에게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더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기회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지나가기도 하고, 스스로 날려버리기도 했다. 인생은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후회는 우리의 지나온 인생에 스키드 마크를 남기고, 돌아보고 돌아보게 만든다. 때로는 그 시간에 머물러 나아가지 못한다.
성준이 23살때 처음으로 췌장 이식의 기회가 있었다. 1형 당뇨병은 췌장이 제 기능을 하지 않아 인슐린의 분비가 전혀 되지 않는 병이다. 췌장을 이식해 정상적으로 움직이면 어느정도 치료가 가능하다. 어머니는 장기이식을 신청해 두신 상태였고, 그 일정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췌장은 인체에 하나 뿐이다. 신장이식처럼 둘 중 하나를 기증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췌장 이식은 대기자도 많을 뿐 아니라 기회 자체가 적다. 소위 누가 죽어나가야 살 사람이 생긴다. 잔인하지만 누군가의 삶이 끝나야 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죽음이 누군가에겐 살아갈 기회가 된다. 슬프기도 잔인하기도 하다. 그 방법밖에 없다.
신청을 하게되면 순서가 될때까지 기다리는게 일이다. 몇 년이 될지 십 년이 될지 모른다. 그 기간을 가능한 최고의 컨디션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일정이 잡히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입원을 해야 한다. 빠르면 당일로도 입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매일이 스텐바이다. 성준이의 첫번 째 기회는 이렇게 왔다.
"성준이 어딨니? 어디있는지 알아?"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걸려온 어머님의 다급한 목소리. 혹여나 성준이가 응급실에라도 실려간걸까? 거기서 어머니한테 보호자를 찾는 전화가 온걸까? 아니 그러면 성준이가 어디있는지는 아셨을 텐데..
"아뇨 성준이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무슨일 있어요?
"그게..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누군가의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이상 성준이가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고, 어머니가 더이상 조마조마하시지 않아도, 더이상 간이 없는 음식을 하시지 않아도 되는 날이 될 수도 있다.
"오늘 밤 12시까지는 병원에 와야 한다는데...성준이가 연락이..."
아...머릿속에 성준이의 술버릇이 떠오른다. 성준이는 술을 마시면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그뒤로도 나도 어머님도 몇차례나 더 성준이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으나 모두 받지 않았다. 그 당시엔 어느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알지도 못했다.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나갈 뿐이다. 그냥 지나간다고 하기에 우리는 너무 허망하게 그 기회를 날렸다. 밤새 성준이는 들어오지 않았다. 경험상으론 어딘가 친구집에서 자고 있을 터다. 나는 늦은 시간까지 뒤척이다 늦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어제밤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내가 꿈을 꾼 것인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인지. 어느쪽도 비현실적이었다. 비몽사몽에서 비현실을 논하다 핸드폰 통화내역을 보고서야 어제밤 일이 사실임을 알았다. 낮에도 성준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밤이 늦어서야 흥얼흥얼 콧노래와 함께 성준이는 들어왔다.
"너. 어디있었냐?"
"나? 민수네서 자고 왔지?"
"전화는? 왜 안받는데?"
"전화? 술먹다 몰랐지."
"그럼 아침에라도 해야할것 아냣!"
"뭐 급하면 다시 했겠지 싶엇"
성준이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짝 소리와 성준이 얼굴이 돌아갔다.
"에이 C팔 왜 지랄인데? "
"너 어제 무슨일이 있었는지나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전화는 왜 전화는 안받아서! 너! 어제 병원에서 전화왔었어. 이식수술하자고"
"에이 썅 그래서 뭐? 내가 못받은건데 왜 니가 지랄이야? "
"뭐 이새끼가 진짜 죽고싶냐?"
"뭐 내가 C팔. 맞아주니까. 만만하냐 어휴 내가 형이라 참는거야 그나마 형이라고 에이 씨X"
들어오던 그대로 성준이는 다시 돌아 나갔다. 어쩌면 살면서 처음 당해보는 동생의 댓거리에 나도 적잖이 당황했지만, 다 커서 형한테 뺨을 맞은 성준이도 꽤 당황했을지 모른다. 방이 하나밖에 없는 원룸. 그날 같이 있었으면 우린 서로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분에 못이겨 식식거리는 나를 두고 성준이는 다시 집을 나섰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마주치지 않은 것 같았다. 학교가 먼 나는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나 돌아왔고, 낮 사이에 사람이 오간 흔적이 종종 있는 걸 보면 집에는 다녀간 듯했다. 그렇게 또 대면대면한 형제가 되었다.
