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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곰 Jun 11. 2023

아내가 차려준 아메리칸 브랙퍼스트

아침을 누군가가 챙겨주는 행복


인생의 절반을 살고 만난 나의 반쪽

우리 부부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만나 마흔 살이 넘어 결혼에 성공하였습니다. 남들 다하는 결혼 성공이라는 표현이 거창하기는 합니다만, 뒤늦게 이룬 뜻을 담아 그렇게 표현을 한번 해봅니다. 그만큼 누군가를 만나 평생을 같이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정확히는 실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전까지 우리 둘은 꽤 오랜 시간 각자 혼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한 대리로 승진했을 무렵인 32살 때 집에서 독립했습니다. 지방 출신인 와이프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면서 풋풋한 여대생이던 20대 때부터 혼자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1인가구로서의 삶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한 생활력과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둘의 기본적인 성향 역시 자립심이 높고 자기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혼자서 잘 놀았고 심심하면 놀거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무료하지 않은 1인가구로서의 삶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혼자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더욱 견고하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이러한 독립적인 성향이 높아질수록 혼자인 삶을 이겨낼 힘이 생겼습니다. 이대로 계속 살아간다 해도 삶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혼자 있는 삶이 편해져 갈수록 남들과 맞춰 살아가는 성향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인 삶이 편했고, 남들과 함께 하더라도 인스턴트 적인 관계가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 연인이라 하더라도 함께할 때 함께하고 또 따로 떨어져 혼자서 살아가는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갔습니다. 기존에 부모님이 만들어준 가족에서는 벗어나고, 다음 내 가족을 만드는 것은 아직 때가 안된 가족 유예 기간. 아무 가족에게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듯한 외로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자유의 달콤함도 역시 함께 존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누군가와 맞추며 살아가는 삶이 가능할지에 대한 걱정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혼자인 게 편한데 이제 와서 어떻게 남과 맞추며 살아가지? 주변을 보니까 쉽지 만은 않아 보이는데. 아마 결혼 적령기가 지난 미혼 1인가구들의 생각은 모두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와이프의 첫인상 역시 비슷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본인의 삶의 취향이 확고하고, 하고 싶은 것은 해야만 하고, 남들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과 삶이 중요할 것 같은 느낌. 저 역시 한참 그런 삶을 살아오던 때라 우리 둘이 평생을 함께하는 언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둘이 만나서 연애를 하고 보니 생각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 와이프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0년 전이었으면 우린 정말 일찍 헤어졌을 것 같아.”

제가 답을 합니다.

“무슨 소리야.. 사귀지도 못했을 것 같은데?ㅎㅎ”


최근 재미로 사주타로를 보러 갔는데, 선생님이 가장 정답을 얘기하였습니다.

“너네는 10년 전에 만났으면 지금쯤 이혼했을 운인데, 지금 만났기 때문에 케미가 아주 좋네.”


우리 마음을 읽은 걸까요? 우리는 그 말에 기분 좋은 웃음으로 동의하였습니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

