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지칠 때 끓여보는 스튜요리
독립하여 보니..
2014년 집에서 독립하여 2022년 결혼하기까지 8년의 시간을 자취 생활을 하였습니다. 회사를 옮길 때마다 혹은 회사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거기에 맞춰 이사를 다녔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물론 자주 이사를 다니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 준비가 필요하고 이사할 때마다 해당 지역에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살면서 이사를 참 많이도 다녔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살 때에도 짧으면 2년, 길어야 4년. 계속해서 이사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정들만하면 떠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어렸을 때는 스트레스였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나름의 장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내어 보지 않으면 어떤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듯이, 동네도 진득하니 어느 정도 기간을 지내봐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역의 매력과 동네의 특유의 분위기 등은 잠시 머물러서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저는 이사와 책을 읽는 것이 유사하다고 표현합니다. 단순히 동네를 방문하는 것이 책의 겉표지와 제목만을 본 것이라면, (혹은 머리말 정도까지) 지역에서 살아보는 것은 그 책을 마저 읽는 것과 같습니다.
집에서 나와 느지막이 결혼을 하게 되는 40살의 나이까지 혼자였으니, 꽤 적지 않은 시간을 홀로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지내보니 다행히도 저는 혼자인 삶이 나쁘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사실 초반에는 혼자인 삶이 너무 괜찮다고 느꼈습니다. 우선 아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진정한 나만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낼 때에는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완벽하게 마음 편하게 있기에는 불편한 경우 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필수 부가결하게 서로를 맞추고 살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여하튼 이제는 눈치 볼 필요가 전혀 없어졌습니다.
혼자 살아보니 괜찮더라,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생각보다 저에게 주어진 자율적인 시간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있다고 해서 마냥 늘어져 있지 않고 활달하게 움직였고 다양한 활동들을 했습니다. 물론 시간을 잘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혼자서 완벽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쳐 있는 사회의 굴레에서 완벽하게 차단되는 시간이 훌륭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저도 물론 그런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 것에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MBTI 중에 파워 J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저는 무언가 계획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금요일이나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세상 도태되고 루저가 된 기분을 느꼈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가족들과 함께 살던 시절에도 있었는데 혼자 살게 되면서는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도 비어있는 주말 스케줄을 참지 못하였는데 혼자 사는데서 오는 외로움이 더해져 그런 성향이 더욱더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울 틈이 없도록 일정을 빡빡하게 만들어갔습니다. 사회인야구, 골프, 피아노 레슨, 여행, 술자리, 소개팅 등 잡을 수 있는 일정들을 최대한 밀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삶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한 행동들이 일부분 삶을 즐기고 살아가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왕성한 사회적 활동 속에서 약간의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무리 속에 나라는 존재를 넣어 외로움을 없애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던 시도들. 그 시도들이 다 헛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내 삶이 나아지는데 대한 답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습니다.
병적으로 집착했던 스케줄이 아무리 완벽하게 짜여 저도 저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무리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서면 마음이 허무했고, 외로움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순간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복리로 불어나는 외로움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에도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지만 당시에는 정신적인 외로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은 시대가 ‘가족이 같이 사는데 왜 외롭다는 거지?‘, ’자꾸 딴생각을 해서 그래,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그러지 ‘라는 생각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막연하게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해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왜 친구들과 같이 웃고 떠들고 있는데 가슴 한편은 허전한가’, ‘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진정 마음을 교류할 사람은 왜 없는가’, ‘왜 이렇게 나는 혼자인가’ 등의 감정에 집중할 때가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도심 속 수많은 인파 속의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누구에게 전화를 걸지 몰라하던 그 장면을 보며 격하게 공감하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고, 스스로가 귀엽기도 좀 합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직장에 취직하여 사회에 진입하면서는 그런 고민들을 당분간 접어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에서의 생존의 문제는 이전까지 제가 다루던 어려움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회사 생활 적응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외로움을 가볍게 눌러버렸습니다.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직장 생활을 함께 씹으면서 버터줄 수 있는 동지가. 그들과 어울리며 버텨 넘겼습니다.
어느 정도 직장 생활에 적응을 해서일까요? 더 시간이 지난 최근에 이르러서 잊고 있던 인생의 본연의 외로움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복리로 불어난 이자를 붙여서 나타났습니다. 청년기 외로움에 대해 고민하다 사회생활이라는 큰 벽을 맞이하여 정신없이 넘어왔듯이 결혼이니 육아니 등의 다음 벽으로 넘어갔으면 외로움 같은 사치를 느낄 틈이 없었을까요?
여하튼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 없듯이, 커져가는 외로움 역시 조절하기 어려운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외로움이 피크로 치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장 서러운 순간’ 1위를 꼽으라고 하면 단골로 등장합니다.
‘혼자 사는데 아플 때’, 바로 그때입니다.
혼자 살 때 아프면, 정말 서럽더라.
저는 잔병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만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끙끙 앓아눕는 편입니다. 혼자 지내던 여느 날, 그날 유독 몸이 좋지 않아 비에 젖은 강아지 마냥 낑낑대며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집이 유난히 해가 잘 들어왔는데 아무리 따사롭게 볕이 비춰도 몸에 도는 냉기를 도저히 떨쳐 낼 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괜찮아 지기를 기대하며 하염없이 누워있다 갑자기 외로운 마음이 들어 전화기를 들어 봅니다. 외롭고 아플 때일수록 가장 편하게 보고 싶은 상대가 생각 나는 법.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려 봅니다.
“엄마 뭐 하세요? 어디신데요? 목소리? 그냥 자다 일어나서 좀 잠겼나 봐. 아냐 별일 없어요, 쉬세요 “
아무 일 없듯 무뚝뚝한 아들은 금방 전화를 끊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햇살도 주지 못한 따뜻한 기운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힘들 때 가족은 목소리 만으로도 기운을 줄 수 있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 기운을 양분으로 삼아 한껏 처져 있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워 봅니다. 그리고 가까운 마트로 발길을 향합니다. ‘좋은 음식 먹고 빨리 나아야지…’ 온 힘을 다해 장을 보기 시작합니다.
소고기(혹은 닭고기)와 토마토홀, 버섯과 몇 가지 야채를 삽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스튜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대신 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는 혼자 삽니다. 온전히 지금 내 힘만으로 이 상황을 버텨 나가야 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요리를 합니다.
오랜 시간 낮은 불로 끓인 음식이 많은 열을 품고 있어 냉기가 들어선 몸을 따스하게 해 주는데 좋습니다. 스튜 요리는 오랜 기간 끓여야 하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술 뜨기만 해도 따뜻한 기운이 몸 안에 퍼져 옵니다. 몸만 따뜻해지는 게 아니라 지쳐 있는 정신도 조금은 일으켜 세워주는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한 번에 다 먹기 쉽지 않은 양이기에 미리 나중에 먹을 몫을 남겨 잘 모셔 둡니다. 그러고 다시 몸을 침대에 누운 뒤 달콤한 낮잠을 청하며 휴식에 들어갑니다. 몸 안에 기운이 다시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까 남은 스튜를 다시 끓여 먹습니다. 오래 끓이고 재탕하면 더 깊은 맛이 나는 미역국처럼 스튜요리도 그 사이 맛이 한층 더 깊어져 있습니다.
지금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스튜를 종종 요리합니다. 얼마 전, 와이프가 몸이 좋지 않다고 해서 비프스튜를 끓여 주었습니다. 치아바타 빵을 조금 함께 내주었는데 맛있게 그릇을 다 비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플 때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면 감사합니다만, 아픈 누군가를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음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혼자보다는 둘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