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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an 02. 2024

레퀴엠(Requiem)

"집에 가자, 성준아. 집에..." 


고향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혹 직접 운전하시다가는 사고가 날까? 고향 친구에게 부탁해 부모님을 모셔 왔다. 친구에게 큰 빚을 졌다. 


"성준아.... 성준아....." 


어머니는 차에서 내리시자마자 무릎에 힘이 풀리셨다. 영안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주저앉았다.  어머니께 말했다. 


"엄마..... 성준이가…. 얼굴이…. 많이 상했어... 성준이 얼굴이 너무 상해서…. 엄마는 안 봤으면 좋겠어…. 내가 성준이 잘 챙길 테니까.. 엄마는 예쁜 얼굴만 기억하게..." 

"아이고 내 새끼. 이놈아…. 성준아….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아이고..." 


차가운 계단에 주저앉으신 어머니를 달래어 다시 차에 앉혀 드렸다. 부모님이 오시는 사이에 나는 관할 경찰서를 들러 신원확인을 하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짧은 조사를 했다. 


"신고된 상황을 보니 범죄 혐의점은 없어 보입니다. 실종 신고도 되어 있으시고, 유서도 있으셨다고 하니 단순 자살 사건으로 처리하겠습니다. 확인 감사합니다. 가보셔도 좋습니다." 


정신이 없어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다. 동생이 돌아왔다는 것. 몸이 많이 상했다는 것. 그런데 변사 사건이라 확인이 필요해 경찰서를 방문해야 한다는 것 그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성준이의 죽음이 우리 가족에게는 하늘이 무너질 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확인하고 처리해야 할 매일의 일과 중의 하나인 지도 모른다. 죽음의 무게가 모두에게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세상엔 구멍이 뚫렸지만, 누군가에 일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설 구급차를 부르고 성준이를 태웠다. 


"내가 성준이 데려갈 테니 엄마 모시고 와.. 괜찮아.. 고생했어. 그동안


아버지가 성준이와 구급차에 함께 타셨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고향 친구 차를 타고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예정일이 두어 달 정도 남은 배가 남산만 한 임산부였다. 그런 만삭의 아내에게 뒷일을 맡겼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고는 등을 쓸어주었다. 울컥 눈물이 났다. 




상주가 되었다. 처음으로 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맞았다. 밤 1시 가까이 성준이를 데리고 고향 집 장례식장엘 도착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시스템은 잘 되어 있었다. 모든 일은 선택만 하면 되었다. 수의는, 관은, 조화는, 음식은, 사진은 어떻게 할지 모든 것들은 잘 짜여 있는 보기에서 선택만 하면 되었다. 잘 갖춰진 시스템 안에 뚝딱 장례 준비는 끝났다.


어디서 소식들을 들었는지 성준이 친구들이 몰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성준이의 지인들이 속속 도착했다. 30대 초반의 장례는 흔하지는 않다. 영정사진의 얼굴은 너무 어렸고, 너무 눈부셨다. 영정사진보다 신입 사원 사원증에나 어울릴 법한 사진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문상을 드리는 지인들도 모두 어렸다. 사회 초년생의 대학 동창 모임쯤이나 어울릴만한 문상객들이 가득했다. 문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눈치껏 옆 사람을 따라 하던 친구도 있었고, 부조를 어떻게 해야 할지 허둥대던 친구도 있었고, 술잔을 들고 짠을 외치던 친구들도 그걸 말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오늘 밤은 그들에게도 낯설고 처음인 경험인 듯했다. 


"성준이 이 새끼 아후~ 내가 담에 보면 아주 죽여버릴텨. 아주 그냥"

"그 새끼가 나한테 그런 거 말 한마디를 안 했어. 이 새끼가... 이거 친구도 아냐"

"야. 이거 저 새끼랑 한잔 해야겠다 난.."


황망함에서 슬픔으로 분노로, 또다시 황망함으로 

장례식장은 축제였다. 성준이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친구들이 모였고, 성준이와의 추억을 곱씹다가 웃다가 울다가 술을 마시고, 또다시 웃다가 울다가 끝이 나지 않는 도돌이표의 그리움과 황망함을 뱉어내는 축제였다. 


그중에는 성준이 영정 사진 앞에 술판을 벌이는 친구, 옛 추억을 되짚다가 술김에 시비가 붙은 친구, 어머니 아버지 손을 잡고 한참을 울고 간 친구. 아무 말 없이 구석에서 술잔만 만지작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친구..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성준이를 놓아주고 있었다. 