성인 남성 초혼 평균 혼인 연령이 32세인 시대. 우리는 남들이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유아기를 보낼 시기에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나 혼자만을 생각하여 내 즐거움과 재미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같은 시기 다른 사람과 맞추어 가정을 꾸리며 고생을 하던 시기에 우리는 맘 편하게 놀고, 연애하고, 휴식을 취하고는 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했던 것들을 조금은 늙은 몸을 이끌고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제 10년 전처럼 이성과 밤을 새워가며 싸울 체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새벽에 우는 아이를 달래기에도 둘 다 힘에 부칠지 모릅니다. 인터넷에서 떠돌던 말이 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아이를 키우라고 젊은 시절 밤을 새울 수 있는 체력을 주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술 먹는데 그 체력을 모두 소진한다.” 그렇게 까지 한심하게 산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몸이 예전같이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대신 나이 들어 늦게 결혼하는 대가로 성숙해진 ‘인내심’이라는 무기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예전보다, 즉 젊었을 때의 나보다 기준입니다.) 나이가 들어 얻은 경험으로 이제 다양한 경우에 대응 가능한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를 토대로 이전보다 성숙하게 타인과 대화를 이끌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 와이프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했던 발언들과 일부 행동들을 토대로 조심스럽게 추측 건데 이전보다 ‘포용력’이라는 능력을 쌓아 혼수로 준비해 온 것 같습니다. 그녀가 가장 많이 한 대사 중에 하나가 “난 예전에 정말 배려심이 없었는데,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너한테 가장 잘한다”입니다. 이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연륜을 바탕으로 둘 모두가 성장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다고는 합니다만 두 사람이 ‘어른스럽다 ‘고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날들을 모두 이겨낼 만큼 충분히 성숙해진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글쎄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남들과 같은 인생의 궤도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껏 고무되어 있고 너무나도 신나 있습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인생의 유급생이었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로 올라갈 때에 함께 발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같은 학급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개미와 배짱이에서 배짱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여름에 아무리 바이올린을 켜며 즐겁게 놀아도, 기분이 마냥 좋지많은 않았습니다.


우리는 또래보다 많이도 뒤늦게 결혼이라는 스테이지에 올라왔고 무척 기분 좋은 설렘으로 마음이 한 껏 두근거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 시작하는 결혼 생활의 갈길이 아주 멀다는 것도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언제 행복을 느끼나요?

사십 년을 따로 살다 이제 고작 반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무언가를 평가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결혼 생활에 대한 짧은 단상을 올리자면 “아직 까진 너무 좋다”입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을 혼자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우선 누군가가 집에 함께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 오는 위안감이 있습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그 느낌. 그리고 그 만족감에서 오는 편안함과 안도감. 그러한 감정들이 주는 인생의 긍정적인 힘들이 삶에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살다가 함께 하는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러한 위안감이 불편함을 덮어주기도 합니다. 잠잘 때 누군가 옆에서 뒤척여 불편함을 느끼다가도 그 온기에 마음이 편해지곤 합니다. 혼자만의 내 시간이 너무 없어져 답답하다가도 누군가가 옆에서 함께 생활하는 데에서 위안을 삼고는 합니다.


서로에게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 변해갑니다. 서로 다른 두 색이 자신의 색깔을 조금씩 변해가며 서로를 맞추듯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해주는 행동으로 마냥 기분 좋아지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주로 서로를 위해 배려하며 행동하는 일들의 대부분 이 범주에 속해있습니다. 와이프는 제가 팔베개를 해주거나, 파스타를 만들어 줄 때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와이프가 행하는 많은 일들에서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가장 좋은 순간 중에 하나는 와이프가 차려준 아침 밥상을 받았을 때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아침상을 차려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커다란 희생에 기반한 행동의 결과입니다. 이른 아침 시간부터 일어나서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는 그 마음. 부모님이 차려주는 것이거나, 돈을 지불하는 방법이 아닌 이상 이런 호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와이프가 만들어준 아침이 더욱 기분이 좋아지며, 그중에서도 보기 좋게 접시에 담아준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좋아합니다.


고소하게 버터를 입은 빵과 바삭하게 구워진 베이컨.

풀내음 가득한 루꼴라와 채소 그리고 과일.

마지막으로 아메리카노 한잔.


신혼이라서 가능한 아침 일지도 모릅니다. 아기가 생기거나 혹은 아내가 이제는 귀찮아하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조만간 이런 호사가 끝날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는 그런 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미래에 벌어질 일 따위 제가 쉽사리 예측해 보았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측한다고 해도 결과는 항상 예상에서 벗어나기 일쑤입니다. 지금은 그냥 맛있는 아침 한상을 마냥 즐겨보겠습니다. 어쨌든 이 또한 다시 오지 못할 순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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