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럽게 추억 한가득 속에 넣은 한 그릇
가요 시상식, 종각 카운트다운, 소주병
텔레비전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10대 가수가 한 팀 씩 나와서 누가 대한민국의 최고 가수인지를 겨루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 그 일 년 동안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따금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같이 노래를 흥얼거려보기도 합니다. 아직 어려서 가사의 뜻을 깊게 헤아리지 못했으나 그 리듬을 따라 콧노래를 맞춰보는 것은 어린아이도 곧잘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잘 모르는 가수의 무대가 시작되면 마음속으로 도저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0대 가수라 인정할 수 없다며 엄마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늘어놓기도 해 봅니다.
“왜 저 머리 다 벗어진 아저씨가 대한민국 10대 가수야? 저 아저씨 별로인데!”
그럼 어머니께서 웃으며 나지막이 대답을 해주십니다.
“왜? 엄마는 좋아하는데- 좋기만 하네”
어머니 말고 주변에 있는 다른 어른들은 제 투덜거림에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자정을 향해가는 야심한 밤이지만 모두들 대낮처럼 부단히 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만 빼고 다들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새해 첫날 아침에 먹을 만두를 빚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어른들의 부지런함은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바쁘게 일하시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고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너무나도 부질없어한 게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은 세상 한량으로 살아가고픈 작은 아이의 시야에서 더욱 고단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듬직하고 안전한 세상의 울타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외부의 모든 걱정과 근심들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그런 방파제처럼.
잠시 시선을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 그들의 손끝으로 옮겨 움직임을 따라가 봅니다. 먼저 도마 위에 밀가루를 소량 뿌려주고 오백 원 만한 크기의 반죽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병 외부의 라벨을 물에 불려 벗겨놓은 짙은 녹색의 소주병을 밀가루 반죽 위에 굴려 줍니다. 병이 굴러갈 때마다 커지는 밀가루를 원형이 될 수 있도록 고른 방향으로 크기를 늘려 줍니다. 반죽이 원에 가까운 동그라미 만두피로 탄생했다 싶으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수저로 만두소를 퍼서 넣고 꾹꾹 잘 눌러 줍니다. 피의 가운데가 눌러짐에 따라 살포시 오므라든 만두피의 맞닫는 부분을 엄지와 검지를 사용하여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하나의 반달 모양이 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는 반원의 양쪽 끝을 눌러 붙여 주면 어여쁜 만두가 완성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단순한 행동의 반복이라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직접 해보면 만두 만들기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어른들은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만두를 만들었다 해도 믿을 만큼 너무나도 능수능란하면서도 태연하게 앉아 만두를 빚습니다. 할머니와 엄마, 고모들이 둘러앉아 마치 백일장 나온 소녀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랑하듯 서로의 만두를 가지고 뽐을 내는 작은 경연장을 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다 비슷한 만두일 뿐인데 서로 상대방이 만든 만두를 칭찬하기에 바쁩니다. 누구의 만두는 크기는 크지만 예쁘다, 누구의 만두는 앙증맞게 귀엽다 등 옆에서 듣다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대화를 주고받아야 더 열심히 만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서로의 노동을 격려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저는 천근만근 스스로 감겨오는 눈을 힘겹게 붙들어 메며 버티고 있지만 점점 견디기가 힘들어 옵니다. 밝아오는 새해 종소리가 듣고 싶은 마음에 온 힘을 다하여 안 자고 있는데 도대체 왜 아직도 시간은 12시가 되지 않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라면을 먹고자 물을 끓일 때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 담긴 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오히려 물이 더 늦게 끓어오른다고 12시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계초침을 아무리 바라바도 시간은 참 더디게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보고자 나도 만두 하나 빚어보겠다고 엄마를 졸라 보지만 음식 가지고 장난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핀잔만 돌아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 나기에는 심심함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만 만들어 보겠다고 조르고 조르며 덤비니 어머니께서는 마지못해 하나 만들어 보라며 어머니 옆 한편의 자리를 내어 줍니다. 그럼 들뜨는 마음으로 잽싸게 어머니 옆으로 달려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계시던 불안한 마음에 하나만 만들어 보라며 조건을 달았습니다. 우선은 알았다고 신난 마음에 건성으로 대답을 합니다.
이게 뭐라고 너무나도 신이 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은 접하려면 한참 멀었다며 손에서 멀리하게 했던 소주병도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소주병을 조물조물 굴려서 만두피를 만드는 일도 어딘가 찰흙을 가지고 놀던 것과 비슷해 보여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른들과 같이 둘러앉아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뭔가 그들과 동등한 입장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은근히 뿌듯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열과 성을 다하여 열심히 해보지만 만들어진 만두의 최종 결과물은 어른들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삐뚤고 빼뚤어진 못난이 만두.
