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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곰 May 13. 2023

생선튀김 아니고 피시 앤 칩스입니다.

바다를 바라보던 마음으로 즐기던 음식


막무가내  떠나 보았던 호주

 대학교 3학년을 마칠 무렵 처음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식사 중이셨던  어머니께서는 즉각적인 반대 의사를 보이셨습니다. 심지어 눈물까지 흘러 보이시며 반대를 하시는데 예상외에 반응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좀 다 키워서 사회에 나가나 싶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어머니께서 속상해하시는 요지는 이와 같았습니다.


사실 어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힘들게 홀몸으로 두 아들 키워 이제 고생 좀 끝나나 했는데 1년을 더 연장해야 한다니…! 그리고 해외에서 살아가려면 적잖은 돈이 필요하니 더욱 철없는 소리처럼 들렸을 겁니다. 한참을 워킹홀리데이가 무엇인지 설명을 드리고, 지난 일 년 동안 알바를 하면서 모은 돈이 적잖이 있음을 설명드리고서야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어머니께서 표값을 마련해 주신 비행기에 몸을 싫고 호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26살 한창의 나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잠시 뒤로하고, 그렇게 한국에서 삶을 보류하고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라는 호주 타스매니아로 향했습니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알 수 없는 앞날에 방황하는 한 젊은 청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왜 그렇게 떠나고 싶었을까요? 지금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제 사회에 나가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속의 한편이 왠지 먹먹하게 답답해졌습니다. 이대로 삶이 굳혀져 흘러갈 것만 같았습니다.


젊어서 그랬나 보다. 최근 당시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입니다. 아직 젊어서 많은 게 하고 싶었었나 보네.


그리고 드는 생각은 ’ 정말 어지간히 도망가고 싶었나 보다.‘입니다. 현재 나의 실력으로 어디에 취업을 할 것인지, 도대체 취업이라는 것을 할 수는 있는 건이지 모든 게 불확실한 시절. 자꾸만 등 떠밀리듯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했기에 느꼈던 답답함이 결국에는 나를 해외로 튕겨 보내버렸나 보다.


여하튼 그렇게 호주에서의 1년 유예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온전히 두 발로 살아간 나날들

 호주의 모든 가난한 워홀들이 그렇듯 저 역시 주머니가 매우 가벼웠습니다. 알바에서 모은 돈을 초기 정착 비용으로 사용하였고 앞으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한 일자리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집안의 지원으로 학원을 6주가량 등록비를 내주어 교육도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과 오후 시간에 학원을 가기 위해서는 늦은 오후 시간의 알바가 필요한데 그런 일자리를 구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일이 필요하였기에 우선 마트에서 새벽 청소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새벽 2시에 마트에서 청소일을 시작하여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아침 6시쯤이 됩니다. 그럼 가볍게 샤워를 하고 학원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청소일을 하며 매일같이 마트를 가도 정작 속 시원하게 장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생활비가 고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모든 것을 아끼고 또 아꼈습니다.


호주에서는 제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백지로 돌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저는 그곳에 가족도 없었고, 몸을 기댈 연고지도, 지인도 없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에게 먼저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깝게 다가서고 싶어도 보잘것없는 아시아 남성으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매력 포인트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순수한 외로움이 뭔지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무한한 자유로움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꿈이 무엇인지(뭐가 되고 싶은지), 어디 취업하고 싶은지, 몇 살에 결혼하고 싶은지. 한국 사회에서 연령대별로 꼬리를 물고 들어오던 모든 물음들이 사라졌습니다. 한국의 관계에서 나오던 수많은 관심들. 그러한 관심의 부재가 주는 편안함도 분명 있었습니다.


호주에서의 삶은 ‘처음으로 온전히 두 발로 세상에 디딘 순간’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화려하지 못해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던 1년이었습니다.