어머니는 마음이 급해지셨다. 오래 걸리리라 생각했던 이식을 코앞에서 해보지도 못하고 기회를 잃어버리니 어머니는 무언가 쫓기는 사람처럼 움직이셨다. 인터넷도 잘 모르시는 분이 전화기 하나만 들고 서울 온갖 곳을 다니시며 사람을 만나고 다니셨다. 전보다 더 자주 전화를 하셨고, 성준이의 안부를 물으셨다. 내게 전화를 하는 건 성준이가 받지 않을 때 내게 전화를 하시는 거 알고 있다. 어머니의 전화가 점점 자주 걸려왔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우리를 본가로 부르셨다. 우리는 고속버스 앞뒤로 앉아 본가로 향했다. 간만에 집에서 밥을 먹었고, 여전히 밥에 간은 없었다. 성준이 온다고 밥에 간을 싱겁게 하셨다 생각했다. 그러나 성준이가 죽은 이후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간이 없는 그 밥상을 차리신다. 이제는 성준이를 차려줄 밥상도 아니신데 여전히 그렇게 밥을 드시고 계셨다. 아마도 성준이가 서울로 대학을 가신 이후에도 부모님은 계속 그런 밥상을 차리셨는지 모른다. 타지에서도 아이가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부모님은 맛있는 밥상을 거부하셨는지 모른다. 어쩌면 성준이가 나을 때까지 그렇게 식사를 하기로 하셨는지 모른다. 결심을 하신게 아니라 삶의 방향이 그 길을 가르키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좀 알아봤는데..."
그동안 여기저기를 다니시며 찾은 정보며, 사람이며, 기관을 30여분에 걸쳐 설명하셨다. 골자는 미국에서 수술을 받고 오는 것이었다. 성준이의 결정만 하면 수속 진행이 가능하다고 하신다. 여기저기 이면지에 적어오신 정보, 수첩 귀퉁이, 신문 쪼가리 달력뒷면 .... 변변치 않은 수첩도 없으셨던가? 속이 상했다. 무언가에 절실한 사람의 표정이라면 지금 어머니의 표정이었다. 작은 체구에서 안광에 빛을 뿜으시며 그동안 알아오신 내용을 설명하셨다.
성준이는 벌써 몸이 뒤로 눕는다.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바닥을 쓸어내다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머니의 설득을 온몸으로 쳐내고 있었다.
"엄마!"
"그러니까...응? 왜?"
"나. 안해!"
".. 왜? 성준아.. 왜 안해?"
"음..엄마도 말했잖아 그거 해도 10년정도라며, 10년 정도 지나면 또 재발할 수 있다며"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런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거야"
"그리고 거기 어디라고? OO재단? 거기 사기꾼 같아."
"아냐. 엄마가 다 알아보았어. 저기 직접 다녀오고, 병원도 가보고 신문에 나온 것도 다 확인했어"
"싫어. 그냥.. 이렇게 있을래.."
"성준아~ 그러지 말고 엄마랑 가서 수술 받고 오자. 그럼 이제 주사 안 맞아도 되.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자 우리 응? 수술 받고,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엄마가 너 하자는 데로 다 해줄게. 앞으로는 너 한테 어떤 잔소리도 안할게. 그러니까 그냥 수술 이거 하나만 딱 받자. 그럼 너 하고 싶은거 다 하게 할게. 응?"
"됐어. 그냥 수술 안해 안할래 더 알아보지 마 이제"
"아냐 안해. 신경쓰지마 내 몸이야. 냅둬 그냥"
전쟁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누구도 말을 거들거나 말릴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다, 분노의 눈으로 쳐다보다, 설득할 말을 찾으려 했지만 입에서만 맴돌뿐 괜히 마른 입술만 잡아 뜯었다. 전쟁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성준이는 불편한 자리에는 있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 누워 눈을 감고는 잠을 청했다.
"엄마. 그냥 오늘은 생각 좀 하게 두고, 내일 또 말해봐요."
"....지쳐...엄마두..."
성준이는 한다는 고집은 없었지만, 하지 않는다는 고집은 누구보다 강했다. 돌부처가 따로 없었다. 끝내 성준이의 수술 일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어머니는 한동안 성준이에게 전화도 하지 않으셨다. 간혹 내개 전화하셔서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 정도만 확인하셨다. 어머니도 안쓰럽고 성준이도 안쓰러웠다. 어머니가 성준이에 대해 이렇게 손을 놓으신적이 없던 터라 내가 불안했다. 성준이가 아니라 어머니가 쓰러지실까그게 더 걱정이었다.
"오늘 OO 경찰서에서 장기이식을 미끼로 환자들의 돈을 갈취해 온 일당이 잡혔습니다. 이들은 미국에서의 장기 이식을 알선해주는 댓가로...(중략).. 실제 장기 이식이 이뤄진 환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환자들은 돈도 잃고 삶의 희망까지 빼앗겼습니다. "
어...어라...
어머니가 받아온 연락처의 재단은 몇 개월 지나지 않고 뉴스에 이름을 알렸다. 나는 그 소식을 어머니께 전했고, 어머니는 다음날로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 집으로 오셨다. 성준이는 거 보라고 내가 뭐라 했냐고 호기 있게 큰소리를 치고는 어머니가 가져오신 반찬을 한입 넣고는 싱겁다 툴툴 거렸다. 그래도 그날은 그 반찬으로 밥그릇을 다 비웠다. 둘은 서로 미안하다, 잘못했다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해오던 그 방식대로 음식을 채워 주셨고, 한 사람은 그걸 아무 말없이 받아 먹는걸로 사과와 화해를 나눴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만약 우리가 첫번째 기회를 잡았더라면, 우리는 지금껏 모여 앉아 같이 밥상을 나눌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