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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곰 Apr 15. 2023

백발이 되어도 오일파스타 해줄께-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시금치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누가 뭐래도 오일이 최고야

 “오늘 저녁에 파스타 해줄까?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 10번에 8번은 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시금치 파스타, 달곰은 오일 파스타를 제일 잘해”


그녀는 언제나 제가 만드는 파스타 중에 오일 파스타가 최고라고 말을 합니다.

제 오일 파스타가 훌륭한 건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파스타가 단순히 오일 파스타인지는 분명히 알길은 없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제가 다양한 파스타를 만들어보고 싶다 아무리 말을해 봐도, 그녀는 오일소스로 만들어 달라 단호하게 선택합니다.

그래도 저항하듯 로제니, 크림이니, 토마토니 열심히 구슬땀 흘려 만든 파스타를 그녀 앞에 내려 놓아 보지만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아.. 이것도 맛있는데.. 그래도 나는 오일파스타가 제일 좋아!”


제가 요리를 즐겨하는 이유는 스스로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어서도 있지만, 맛있게 먹는 상대방을 바라볼 때의 뿌듯함이 좋아서 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항상 오일 파스타에 가장 적극적으로 리액션하며 칭찬을 해주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점점 그 모습을 보고 싶어 다른 파스타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디가서 요리를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래도 오일 파스타만은 점점 마스터(master)가 되가는 것 같습니다.




강한 채소향과 아삭함이 일품

그중에서도 그녀의 최애를 꼽으라면 단연 시금치 파스타입니다.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는 시금치는 봄에 가장 맛이 좋아 겨울에서부터 초여름까지 자주 먹고 있습니다.

봄철의 포항초는 크기는 작지만 대신 향이 짙고 맛이 깊은 작은 거인이며, 길이가 상대적으로 긴 일반 시금치는 평생 떨어지지 않을 듯 엉겨 있는 한 쌍의 커플처럼 면과 함께 포크에 감겨  들어오는데, 그 식감이 아주 훌륭합니다.


그렇게 한입 가득 담으면 시금치가 머금고 있던 오일 소스가 향긋한 푸른 향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행복함으로 퍼져 나갑니다.


포항초가 작은 이유는 바닷가에서 강한 바닷바람을 많이 맞다 보니 길게 자라기 힘들어서 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작지만 강한 향을 내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강한 바람 때문에 옆으로 자란 포항초는 대신 적은 면적에 영양분이 골고루 퍼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삶도 어쩌면 이와 같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닷바람과 같은 적당한 인생의 시련과 경험들이 삶의 향기가 더욱 풍족해질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할 지도 모릅니다.

저희 커플은 오랜시간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만나게 되었습니다만, 우리의 경험들이 더욱 단단한 유대를 이끌어내어 삶이 더욱 아름다운 향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백발이 되어도 파스타 해줘

 그녀가 제게 종종하는 말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할아버지가 되어도 파스타 만들어주는 백발 신사가 되어달라고. 백발 요리사라고 해야 맞는 표현 일까요.


언뜻 들으면 쉬운 요청입니다만 그 짧은 말속에는 다양한 전제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여 백발이 될 때 까지 생명을 유지할 것’, ‘늙어서도 프라이팬 정도 가뿐히 돌릴 수 있는 건강한 늙이가 되야 할 것’, ‘서로 겸상을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 ‘라면이 아닌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수준의 경제력을 유지할 것’ 등.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응당 선행 되야할 일들이 많습니다만, 어차피 모두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기에 흥쾌히 알았다고 대답을 해봅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녀의 오일 파스타 선호 취향은 바뀌어 있을지, 저는 과연 다양한 파스타를 할줄 아는 경험 많은 홈쉐프가 될 수 있을지 지금은 전혀 알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있을지,

우리가 과연 몇 명이 되어 있을지,

파스타 맛은 여전히 괜찮을지..

아무것도 장담할 순 없지만


백발이 되어도 그녀를 위해 파스타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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