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Dec 27. 2023

그래 한강은 죄가 없지.

그래도 한강을 싫어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분당에 살 때도 우리 부부는 한강까지 소풍을 가기도 했다. 한강 공원에 돗자리며 의자를 펴놓고, 편의점 간식을 사 먹고 낄낄거리며 쉬다 오곤 했다. 예쁜 강아지와 아이와 부부는 곧잘 한강을 찾곤 했다. 한강에서 보내는 몇 시간의 소풍을 참 아주 좋아했다. 바람도 물결도, 건물도, 사람들도 한강에 있으면 모든 게 좋아 보였다


이제는 한강이 싫다. 싫은 것보다 좀 아프다


한강은 죄가 없는데. 내가 한강을 마주하기가 어렵다. 자꾸 동생의 마지막이 떠오른다. 

그 모습이 자꾸 겹친다. 푸른 강을 보자면.



나는 내 동생을 잡아먹은 한강이 싫다. 



그날은 11월 5일이었다. 

아니 6일 날 성준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저 민순 데요. 저.... 혹시 성준이 거기에 왔어요?"

"아니 나 지금 가게인데 성준이 최근에 연락 없었는데?"

"형님... 그게...."


오늘 성준이와 회사를 같이 다닌 친구가 민수에게 혹시 성준이와 함께 있는지 연락을 했다고 한다. 때때로 민수와 술 마시고 지각을 하거나 했던 적이 있어 전화해 봤단다. 민수는 집에 가서 확인해 보겠다며 성준이네 집으로 찾으러 갔는데 성준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전화를 받을까 성준이에게 전화를 거니 방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고 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덮고 있던 피자 박스 안쪽에서 유서를 발견했다고.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의심하면서 가게 문을 닫았다. 가게에서 성준이 집까지 1시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했다. 그 시간은 별별 생각을 하기에 차고도 넘치는 시간이었다.  이미 친구들이 몇 명 와 있었다. 민수의 말대로 피자 박스에는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누가 봐도 성준이의 글씨.


이렇게 살아서 뭐 하냐며, 건강도 점점 나쁘지고, 되는 일도 없고, 이제까지 살았으니 됐단다. 방 보증금으로는 자신의 채무를 갚아달란다. 그 정도면 모자라진 않을 거라고. 


기가 막히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게 말인지 방군지. 진심인지 농담인지. 성준이 같기도 하고, 농담이면 줘 패면 좋겠는데 불안하니 어찌할 수도 없고 손만 덜덜 떨다가 담배만 줄곧 피워댔다. 그날도 성준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의 일상은 바뀌었다. 매일 아침 가게를 나가 장사를 하고는 퇴근해서는 성준이의 집 앞에 주차를 한다. 차마 빈집에 들어갈 수 없다. 비어 있는 집에 불이라도 켜져 있으면 성준이가 다시 돌아나갈까 구석진 자리에 주차를 하고는 동생을 기다린다. 이틀밤이 흘렀고, 동생은 들어오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 똑같은 성인의 실종 신고도 남성은 실종신고를 쉬이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그나마 동생은 유서를 보여주고 실종 신고를 접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기다려보자는 말은 잊지 않으신다. 대부분 문제없이 돌아온다며. 나도 그러길 바랍니다.라고 답해 주었다. 


성준이는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더 흘렀다. 그제야 실종수사팀에서 연락이 왔고 성준이 동네의 CCTV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성준이는 11월 4일 밤에 집을 나섰다. 살고 있던 오피스텔의 정문을 나섰고, 옆에 건물을 지나 큰길로 나왔다. 큰길을 비추는 CCTV가 있는 공장에 경찰과 동행해 그 시간의 영상을 확인했다. 천천히 터벅터벅 걸었다. 그리고 큰길로 나서며 더 이상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사관은 주변 상가들을 좀 더 탐문하겠다며 나섰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 밤 길을 나서는 성준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걸음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문득 겁이 났다. 돌아오리라 믿었지만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성준이 친구들은 백방으로 성준이를 찾았다. 누가 형제인지 누가 친구인지 모르게 여러 곳을 다녔지만 아무도 성준이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기약 없이 성준이의 집 앞에서 기다림을 계속했다. 퇴근하고 기다리고, 밤이 깊으면 다시 집으로 다시 일터로. 성준이가 사라진 지 2주가 흘렀다. 