"할머니~"

"아이고 성준아.... 아가.... 네가 왜.... 내가... 왜 이런 꼴까지 봐야 하는 거야...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날 데려가지 왜... 널...."


팔순이 다 되신 외할머니는 십 년도 전에 외아들을 보내고 오늘은 외손자의 영정사진을 마주했다. 거동이 불편하셔 구부정한 허리로 한발 한 발 무겁게 걸으시는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할머니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꾹 참았던 눈물이 백발노인의 주름진 눈가를 따라 흐르는 눈물에 함께 쏟아져 나왔다. 꺼억꺼억 한참을 울었다. 


밤이건 낮이건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다행이었다. 조문객이 없었다면 더 외로웠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조문객에 성준이 생각이 덜 났고, 함께 웃고 울고, 그리워할 때면 덜 아픈 듯했다. 


"아부지 입관해야 하는데... 저만 다녀올게요. 성준이가 너무 상했어서요.."

"... 괜찮아.. 아빠 젊었을 때 이래저래 많이 봐서 괜찮아. 그래도 마지막인데 얼굴은 보고 보내줘야지.."

"예..."


아버지와 친구 몇과 함께 입관을 했다. 장례식장의 배려인지 성준이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이미 수의를 입히고 얼굴까지 모두 가려둔 상태였다. 유족들이 힘들어하실 거라고 형체만 알아볼 수 있도록 처리해 주셨다. 아마다 성준이의 마지막 얼굴을 본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 마지막 모습을 지워주고 싶다. 성준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때로는 찡그리고 화내는 표정으로 하다못해 못되게 말하고 싹수없게 말하는 태도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날의 그 마지막 얼굴로는 기억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모습은 내가 혼자 안고 가고 싶다. 



"민수야... 내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어머니 성준이 계신 곳 알면 거기서 못 벗어나실 거야. 친구들이 성준이 좋은 곳으로 가족들 모르게 좋은 곳으로 보내줄 수 있겠니?"

"예 형님 안 그래도 친구들이랑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잘 알아보고 할게요"



발인이 끝나고 성준이는 뜨거운 불길로 향했다. 목관이 들어가고 입구가 닫힌다. 성준이를 보내는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불길이 타오르자 열기가 뻗치는 듯했다.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성준이는 차갑게 식었다가 뜨거운 재로 내게 안겼다. 성준이의 뜨거운 재가 조금씩 식어 갈 때는 마치 성준이가 다시 한번 식어가는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솟았다. 부모님은 성준이를 차마 보내지도, 어쩌지도 못하시며 마냥 손으로 쓸어 담고 계셨다. 


"아이 이제 고마 보내줘. 뭣 한다고 고렇게 안고 있냐고. 어여 보내"


어젯밤부터 불콰하게 취하신 아버지 친구분이 버스 앞에서 머물고 계신 부모님의 손을 끌어당기신다. 


"그만 내버려 둬.. 내 아들 내가 알아서 해.. 그만해! 내 아들이라고!!"


아버지가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셨다. 성준이가 집을 나가고, 소식을 전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한 번도 감정을 비추신 적이 없던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내심 안심했다. 어머니의 모습도 슬프고 걱정이 되었지만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걱정이었다. 저렇게 속으로만 쌓아두시면 어쩌나... 저렇게 꼭꼭 눌러만 두시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에 아버지의 슬픔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버지도 아프셨다. 우리만큼, 

아버지께도 눈에 넣어 아프지 않을 자식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사를 했다. 성준이는 친구들에게 보냈다. 천천히 식어가는 성준이를 친구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돌아섰다. 가족들은 집에 오자마자 각자의 방에 들어가 죽은 듯 잠에 빠졌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성준이를 다시 만난 건 49재가 끝난 후였다. 



잘 있더라
생각보다 따뜻하게 잘 있더라.
친구들도 많고, 예쁜 모자도 썼고, 애정 가득한 편지도 한가득 
외롭지 않게 있더라

성준이를 보내고 49일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마지막 가는 제사를 지내고, 처음으로 용기 내어 찾아갔다.
친구들 보내고, 가족들 모르게 혼자 찾아간 그곳은 어색했다.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을 두리번두리번

성준이는 잘 있더라
활짝 웃고 있는 사진과, 친구들 함께 찍은 사진들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혼자 오길 잘했다. 

다행이다. 이제 여기서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여전히 꿈인 듯 현실인 듯 

익숙해지려면 아직은 한참을 더 가야겠더라
이제....
정말 성준이는 떠났구나...

나쁜 녀석..

2015.01.05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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