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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곰 Apr 17. 2023

크림 아닌 계란 까르보나라

잘못 알고 있던 수많은 사실 중 하나

까르보나라는 리치한 크림이 제맛이지

까르보나라의 첫 경험을 생각하면 철이 없고 덜 영글었던 20대 초반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들이 조금은 서툴고 거칠었지만 지금보다 외모는 푸릇푸릇했던 시절. 당시에 베니건스, TGIF, 아웃백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이 태동하던 시절로 이제 막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하던 무렵이고, 그 외에 서양 음식을 먹기 위해서 피자헛, 도미노피자 등의 피자 전문점을 가거나 혹은 쏘렌토, 뽀모도로 같은 스파게티 전문점을 많이 찾던 시절입니다.


그중에 코엑스몰에 삐에트로라는 스파게티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요리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셈타워 측 코엑스몰 광장에 커다란 맥도널드가 있었는데 그 바로 옆에 위치해 있던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규모가 꽤 큰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전반적인 인테리어 분위기는 북미의 팬케이크 하우스나 웬디스 버거 같은 미국 레트로 감성이었지만 판매하는 음식은 정통 이탈리아를 표방하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다소 이질적인 짬뽕 공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직 20살이 채 안된 달곰은 그곳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까르보나라라는 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때 처음 맛을 보았던 까르보나라 파스타는 강한 크림 맛과 입안 가득 씹히는 베이컨의 맛이 자극적인 맛을 선사했습니다. 크림의 단맛과 베이컨의 짠맛의 조화와 면에 꾸덕하게 묻어나는 크림의 텍스쳐까지.. 이전까지 가장 많이 먹어본 파스타였던 학교 급식에 나오던 빨간 토마토 비빔국수와는 너무나도 차원이 달라서 ‘와 이런 음식도 다 있구나’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맛이 어찌나 좋았던지 그날 이후 저의 No.1 파스타는 단연코 까르보나라였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번 까르보나라를 먹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학생이었던 당시의 주머니 사정은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는 작은 욕심도 채워주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까르보나라 파스타가 너무 너도 먹고 싶었고, 인터넷을 통해 요리법을 검색하고 재료를 사 와서 집에서 무작정 만들어 먹고 하였습니다.


요리 경험이 많지 않았던 제가 만든 파스타가 전문점에서 먹은 것과 동일한 퀄리티를 선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만든 까르보나라는 크림에 끓인 듯, 우유에 끓인 듯 어설픈 면 덩어리였습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냥 다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이든 다  맛있게 먹었던 시절입니다.


까르보나라에는 크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어릴 적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창문을 닫은 채로 선풍기를 켜고 잠이 들면 죽는다’라는 괴담처럼...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말도 안 되는 허위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의심 없이 믿다가 사실이 아님을 알았을 때 사람이 느끼는 허탈함의 크기도 커지는 법입니다.

   

유사하게 저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에 대해서도 오랜 시간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까르보나라는 크림 파스타를 대표하는 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반에 많이 알려졌듯이 본래의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는 크림이 아닌 계란 노른자와 파마산 치즈로 만든 꾸덕한 소스에 구운 판체타(혹은 관찰레)를 곁들여 만드는 요리입니다.


수많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아메리칸드림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음식들은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해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까르보나라 역시 자극적인 맛을 내고자 크림을 섞어 풍미를 보태어 왔고 한국으로 넘어왔을 때는 계란은 없어지고 크림만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까르보나라는 대한민국에서 크림 파스타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들 줄 아는 유일한 양식 요리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훨씬 다양한 요리를 할 줄 압니다.)


본연의 맛이 궁금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매트릭스는 지금의 현실이 실재가 아닌 가상의 세계이고, 사람들은 모두 캡슐 같은 곳에서 기계에서 사육된다는 설정의 영화입니다. 캡슐에서 사육되는 사람들을 가상세계에 접속시켜 그 안에서 서로 만나 살아가게 한다는 대단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 주인공 니오가 일행과 식당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기계는 과연 ‘닭고기’의 맛을 어떻게 알고 가상 세계의 사람들에게 맛을 ‘입력’ 해 주는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가상 세계 속에서 느낀 닭고기의 맛은 사실 실재의 맛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실들이 실재가 아니거나, 틀리거나 다를 수 있다는 의식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열심히 블로그 및 유튜브 검색으로 공부하여 내가 스스로 만든 소위 ‘전통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보며 영화의 그 씬이 떠올랐습니다.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에 대해 이게 맞는지 끊임없이 의구심이 들어서였을까요..


계란 노른자와 파마산 치즈를 섞고 후추로 향을 더한 소스에 면을 비비고 판체타(베이컨과 유사한 돼지고기)를 곁들인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는 꾸덕하면서도 짙은 치즈 향이 매력적인 요리입니다.

이탈리아에서도 로마 지역에서 특히 잘 먹는 음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를 가본 적이 없어 까르보나라는 물론 아직까지 전통 이탈리아 파스타를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이탈리아를 여유롭게 여행하며 그동안 내가 만들어온 음식들과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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