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책 한 권을 읽었다. 서동주 에세이 완벽한 유결점이란 책이다.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문장이 기억될 것이다. 나에게 기억되는 문장은 <나는 자칭 간헐적 문학인이다.>라는 문장이다.
어찌 이렇게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말인지. 그 문장을 읽자마자 무언가 내 대신 근사한 변명을 던져 준 것 같아 눈앞이 화사해졌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야라는 위안과, 간헐적 문학인이어도 괜찮다는 위로, 자연스레 쓰지 않게 되듯, 또 자연스레 쓰게 된다는 해결책까지 내게 있어 완벽한 문장이었다.
물론 책을 끝까지 읽어 갈 때쯤에는 그 생각이 변하기는 했다. 간헐적 문학인이 아무리 괜찮아 보여도, 무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결국엔 그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 그 꾸준함과 끈기만큼 확실한 길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아 다시 브런치의 세계로 발을 슬쩍 담가 보는 것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건만, 내가 잠시 브런치를 떠나 있었지만, 태평양에서 소주 한 컵 정도 물을 덜어낸 것처럼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요행정도의 마음이라 생각하면 딱 일테다.
그래도 자극을 받고서는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간헐적 문학인의 기질이 또 발동되어 다시 써 내려가기를 시작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미 써 놓았던 이야기를 다시 다듬고 성형도 좀 하고, 이야기의 방향도 수정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글을 한 번 발행해 놓으면 잘 쳐다보지 않았다. 라이킷 수가 오르고, 혹 댓글이 달려야 한 번 다시 읽어 볼까 싶었다.
아무래도, 오만함 때문이었겠다. 이미 충분히 고민해 쓴 글이니 더 이상 고칠 게 없다는 오만함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더 이상 읽어볼 필요가 없었겠지. 근데 실상은 오만함보다 창피함을 오만함으로 껍데기를 바꾼 것이다.
글을 쓰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도 혹여나 유명해지면 어쩌지 라는 걱정을 한다. 누군가 알아보면 어떡하지라며 고민을 한다. 나 스스로에 대해, 아니 내 글에 대해 자신이 없고, 창피함이 앞서 그런 것이다. 내 이야기면서 창피한 이야기, 내용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글을 써 내려가는 방법이. 글의 대하는 자세가. 그러면서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이 창피한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이 무언가를 오래 하면 조금씩 방법을 바꿔보게 된다. 스스로 잘못된 것을 안다는 것이 중요해진다. 내가 잘못된 것을 알아야 고쳐나가니까. 스스로 잘못된 것을 모르면 누군가 이야기해 주기 전까지 잘못된 방법으로 무한 반복이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미 나는 내가 끝맺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고 있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면, 그에 대한 애정도 다시 피어오르고, 어느 곳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욕심과 반성도 생긴다.
다른 이들은 글 발행 이전에 필수처럼 겪는 과정을 나는 참 오래 걸려 배운 셈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점이라면, 오래전 써 내려갔던 이야기들을 시간을 들인 후 다시 읽게 되면, 소금에 간수가 빠진 것처럼. 내 글에 대한 스스로의 편견과 애정이 좀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스스로의 글을 후드려 팰 수 있는 자세가 갖춰지는 것 같다. 글을 쓴 직후보다 더 과감하게 문장을 자르기도 하고, 글 한 편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의미 없는 캐릭터를 죽여버리고, 더 재미난 이야기의 캐릭터를 트레이드하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 되었던 나는 나의 이야기가 조금 더 읽어 볼만해질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브런치에 온 김에 새로운 글들을 읽는다. 주로 브런치 나우의 글을 읽는다. 메인에 걸린 글들을 읽을 때면, 내게 몇 가지 문제가 생기곤 한다. 메인 페이지에 걸려 있는 글이라는 선입관과 편견들. 그리고 질투 한 스푼이 때때로 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메인에 걸렸기에 라이킷 수가 많은 건지 라이킷 수가 많기에 메인에 걸리는 것인지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 알고 있다.
메인에 걸렸어도 라이킷이 오르지 않았던 글들을 나는 몇 편 가지고 있다. 메인에 걸렸다기보다 글이 좋아 라이킷이 눌린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종종 메인 페이지보다 지금 막 따끈따끈하게 발행된 글들을 골라 읽곤 한다. 어떨 때는 라이킷 수가 하나도 없는, 때로는 구독자도 하나 없는 그런 작가들의 글을 읽게 되곤 한다.
그럴 때면 그 어떤 글을 읽을 때보다 글자에 집중해서 읽게 된다. 다른 이의 라이킷도 없고, 구독자수도 없으니 나에게는 아직 발굴되지 못한 대형 신인 같은, 가공되지 않는 원석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때때로 두근 거림과 설렘을 안고 글을 읽는다. 때로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도 하고, 때때로는 아주 조용히 백스페이스를 누르기도 한다.
어느 순간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나곤 한다. 글의 내용이 마음에 들 때도 있고,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 때도 있다. 때로는 거친, 날 것 같은 이야기가 마음에 들 때도 있다. 어느 날에는 그런 작가의 첫 번째 구독자가 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나보다 훨씬 많아진 구독자를 보유한 작가가 되어 있곤 한다.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어라는 감탄과 함께, 아.... 넌 뭐 했니?라는 자책이 함께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간헐적인 문학인이기에 겪게 되는 이야기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돌아와 못다 한 이야기를 다시 쓰기도 하고,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또 성장해 버린 작가들을 접하고, 또 자책과 반성을 이어가면서 또다시 글을 써 보고자 의욕을 다 잡는 그런 과정들의 이야기다.
작가님들 제가 <민박집> 이야기를 매거진으로 발행 중입니다. 예전의 날것 보다 조금은 더 다듬어 보고, 더듬어도 보고, 구어도, 삶아도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과수원에서 민박을 하면서 만난, 낯선 이들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받는 이야기입니다.
때로 우리는 곁에 있는 누군가보다, 낯선 이에게 위로받거나, 위안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이고 싶었습니다.
간헐적 문학인이 쓰는 소소한 이야기를 읽어 주신다면 어쩌면, 지속적인 문학인이나, 연속적인 문학인으로 전환될지도 모릅니다. 관심이 고픈 배고픈 작가에게 응원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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