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두 눈과 두 눈으로 재차 확인한 후 당이 떨어진 것처럼 급격히 할 말을 잃은 채로 말없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아이들 틈에서, 남편은 어중간한 거실 한가운데 널브러져 누웠다. '몸져누웠다'는 표현에 가까운 모습으로 누운 남편을 보니 우리가 지금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잠시 후 곧 머리에 하얀 띠를 둘러맬 것 같은 남편이 유레카를 외치듯 얘기했다.
"여보! 테스트기가 오류일 수도 있대! 그러니까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해보자!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끝이라는 단어가 왠지 부적절해 보이지만 우리는 정말로!셋째 계획이 없었기에 필사적으로 임신이 아니기를 바랐다. 내가 두아이를 키우느라 긴 터널 같은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에 복귀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기에,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돼버릴 것이 두려웠다.
"그.... 래? 그러자 그럼..."
오류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1시간 후에 2차 임신 테스트를, 밤새 잠을 설 친 끝에 새벽 4시에 3차 테스트를 해보았다. 네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삼세번의 테스트기 오류 확인(?) 도전에도 두 줄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붉은빛이 더 진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확연한 두 줄들.jpg
남편과 나는 앞으로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해 갈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과 당혹스러움으로 하루를 보내다 퇴근 후 산부인과에서 만났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으며 같이 산부인과를 올 일이 또 생길 줄이야 하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5주 아기집이 선명히 보인다는 소견을 들었고, 이는 곧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까꿍.jpg
'진짜 있네.'아기집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는 병원에서 나와 그냥 마주보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때 묶었어야 했다는(?) 원망과 함께 남편의 등을 한 대 쳤다.
병원 진료로 인해 귀가가 늦어질 수밖에 없어서 시어머니께 아이들을 맡겼던 터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어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마주했다. 아이들 역시 퇴근이 늦어진 우릴 보고
"엄마! 어디 갔다 왔어?"
하고 물었다. 왠지 무거운 우리 부부의 얼굴을 보는 세 명을 향해 나는 초음파 사진을 내밀며
"여러분. 이것을 좀 보세요~."
하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해지셨고 아이들은 이게 뭐냐고 물었다.
"너희들한테 동생이 생겼대."
그전까지 농담으로 동생이 생기면 어떨 것 같냐는 아빠의 물음에
"아~ 귀찮아. 안돼!" 하던 아이들은만세를 하면서 좋다고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의외의 반응이었다.둘째 딸아이는
"내 꿈이 이루어졌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세상에나.
시어머니는 병이 아닌 것에 안도하셨지만, 나와 같은 심정을 느끼신것같았다.
"이제 좀 편하게 지내나 싶더니. 어쩌겠냐~." 하시고는 고개를 절레절레하시며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 후 며칠이 못되어 우리가 사는 작은 마을에는 나의 임신 소식이 쫙 퍼졌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마찬가지였다. 신이 난 아이들이 동생이 생겼다며 동네방네 만나는사람들에게 자랑을 한 탓이었다. (얘들아 제발... 소문 좀 그만 내줄래? 엄마 아빠 좀 거시기하거든? 하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
내가 한 학부모를 만났을 때 자기 딸이 갑자기 동생을 낳아달라며 하도 애원을 해서 난감했다는 이야기와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종종 셋째 자녀가 있는 지인을 만날 때마다 내가 화들짝 놀라며
"우와~ 애가 세명이나 있어요? 진짜 대단하시네요. 두 분이 사랑이 넘치시나 봐요~ 호호호호." 하고 장난 삼아 던진 그 말들이 그대로 내게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입방정을 떤 탓이야. 뿌린 대로 거둔 거지. 아흑."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되는 이유를 나는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남편의 지인들이 남편에게서 셋째 임신소식을 들을 때마다 웃음을 머금은 얼굴에 장난기 가득 담긴 목소리로
"이야~ 축하한다! 돌잔치는 꼭 해라!" 한다고 한다.
곧 반백살이 다되어 가는 남편이 셋째 돌잔치를 하게 될 거라 그 누가 생각했겠냐 말이다.
난 그렇게 프로임신러가 되었고 남편 역시 다둥이 부모의 대열에 합류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