생선튀김 아닌 피시 앤 칩스

 1년의 시간 거의 전반에 걸쳐 허리띠를 강하게 졸라매었던 나날들. 그 시절의 저에게도 간혹 즐기는 사치 행위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말에 항구에 정박해 있는 레스토랑형 보트에서 판매하는 피시 앤 칩스 미디엄 사이즈를 주문하여 바닷가 밴치에 앉아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피시 앤 칩스가 영국에서 유명하듯, 영국과 뿌리를 같이하는 호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에 하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좀 의아함이 들었습니다.  무슨 생선튀김 따위가 대표음식이라는 거지.. 내 지갑 사정은 생선튀김을 위해 부릴 여유는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먹어보고 싶은 수많은 음식들 중에서 돈을 아낀다고 참고 사는데 생선튀김을 굳이..


 어느 날 항구를 따라 발길이 지나던 자리에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생선 튀기는 고소한 냄새가 코 끝을 강하게 자극하였습니다. 마침 배도 고파왔고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아 한번 먹어보기로 하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항구에 상시 정박해 있는 배안에 자리 잡은 식당으로 손님들이 배 외부에서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주문을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덩치가 큰 호주인 아저씨는 뱃사나이인지 요리사인지 분간이 어려웠습니다. 약간 살찐 뽀빠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표정도 말투도 거친 상남자로 상냥한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뽀빠이 아저씨가 갓 구운 피시 앤 칩스에 무심하게 소금 뿌려 포장지에 싸서 저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입을 먹었는데, 그 이후에는 이 아무것도 아닌 튀김 요리의 팬이 되어 버렸습니다.


 노릇노릇한 튀김 겉 부분은 두툼한 생선살을 더욱 커다랗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커다랗게 한입 베어 물면 귓가 가득 튀김 씹히는 소리로 꽉차오릅니다. 소금의 짭짤함과 입안 가득 들어오는 두꺼운 흰 생선 속살의 조화. 단순한 생선튀김이라 여기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주저하던 나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심한 놈.


 지금 떠올려보면 호주 워킹홀리데이라는 1년의 기간 동안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난 아껴야 하니까.. 이런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순 없지’,

‘지난번에도 여행 갔는데 또 가기에는 부담스럽겠지’


 스스로를 제약하고 한계를 짓는 프레임을 만들고 그 틀에 스스로 들어간 소심했던 내 모습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동시에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지. 열심히 했잖아?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확실한 건 한 손에 튀긴 생선을 들고 항구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음식을 먹던 그 순간들이,

 저에게는 평생을 돌아보며 잊지 못할 한 장면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맛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나 그때의 그 맛이 그리워져 집에서 피시 앤 칩스를 만들어 먹곤 합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요리사 고든램지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참고합니다.


 피시 앤 칩스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히 두툼한 생선 고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밀가루 반죽을 만들 때 적정량의 맥주를 섞어 주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맥주로 반죽한 밀가루를 적당한 온도의 기름에서 잘 튀겨내면 방안 가득 맛있는 튀김 내음과 ‘와삭’ 거리는 먹는 소리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튀김 냄새와 적어도 하루는 함께 동행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강력한 냄새.

집에서 하기 번거로운 음식임에는 확실하지만 이젠 외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먹을 기회가 많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종종 pub과 같은 술집에 가면 피시 앤 칩스를 볼 수 있었는데, 근래에는 점점 보기 힘들어집니다. 사실 우연히 메뉴에서 발견을 해도 반갑지만 주문까지 잘 이어지지 않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생선튀김 따위는 별로인 걸까요?

아니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타스매니아 바닷가 벤치에서 먹던 그 맛과 느낌을 주지 못해서 일까요?


삶의 여유도, 돈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심지어 그 흔한 친구조차 없어 정말 사서 고생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과 타스매니아.

하지만 햇볕 가득 빛나던 바닷가와 풀내음 가득하던 잔디, 아무도 없는 공원의 여유를 몸에 품었던 그 순간이 여전히 그립습니다.


‘언젠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반드시 다시 한번 온다.’


호주 시절 내내 마음속에 품었던 다짐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운 미션으로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꿈을 꿔봅니다. 햇살 가득 빛났던 그 순간이 다시 내 삶에 현실로 돌아오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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