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른 일상을 보낸 날은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낮의 흥분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 그 일을 또 한 번 되돌아보고, 또 한 번 되돌아보다 보면 어느새 날이 세곤 하기도 한다. 그런 날은 밤이 끝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극야처럼 날이 지나도 해가 뜨지 않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그러면서 해가 뜨지 않는 내일은 오늘일까? 내일일까? 의미 없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암튼 평소와 다른 일상은 이렇게 무섭다.
요 며칠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인터뷰이가 되었다. 3번에 걸쳐 촬영을 했다. 나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촬영을. 생각보다 길어지고, 생각보다 오랜 촬영에 마냥 신나다가, 마지막 촬영을 마치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던가 싶은 두려움도 몰려왔다.
내가 했던 말들이 기록이 된다는 것은 항상 두렵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말이 아닌 기록은 언제라도 나의 몫이 된다. 나의 삶이 녹아 있는 것이다. 나는 그 한 번의 기록으로 나의 삶 전체를 돌아보기도 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던가. 말은 입에서 가벼이 출발하는데, 어디에선가 자리 잡아 기록으로 남는 순간 단단한 흔적이 된다. 바람결에 날아가버릴 가벼운 말이었는데, 평생을 두고 쪼아대어도 지워지지 않는 화석이 되어버린다. 문득 글을 쓴다는 것에 무게감에 놀랐다. 내가 쓰는 글이 어떻게 기록이 될지 겁이 나기까지 했다.
두려움이 밀려오면 밤을 찾는다. 그저 밤에는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모두가 잠들어 있겠지 하는 위안에 밤의 그늘에 안식처를 찾는 듯하다. 정말 모두가 잠이 들었는지 소리마저 차분하다. 어둠이 두려우면서도 어둠이 주는 위안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보이는 것들이 무섭고, 익숙한 것들이 두렵다. 예측가능한 괴로움에 피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처음 본 바텐더에게 오늘 하루의 힘든 일을 주저리 떠드는 중년의 남자는 익숨함보다는 낯선 곳에서 위로를 받았다. 세상 솔직하게 가슴속의 이야기를 건네면서 아무것도 원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는 것에 의미가 있다. 듣는 이 역시 어떤 공감도 해결책도 던지지 않는다. 그 중년의 남자는 이야기할 뿐이고, 그는 그저 듣고 있을 뿐이다. 남자가 가버리고 나면, 아무 의미도 없어질 사라질 말들이고, 애써 기억할 필요도, 되뇌일 필요도 없는 일이다. 누구 하나 상대방의 반응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 어떻게 듣는지 혹은 듣지 않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 공허한 말들이 공중에서 맴돌다 어둠처럼 내려앉으면, 남자도 그렇게 내려놓고 떠날 뿐이다.
어느 날의 밤은 이렇게 지나간다. 의미 없는 말들이 공중에서 사라지고, 흩어지는데 그것에서 살아갈 힘을 얻어가는 사람들. 비밀을 묻어버리는 사람들. 흔적이 남지 않아 더 편하고 의미 있는 순간들이 있는 것처럼. 어느 날 밤은 그렇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으면서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워지는 이유가 그렇다. 사라지지 않을 나의 글들이 흔적으로 남아, 두고두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까 한 줄이 두려웠다. 의미 없이 흩어질 말들이 아닌 흔적으로 어딘가에서 꼬리표로 남아버릴까 두려워한 문단의 글을 쓰기가 조심스러워졌다.
극야의 밤이 계속되어 해가 뜨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텐더는 그 자리에 머물러있고, 나의 공허한 말소리는 사방으로 흩어질 수 있는 밤이 계속되기를 바랬다. 그럼 솔직하게, 부끄럼없이, 두려움 없이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스스로 살아온 삶이 부끄러 꺼내지 못하는 것인지..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두려움이 약속을 아끼는 것인지, 모를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꺼내놓지도 못한 깊은 이야기의 끄트머리를 겨우 붙잡아 내어 풀어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나의 이야기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들을 꺼내 놓기에 깊은 밤만큼 적당한 시간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뱉어놓고, 흩어놓은 말들 가운데서 한 토막 한 토막씩 고르고 골라 글을 쓰고 싶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