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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an 23. 2024

우주가 빛을 잃지 않기를

큰처형은 집에서 20여분 거리의 병원에 있다. 코로나가 발발할무렵 재발한 암이 그녀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몸에서 생기가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얇아진 손목과 피부. 푸석해진 살결. 굽어가는 허리. 병은 삶에 대한 의지에도 쉽게 그녀의 몸을 내어주지 않았다. 천천히 파고드는 늪은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늪위로 겨우 얼굴을 내밀어 숨을 쉬고 있다. 늪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아이들이 둘이 있었다. 내 큰아이보다 한살 그리고 세살이 많은 남매다. 아이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운다. 이번 입원은 꽤 길어졌다. 모두가 희망을 끈을 놓치않는다. 기적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점점 큰처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혼자인 탓에 아이들을 우리집에서 돌보기로 했다. 이제 아이가 다섯이다. 코로나로 바깥 출입이 어려운 세상에 아이 다섯은 만만하지 않다. 돌이 갓 지난 아이부터 곧 중학생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하루 세끼를 차리고, 간식을 챙긴다. 어지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설겆이를 하며, 다섯 아이의 빨래를 한다. 중간 중간 큰 아이들의 공부를 봐준다. 조금이라도 한 눈을 팔면, 뭐가 그리도 아쉬운지 제각각 다툼이 생긴다. 얼르고 달래어 떼어놓고, 진정시킨다. 하루의 일상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요. 지금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 밖에 없어요. 처형이 덜 신경쓰실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볼테니. 조금 덜 염려하셔도 되요."


큰처형에게 어쩌면 가장 신경쓰였을 부분이리라. 본인 손으로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이 걱정되고, 미안해 하는 모습에 눈가가 달아오른다. 아이 다섯이 힘이 든다 한들 생의 갈림길보다 어려울까. 나는 잠시 스쳐가는 에피소드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힘들어도 투정은 나중에 해야 겠다.


나에겐 이별의 시간이 없었다. 내 동생 성준이는 우리에게 이별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혼자 이별하고, 혼자 떠나갔다. 남겨진 우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을 맞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성준이를 기억했다. 아팠고, 외로웠고, 화가 났다. 성준이에게, 세상에게,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화를 내고 분노했다. 이별의 시간이 없던 우리들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물어도 답해주지 않았고, 쓰다듬어도 반응하지 않았다. 우리는 성준이에게서 버려졌다. 


아내에게는 시간이 있다. 아직 마주하지 못한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 그말이 상처 받을까 입을 떼지는 못했다. 그저 아내가 병원을 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 뿐. 조금이라도 시간이 생기면 병원을 갈 수 있도록 그 외의 일들을 맡아 주는 것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당신 어떻게 언니 병원에 한 번을 안가?"


아내가 묻는 날 나는 무슨 대답을 했던가? 아내에게 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설명했던가? 아니면 그냥 얼버무렸던가 기억이 선명치 않다. 어느쪽도 아내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아내에게는 바늘 틈 하나 내어줄 여유가 없었다. 가족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아내의 마음속을 장악했을 것이다. 괜찮다. 내게 돌아오는 화살 하나 쯤은 괜찮다. 내게 던진 화살 보다 몇 배 무겁고 독한 칼날들이 그녀의 마음을 겨누고 있으니. 나는 괜찮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위에 이글거릴 무렵에 처형은 호스피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아내와 함께 타고 온 엠뷸런스에서 처형은 아내에게 물었다. 


"나 퇴원 할 수 있겠지"

"......"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는 아내..


"넌 어떻게 빈말이라도, 퇴원하면 뭐 하자라고 말을 못하니. 얘는...참.."


아내는 이 순간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꺼내고 아파한다. 빈말이라도, 거짓이라도 퇴원하고 함께 하자고 약속했어야 할 것을 아내는 후회하고 있다. 와이프의 이별의 순간인지 모른다. 


처형은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소천하셨다. 모두들 울다, 웃다, 옛날을 이야기 하며 내일을 이야기하다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슬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아무리 이별의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 한들 다가오는 슬픔을 걸러주지는 못한다. 슬픔은 똑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들중 몇 안되는 공평함이 여기에 숨겨져 있었다. 


뜨겁던 여름 날 더 뜨거운 불길로 그녀는 한 줌의 가루가 되었다. 사춘기의 아들이 상주가 되어 어머니의 영정을 품에 안고 앞장섰다. 덩치만 큰 앳된 얼굴의 상주가 더 마음에 아팠다. 아내는 그렇게 큰언니를 잃었다. 아무리 이별의 시간이 있었더라도, 아무리 함께 아쉬워하고, 아파한다고 해도 죽음과 동반하는 슬픔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상실의 고통은 공평하다. 준비를 했거나, 하지 못했거나를 가리지 않고 가장 무겁게 똑같은 크기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경계로 모두에게 다가온다. 여전히 무겁고도, 아프다.


우리는 그 슬픔을 오롯이 안고 살아간다. 누구나에게 공평한 시간이다. 인생에 어떤 성공을 이루었던 사람이라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대비할 수 없고, 익숙해 질 수 없는 일이다. 떠나보내는 사람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는 우주였다. 전부였다. 그런 우주를 버리는 일이 결코 익숙해지고 가벼워 질 수 없는건 어쩌면 당연하다. 인생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반복되지만 돌아오는 모든 이별은 우리에게 처음이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고 익숙해 질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남은 우주가 오래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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