11월 18일 


근 보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지 않을 것 같은데 시간은 흐른다. 성준이가 보이지 않은 시간이 이주일인 게 새롭지는 않았다. 우리 형제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연락도 없이 살아온 적도 많다. 심지어 같이 살고 있어도 얼굴 못 보고 한 달 가까이 지내기도 했다. 분명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그 보름은 이전과 같은 시간이 아니었다. 괜찮을 거라 믿으면서도, 혹여나 벌써 잘못된게 아닌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성준이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성준이를 포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안녕하십니까. 여기 OO 경찰서입니다. 성준 씨를 아십니까?"

"예 제가 성준이 형입니다."

"아 예 여기는, 지금 성준 씨가.. XX 병원에 있습니다. 신원확인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가게 문을 닫고, 병원으로 향했다. 


돌아왔구나. 성준이가 돌아왔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서울로 좀 모셔와 달라 부탁했다. 쉽지 않은 부탁인 줄 알지만 이 친구 말고는 없다. 생각나는 사람이. 그리고 성준이를 애타게 찾던 성준이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민수야.. 성준이 XX 병원이래..."

"아.. 형님... 하아.... 후..... 하..... 아이고...."




성준이는 누워 있었다.  병원 지하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광택의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하얀색 시트로 덮여 누워있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성준이의 테이블을 앞으로 당겨 주었고, 하얀 시트를 가슴까지 내려주었다. 

 

내가 아는 성준이가 아니었다. 성준이는 한강에서 찾았다고 했다.. 선유도 근처의 밤섬에서 발견되었다. 이미 시간도 꽤 지난 후였다. 성준이는 내가 아는 성준이가 아니었다. 


싱크대에 던져 놓은 식빵에 물에 부은 것마냥 부풀어 있었고, 눈은 퉁퉁 부어 보이지도 않았다. 실눈처럼 틈이 보이는 눈은 이미 생명이 사라진 탁한 눈이었다. 얼굴의 형체만으로는 성준이가 아니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몇 번을 보고 또 봐도 성준이가 맞는데 성준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훼손된 모습에서도 왼쪽 상박의 간장 종지만 한 주사 자국은 여전했다. 


성준이었다. 


어찌 이리되었냐고, 얼굴도 쓰다듬고 팔다리도 주물러 주고 하고 싶은데 손이 뻗어지지 않았다. 처음 정면으로 마주했던 죽음에. 친동생의 죽음에. 망가진 얼굴과 몸에 쉽게 손이 뻗어지지 않았다. 동생인데 동생이 아닌 것 같고,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만지면 흐물흐물 해진 피부가 손에 옮겨질 것 같았고, 그 냄새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토록 돌아오길 바라던 동생인데 나는 끝내 동생의 손을... 얼굴을.... 만져주지 못했다. 나는 끝까지 비겁했다. 


성준이의 입에서 계속 작은 거품이 보글거렸다. 



"형.. 살려줘... 구해줘... 형... 형아...."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입에서 거품이 난다고 무언가 말하는 거 아니냐고. 직원에서 물었다. 괜찮은 거냐고. 

직원은 익숙한 듯 시신의 뱃속이 부패되어 가스가 발생하면 입으로 거품처럼 나오고 마치 말하는 모습 같다고 하신다. 


내 귀에는 들린다. 


"형... 미안해..."

"집에 가자 성준아.. 집에 가자.."





이전 06화 같이 또 따로 산 순간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