“에구, 음식 하나 망쳤네. 이제 그만하고 저리 가 있어!”
어느새 손에 쥐어주었던 소주병을 원래의 주인에게 빼앗겨 돌려주고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자리를 옮겨 봅니다. 그러고 문득 보니 어느덧 시계가 자정을 향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화면에서는 카운트 다운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제야 제야의 종소리가 밝아 옵니다. 두 손을 깍지껴 모으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소원을 빌어 봅니다. 새해에는 행복한 일만 가득하게 해달라고.
모든 것을 넣을 수 있었던 가족이라는 만두피
어느덧 세 번을 넘어 네 번 강산이 바뀔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상은 정말 많이 변화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절 당연 했던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잃어버린 모습 중 하나는 새해를 기다리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던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만두를 먹기 위해 온 가족이 모여있던 거실의 모습입니다. 이북 출신인 할머니께서는 삼팔선 이남의 땅에는 함께 명절을 보낼 가족이 없었습니다. 어느덧 자식들이 모두 결혼을 하자 대부분 남한 땅에 가족이 있는 며느리, 사위들을 위해 본인은 신정에 제사를 지내며 모임을 가지고, 구정에는 각자의 집으로 갈 수 있게 집안의 규정을 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온 가족은 새해를 함께 맞이하기 위해 말일에는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새해가 밝으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다 같이 만둣국을 한 그릇씩 비웠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상을 두 개 이어 연결을 하고 식사를 한상 가득 차립니다. 그러면 집안의 어른들이 먼저 식사를 배불리 하고 자리를 비워줍니다. 그러면 그다음 사람들이 자리를 이어받아 식사를 계속했습니다. 자리를 새롭게 채운 사람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모자란 찬과 국들을 계속해서 리필합니다. 큰댁 어른들이 먼저 숟갈을 뜨시고 자리에서 물러 나면 그다음 집안사람들이 식사를 이어가는… 두세 번 정도 테이블에 사람들이 않았다가 일어나며 돌아가고 나면 드디어 저에게도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제 차례쯤 왔을 때쯤에는 이미 두우번 가량의 식사가 진행되었기에 그 흔적이 지저분하게 남아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어린 마음에 그러한 모습이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비비며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불편함. 분명 그 시절에는 그러한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정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식구의 한자 의미가 같은 입으로 먹는다는 것에서 할 수 있듯이 모두가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우리가 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 행위를 가장 강력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명절 때 다 함께 모여 한 껏 식탁을 어지럽히며 모두의 수저가 오고 가는 식사의 순간입니다.
대가족 문화가 남아있던 시절에 가능했던 추억들입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가족의 단위가 빠르게 작은 단위로 분열되어 버리면서 현재는 그러한 문화가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예전에 이러한 대가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실점이었던 우리의 조부모 세대가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들어 주신 대가족의 거대한 틀 안에 모두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쏙이 꽉 찬 커다란 만두를 감싸고 있는 만두피 같았습니다. 많은 것들은 가득 담고 있는 만두와 같이 다양한 삶이 하나의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과 가난의 시절, 그리고 그 뒤에 큰 성취감을 주던 경제성장의 시대를 뒤로 하고 우리의 조부모 세대들도 이제 조금씩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부모님과 영원한 작별을 하면서 동시에 이제는 명절에 찾아가던 자신의 집, 뿌리를 상실하게 됩니다. 안 그래도 몇 명 되지도 않는 본인의 자녀들은 또 왜 이렇게 늦게들 결혼하고 아기들을 낳지 않는지.. 그렇게 기존의 대가족 문화와 함께 고향이라는 개념도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최근에는 명절 때 친지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여행을 다니는 등 개인적인 시간을 즐기는 편입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시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즐거움과 여유가 달갑기도 합니다. 나 한 몸의 영위만을 생각할 때 세상은 생각보다 편하게 느껴집니다. 동시에 마음 한편으로는 모두가 함께하며 북적이고 살아가던, 돌아오지 못할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일이나, 도착해서 음식을 하기 위해 작은 집에서 복닥이며 음식 준비를 하던 것들. 내 몸은 지금보다 여유롭지 않지만 마음만은 가득 차 있던 그 시절의 나날들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매년 돌아오는 명절이 언제나 항상 같은 줄 알았습니다. 그때의 그 모습들이 항상 그 자리 그대로 있어줄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태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먼 훗날 우리 부모님 세대가 떠나가면 더 작아진 가족이라는 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이 시간을, 과거의 대가족에 대한 향수를 느끼듯이 아쉬워할 순간이 올 것 같습니다. 끝내는 지금을 사랑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을 사랑하고, 서로의 얼굴을 더욱 간절하게 한번 더 바라보며 지금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