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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Apr 15. 2024

오늘의 집안일 : 아침 먹은 그릇을 설거지

아내의 아침 철학은 확고하다. 풍성하고 균형 잡힌 아침 식사를 할 것. 우리 집의 식사는 아침은 임금님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이다. 간단히 때우거나, 가볍게 지나가는 식사는 대부분 저녁 시간이 훨씬 많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저녁을 간단히 먹는 것이 건강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바쁜 아침의 일상에 투자하는 나의 에너지가 더 아깝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풍성한 아침 식사는 대부분 한식위주의 식단이다. 한두 가지의 곡물을 섞은 밥과, 국 그리고 몇 가지나물과 생선이나 고기류의 단백질등 차려놓으면 꽤 그럴듯해 보이는 식단이다. 보통 5~6가지 반찬과  한 두 가지의 메인 메뉴로 구성되는 상차림이 꽤나 손이 많이 갈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밑반찬은 시골 부모님의 밭에서 올라오는 것들이 많고, 때때로 반찬가게를 이용하곤 한다. 접시에 담아 올리면 된다. 아침에 6시 무렵 일어나 밥을 압력밥솥에 올리면, 절반은 끝이 난다. 생선이나, 고기류의 단백질들은 대부분 굽기만 하면 되니 크게 손이 가지 않지만, 차려놓으면 그럴싸해 보인다. 


7시에 다섯 식구들이 다 함께 식사를 시작하지만 끝나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중학교 입학한 큰 딸은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식사를 마친다. 8시 10분 유치원 버스를 타고 가는 막내는 어르고 달래 가며 밥공기를 비우고, 등교가 가장 늦은 둘째는 느긋하고, 천천히 밥상을 즐긴다. 그래서 둘째는 키가 크다. 아마 같은 학년에서 첫 번째나 두번째로 키가 큰 여자아이가 되었다. 


아침을 나누고, 한바탕 등교 전쟁이 끝이 나면 비로소 아침 먹은 그릇을 설거지해야 한다. 오늘의 설거지 그릇을 보자. 


다섯 명의 밥그릇과 국그릇 총 10피스,

다섯 명의 수저 

6개의 밑반찬 그릇과 1개의 메인 사이즈 접시 

4개의 물컵

3개의 앞접시 (때로 아이들은 여전히 앞접시가 필요하다.) 


아.. 요리도구들이 빠졌다. 


도마와 칼, 

국 냄비, 

큼지막한 웍, 

국자와 요리에 쓰인 자잘한 도구, 

등도 한 뭉치가 된다. 싱크볼을 보니 밤새 마신 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젯밤 꺼내어 놓지 않은 아이들의 텀블러까지 아침에 꺼내 주신다. 일단 등교 전에 챙겨주어야 할 텀블러를 재빠르게 씻는다. 텀블러는 입을 대고 마시는 부분의 실리콘을 잘 닦아 주어야 한다. 때때로 분리해 꼼꼼히 씻어주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다. 재빠르게 씻어낸 텀블러에 그냥 물을 담아 주기 찜찜해 뜨거운 물을 한 번 담았다가 비워낸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마음의 찜찜한은 조금 가시는 듯하다.


본격적인 설거지는 아이들이 등교가 끝나 후 시작된다. 집안 정리를 마치고, 식탁 위에 올려진 그릇들을 볼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의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손을 움직이는 것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그릇을 집는 것을 시작해서 식탁 위의 모든 그릇들을 아일랜드 식탁으로 옮기고는 어젯밤 식세기 이모님이 깨끗이 닦아두신 그릇들을 정리한다. 그래야 또 신세를 질 터이니. 식세기 이모님의 솜씨로 수저와 조리 도구를 먼저 정리하고, 밥그릇, 물컵을 한바탕 정리한다. 마지막 맨 아래칸의 조금 큰 접시들을 따로 정리해야 오늘의 설거지가 들어갈 준비가 끝이 난다. 


루틴이 생겼다. 반찬접시는 칸칸이 옆으로 세워서 넣으면 좁은 공간에 꽤 가지런히 들어간다. 그래야 씻기기도 잘 씻긴다. 그 옆쪽으로 물컵과 밥그릇들을 정리하고, 맨 아래칸은 메인 반찬접시의 공간이다. 큼지막한 점시들은 몇 개 들어가지 못해 칸이 모자라곤 한다. 별 수없이 손설거지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먹은 수저와 자잘한 조리 도구를 맨 위칸에 가지런히 되도록 포개어지지 않게 넣고는 깨끗이 닦아달라고 아부하며 식기세척기용 세제를 넣어준다. 


이것이 끝이면 좋으련만, 식세기에 들어가면 너무 큰 공간을 차지하는 냄비며, 큰 사이즈의 프라이팬, 밥솥등은 오롯이 사람이 해야 한다. 식세기 덕분에 가짓수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설거지는 사람이 해야 끝이 난다.  물기가 잘 빠지도록 씻은 그릇들을 엎어놓고, 싱크볼 주변에 튄 물기들까지 행주로 깔끔히 닦아주어야 설거지 끝. 


아무리 쌓여 있는 설거지라도, 일단 시작하면 끝이 난다. 제일 빠르게 설거지를 하는 방법은 제일 빠르게 시작하는 것이다. 때로 귀찮고, 미뤄두고 싶은 일들이 있을 때 설거지를 생각한다. 전체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릇 하나하나를 닦아내다 보면 전체가 작아지고, 깨끗한 그릇들이 쌓여간다. 지금까지 삶의 일들이 그러했다. 미룰수록 걱정은 커지고,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머리를 비우고 손을 놀리는 것으로 걱정만큼 완료한 일들도 많아졌다. 


오늘의 설거지에서 얻은 교훈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가장 앞에 놓인 그릇을 집어 설거지를 시작한다. 한 번 설거지를 시작하면 결국 끝을 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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