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그날을 함께하던 한 그릇
배달하면 역시 짜장면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우리 나가지 말고 그냥 시켜 먹자.”
어여쁜 동생의 딸이 세상에 첫 발을 디딘 지 어느덧 100일이 되던 날. 한참 장마가 짙던 7월의 빗줄기가 유난히도 굵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100일 된 아기를 축하하기 위해 우리 가족도, 사돈댁도 모처럼 한자리에 함께 하였습니다. 머나먼 길을 이른 아침부터 비를 뚫어가며 힘들게 모이느라 다들 다소 지친 기색이 있었지만 어두운 구름 속에 환희 비추는 태양과 같은 미소를 머금은 아기 얼굴을 보며 비에 젖은 날씨와 피로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동생 내외의 집에 10명이 넘는 사람들도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많은 사람이 있기에 크기가 넉넉지 못한 집인데 자주 보지 못해 사이가 어색한 사돈댁과 함께 있으니 유독 좁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한 집안이 가득 차게 사람들로 넘쳐났던 기억이 얼마만인지. 갑자기 대가족이 모두 모여 명절을 치르던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서로 어깨가 닿을 듯이 다닥 붙어서 앉아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서로 몸을 부비며 지냈던 옛 집안의 정취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감정이 되살아 나면서 오는 반가움이 들었으며, 동시에 오래간만에 느끼는 낯섦과 불편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불편한 감정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난감함으로 나타났으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사람이 부딪끼며 생기는 정과 같은 따뜻함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오늘의 호스트인 동생이 생각했던 원래의 계획은 집에서 소박하게 100일 기념 잔치를 치르고 다 같이 식당으로 이동하여 식사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새 생명을 축하해 주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습니다. 아기도 어른들도 이제는 모두가 조금씩 피로를 느끼고 있을 무렵, 동생이 미리 예약해 놓은 고깃집으로 이동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안 그래도 어느덧 정오의 끼니때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모두들 허기를 느끼고 있었기에 너나 할거 없이 외출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내리는 폭우의 거센소리가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집안에 잡아 두었습니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짙은 비가 오는 날 이제 갓 100일이 된 아기와 외출하는 것이 걱정되었던 가족들은 나가지 말고 그냥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는 게 어떻냐고 의견을 내었습니다. 여러모로 나가서 외식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저도 선뜻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장마의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아 성인들도 밖에 돌아다니기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다수의 빠른 동의가 이루어졌고 나가고자 했던 계획을 수정하여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매끄럽게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만 이후 가장 어려운 숙제가 남아있었습니다.
“뭐 시켜 먹지?”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을 시킬 것이냐는 너무나도 어려운 난제. 와이프와 둘이서 이 문제를 풀라고 한다면 30분은 가볍게 보낼 수 있습니다. 모두의 어색한 침묵이 잠시 이어지고 누군가가 너무나도 쉽게 답을 제시합니다.
“중국요리나 먹지 뭐.”
인원이 적을 때에는 서로가 의견을 내고 협의를 도출하기 힘든 질문인데 희한하게 여러 명이 있으면 싱겁게 결정이 나곤 합니다.
의견이 많은 소수보다 의견이 적은 다수의 합의점 도출이 더욱 쉬운 것 같습니다.
새 출발의 음식, 짜장면
무엇을 먹을지 의견을 받고 배달앱을 통해 주문이 들어갑니다. 비가 세차게 오고 있는 데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의 양이 성인 10인분 이상의 만만치 않은 양이라는 점을 볼 때, 빠른 시간 안에 도착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한참의 대기 시간과 공복에 따른 허기짐을 예상하며 다 같이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하나 되어 일사불란하게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며 갑자기 묘하게 신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분 좋은 날인건 분명하지만 그렇게 신나는 날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함께하는 시간을 자주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은 사실 불편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상대가 신경을 써서 응대해야 하는 대상일 경우에는 부담감으로 인해 더욱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분명 지금의 자리는 그런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불편한 대상, 좁은 공간, 많은 사람들. 하지만 역으로 이러한 사실들이 저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대 가족이 집 안에서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감정을 회상시켜줬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릴 적 명절날이 되면 친척들이 모두 모여 함께하던 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방안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만큼 마음이 감정으로 가득 차오르던 그 시절의 기분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한분씩 곁을 떠나면서 조부모 세대와 함께 사라지고 있는 대가족 문화가 어린 새 생명이 오니 다시금 활기가 불어나 살아난 것 같았습니다. 이래서 집안에는 아기 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걸까요. 새 생명의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옛 시절의 향수를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항상 새로운 출발을 할 때 중국요리와 함께 하였습니다. 저는 살면서 잦은 이사를 하면서 다양한 동네에 살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르는 동네에 이사를 가서 첫 끼니는 항상 짜장면으로 해결했습니다. 이제 막 이사를 왔기 때문에 아직 주방이 정리가 되지 않아 요리를 해서 식사를 준비하기가 어려웠고, 지금에야 다양한 식당들을 배답앱을 통해 손쉽게 음식을 주문하고 배달받을 수 있었지만 과거에는 중국음식을 제외하고는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마땅히 없어 중국요리에 의지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사를 가서 짐을 모두 옮기고 어느 정도 이삿짐이 정리가 되면 하루의 고된 노동으로 인한 배고픔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배달시킨 짜장면을 먹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먹던 짜장면은 그 어느 때보다도 꿀맛이었습니다. 이제 막 이사라는 고된 노동이 끝나간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성취감. 그리고 식사 끼니를 지키지 못할 정도로 기다린데 대한 배고픔에 짜장면의 맛을 배로 맛있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막 새로운 환경에서 새 출발 하는 데에서 오는 막연한 희망과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나아질 거다’라는 믿음이 아직은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채로 가장 큰 원형의 그대로 마음에 담아볼 수 있는 것도 이사 간 첫날의 특권이었습니다.
새 생명의 출발을 축복합니다
집에서는 항상 둘이서 식사를 해오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함께 식사를 하며 여러 가지 생각들과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엄마와 동생과 나. 옛날 세명의 한 가족이 이사를 많이 다니며 그때마다 온 가족이 짜장면을 먹곤 했던 모습이, 동생의 딸이 태어난지 어느덧 100일이 되어 새 생명의 시작하고 있음을 축하하는 오늘과 많이 겹쳐 보였습니다. 어느덧 동생의 본인만의 가족을 이루어가는 새로운 이정표를 써 내려가는 모습을 곁에서 함께 하면서 이유 없이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은 유독 짜장면과 함께 탕수육을 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꼭 이삿날이 아니어도 함께 많이도 짜장면을 먹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둘이서 함께 꼬깃꼬깃 접힌 돈을 들고 함께 중국집으로 향했습니다. 첫 사회 생황을 하며 월급을 받아 주머니에 처음으로 여유를 느껴보던 시절, 생색내듯 동생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하면 그때도 우리는 중국요리를 함께 했습니다.
그러한 하나하나 옛 우리 가족의 모습의 기억들이 이제 동생내외의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보며 오버랩되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 과거를 보여주었습니다.
너무도 어여쁜 조카의 눈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있을 수 있는지 탄복하며 미소 짓지만, 지금 저를 더 웃음 짓게 하는 것은 그보다 온전한 가족의 모습이 생긴 동생을 바라보는 기쁨입니다.
이들의 행복과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언제나 평화로울 수 있도록,
오랜 시간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새 생명의 시작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