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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an 16. 2024

슬픔은 수레바퀴처럼 돌아온다.

성준이의 레퀴엠은 끝이 났다. 우리 삶의 슬픔도 이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성준이가 아픈 뒤부터 무얼 해도, 나는 이렇게 즐기면 안 되는 사람인데. 나는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란 걸 달고 살았어. 무엇을 해서 재밌어도 그 순간 가슴속에 응어리가 콱 뭉쳐. 나는 이러면 안 되는 사람인데란 생각이. 성준이 보내고, 이제는 성준이도 아프지 않고 잘 지내겠지란 생각에 그래도 조금 나아졌어."


"나는 사랑받을 줄 모르고,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르고 자랐어. 그래서 내가 너를 볼 때면 미안해 엄마 때문에 성준이 성격에 그늘이 진 건가 싶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얼 해주는 걸 모르고 자랐어."


한참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속마음을 들었다. 그 마음을 듣기까지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로 상대방이 그렇게 힘들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직접 묻지도 말하지도 않은 세월이었다. 그 세월은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흘렀다. 매일이 그러하듯 해가 뜨고, 또 지고, 계절이 지났다.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들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고, 시간은 공평해서 똑같이 흐름을 주었다. 나의 슬픔으로 타인의 기쁨으로 시간의 흐름이 결코 다르지 않았다. 


시간은 공평하기 흐르기에 우리는 천천히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에게만 특별한 하루가 계속되고, 나에게만 슬픈 날들이 계속된다면 우린 아마도 미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만은 똑같이 흘러가기에 우리의 특별함이 때로는 평범해 보인다.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이 흐르니까.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사업은 망했고. 나는 일을 잃었다. 그와 함께 자존감도, 가장으로서의 지위도,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나는 많이 잃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가장 먼저 망가졌고, 그다음은 순서 없이 내 정신세계를 갉아먹었다. 나는 아주 약한 사람이었다. 


슬픔은 아니 슬픈 일은 끝이 없다. 우리 삶 속에 슬픔은 때때로 찾아와 안부를 묻는다. 




"너 이제 살만한가 봐? 잘 살고 있나 봐? 내가 있는 걸 잊은 거야? 나 여기 있는데?"


슬픔의 형태는 다양하다. 보통 이별의 형태로 찾아온다. 이별을 준비하게 만들고, 이별을 맞이하고, 이별한 자를 그리워하고 되새기게 되고. 또 괜찮아 질만하면 또 다른 형태로 찾아온다. 우리는 이별과 슬픔을 몇 번을 경험하면서도,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물었다 생각했던 상처는 옆으로 시선만 돌려도 벌어져 뻐얼건 피를 쏟아내고 당시의 감정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우리와 평생을 함께 보내는 슬픔이지만 끝끝내 익숙해지지 않는 존재다. 


슬픔은 각자에게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고르지 않아도, 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만 찾아온다. 마치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다시 만난다.


아내의 큰 언니의 병이 재발했다. 신장암이었다. 벌써 8년이 되었다. 수술 후 5년간 추적 관찰로 괜찮다 했는데 6년이 지난 후 재발했다. 그 뒤로 건강이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집 근처 대학 병원으로 입원을 하셨고,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잠시 돌봐 주기로 했다. 우리 집에는 돌 아기부터 사춘기 중학생까지 5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나이 차이도 제각각의 아이 5명이 코로나로 밖에도 나가질 못하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 복작복작 생활하고 있었다. 근 두어 달이 지났다.


나는 이미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불평할 수 없었다. 가족을 잃는 기분을 알고 있기에 아내에게 나의 힘듦을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굉장히 지친 상태였다. 결국 몇 년간을 미루던 정신과를 찾았다. 동생의 죽음부터, 망한 사업들, 더 이상 낮아질 곳 없는 자존감, 아이 5명의 스트레스와 또다시 예견된 이별 모든 것들을 낯선 이에게 쏟아내고는 약을 몇 알 받아왔다. 


용량이 적은 약이었지만, 내겐 위안이 되었다. 최소한 내가 불안정할 때 기댈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망가진 나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일상이 드라마틱하게 행복해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더 우울해지지도 않았다. 그럴 수 있는 하루하루가 지속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는 내게 말했다. 


"어떻게 당신은 언니 병원에 한 번을 안 가?"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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