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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곰 Jun 01. 2023

처음 느낀 양갈비

첫 느낌인 별로였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먹습니다.


강렬했던 첫 만남

흔히 첫 만남, 첫 경험은 쉽게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특히 그 첫 느낌이 강렬할수록 더욱 기억 깊숙한 곳 한편에 단단히 자리를 차지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몇몇 음식들을 처음 접했던 순간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혜화동 대학로에서 처음 먹어 보았던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닭다리. 코엑스에서 처음 한입 베어 물었던 배스킨라빈스 초콜릿 아이스크림. 그때의 강렬했던 첫 한입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이런 음식도 다 았구나 느꼈던 순간. 지금은 예전의 강렬함은 없어졌지만, 그 기억만큼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순간의 기억도 있습니다. 처음 베어 무는 순간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음식. 미간에 주름을 지게 하고 바로 뱉어내야 할지 꾹 참고 삼켜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 순간. 음식에 얹어진 고수를 처음 접했을 때. 삭힌 홍어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을 때의 그 느낌.  그리고 양고기를 처음으로 맞이했을 때.


처음 접한 양고기는 특유의 콤콤한 냄새가 불편하여 쉽게 입으로 가져갈 수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이건 썩은 고기인 건가? 혹시 고기가 상한 건 아닌가…?라는 의심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힘들게 입으로 가져갔지만 계속 씹고 있다가는 토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양고기와의 첫 경험은 꽤나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양고기 음식이지만 예전에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일부 지역에 가야 양꼬치 집들이 있었고, 대중들에게는 양꼬치가 아닌 이상 양고기를 먹을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 역시 양고기를 접할 기회를 성인이 될 때까지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상황에 의외의 공간에서 처음으로 양고기를 접하게 됩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저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자 했습니다. 새벽에는 일을 하고 오전에 어학당을 다니던 이십 대 중반. 저는 호주 타스마니아 대학교 어학당에 있었습니다.


어학당은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일본 등 각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한 반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영어를 배우기에도 좋은 환경이지만 무엇보다 각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의 생소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이 각자 나라의 고유의 음식들을 준비하여 점심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제가 어떤 음식을 준비했었는지는 사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기억나는 건 히잡을 쓴 사우디 아라비아 학생이 집에 만들어 온 전통 음식이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쌀보다 모양이 길고 점성이 적어 흩날리는 중동식 쌀 위에 양고기를 얹어서 찐 요리였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하던 나이. 모든지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한 숟갈 떠서 호기롭게 입으로 가져와 보았습니다.


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코를 통해 양고기의 냄새가 전달되기 시작하는 순간 ‘아뿔싸!’ 고기 덮밥 정도로 쉽게 생각했던 저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입에서 쉽게 씹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수밖에 업순간. 짧은 순간 뱉어 볼까 고민도 했지만 지금 뱉었다가는 아랍권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을 거 같은 마음에 억지로 입에 욱여넣고 씹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이거 큰일이다…헛구역질 나올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어색한 웃음을 띠어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혼심의 힘을 다해 목구멍으로 넘겼습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그 이후로 양고기 음식이 들어간 음식은 한동안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첫인상의 선입견만 이겨내면

처음 접하는 문화의 불편함.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 이질감에서 오는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일종의 컬처 쇼크인데요. 어떠한 것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일부는 유독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 불편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자주 접하며 그 어색함을 줄여가다 보면 어느 순간 친숙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양고기가 그런 음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냄새 맡기도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 접할 기회가 늘어나고 친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 친구들과 함께 했던 무서운 양고기의 첫 경험 이후에도 세계 최대 양고기 생산국인 호주에서 양고기를 접할 기회는 계속되었습니다. 같은 집에 살던 브라질 친구가 함께한 음식을 먹자고 했을 때도, 홈 바비큐 파티에 방문한 호주인도 자연스럽게 양고기 음식을 들고 와서 저에게 권했습니다.


그때마다 두려운 것은 양고기 자체에서 오는 냄새와 식감의 괴로움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제가 느꼈던 그 역함이 다시금 재연될지 모른다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안 좋은 기억에 대한 선입견.

어느새 마음속에 생겨난 선입견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항상 마음을 다잡아 보고 끊임없이 시도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다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매번 새롭게 도전해 보았고,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양고기가 맛있어지는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와 양고기는 잘 맞는 사이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고수 역시 그러한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가까이할 수 있는 음식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같은 마음으로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끝끝내 친해지지 못한 음식들도 많이 있습니다.


개불과 멍게라던가.. 홍어 같은 음식은

많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너무나도 먼 친구로 남아 버렸습니다.


사람, 그 인연의 이질감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생기는 이질감이 있습니다.

특히 그 사람이 나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친하게 지내기 어렵습니다.


또한 사람은 음식과 다르게 그 사람도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양고기는 저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고 당연히 선입견도 없겠지만, 사람은 저를 수시로 평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없던 인연을 누군가와 이어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가장 사랑하는 와이프는 직장에서 만난 동료입니다. 6년가량을 알고 지냈는데 그중 3년은 회사 동료로, 나머지 3년은 동료이자 연인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와이프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 못했습니다. 일할 때의 와이프는 차갑고 무정했고, 가끔은 불친절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그 이면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함과 정성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 알 수가 없다고 사람 역시 그러했습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친해지기도 어려울 것이라 믿었던 직장 동료와 연인이 되어 기념일에 함께 양고기를 만들었습니다. 양갈비를 예쁘게 쌓아 만든 양갈비 크라운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습니다. 기념일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느낌도 함께 선사했습니다. 그렇게 어색했던 사람과 음식이 새롭게 맺어져 하나 되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다시금 새로운 것에 관대해질 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조금씩 사라집니다. 이미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들이 많아져 안에서 더욱 굳건해져서 강한 선입견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좋고 나쁜 것에 대해 가지게 되는 확고한 생각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 새로운 식당에 가서 시도하기보다 이전에 자주 가던 단골집이 가고 싶습니다.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아티스트의 노래라 하더라도 예전에 듣던 노래만 못합니다. 아무래도 옛 노래에 마음이 움직이고 언제 들어도 더욱 편하게 감동을 받습니다.

사회 생활하며 새로운 사람들은 계속해서 접하게 되지만 쉽사리 마음을 통하기 어렵습니다. 자유로운 시간이 생기면 가장 오래된 친구를 찾아갑니다.


나와 다른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고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남과 나를 구태연하게 맞춰가려고 노력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따라서 나와 다른 남의 생각과 행동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어느덧 저 역시 나이가 들고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 안에 폐쇄적인 성향이 짙어질수록 편협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을 피해 가기 어렵습니다. 고여 있는 모든 물은 반드시 썩는다. 비단 물과 같은 음식뿐만이 아닙니다. 나라는 사람도, 내 안의 생각도 갇혀 있는 순간 진정 사람의 성장이 멈칠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다른 것들을 접하고 느끼고 그 안에서 유의미한 배움을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언젠가 양고기처럼 좋아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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