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탄이 어딘가에 소개되었는지 한참 동안 조회수가 많아서 행복했습니다. 글을 계속 이어가라는 응원으로 받아 으쌰 으쌰 잘 써보겠습니다!
나는 입덧 약을 먹으며 일상생활이 훨씬 수월해졌다.
산부인과의사 선생님은 입덧 약을 처방해본 최장기간이 4주라고 했지만 나는 그의 기록을 경신하고있었다. 그다음 달 4주분을 또 처방받고 그다음 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입덧 약을 의존하는 게 심리적인 효과가 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쯤 되면 약 없이 괜찮겠지 싶어 약을 안 먹고 잠들었다가 그다음 날 여지없이 결코 멈추지 않는 구토 급행열차를 다시 맛보고는 했다.
(참고로 입덧 약은 12시간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에 전날 취침 전 약을 먹고, 아침에 또 먹는다. 그래야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
나는 다시 농담도 하고 껄껄껄 웃을 만큼 상태가 호전되었고, 간간히 토하고 위가아프기는 했지만 임신 초기보다는 견딜 만 해졌다. 그렇게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주변도 살피며 사람답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직장에서 눈치가 보였다.
다른 게 아니라 아기를 갖기 위해 불임치료를 다니던 여직원이 있었는데 그녀가 자꾸 마음에 씌었다. 나는 계획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기가 쉽게 생겨버리는 것이 괜히 미안했달까. 물론 그녀도 나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냥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랬다.
남편에게 말하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단다. 그의 직장에도 힘들게 가진 아기를 유산해서 서럽게 울던 직원이 있어서 얼마 전 위로해주었고, 임신이 안돼서 휴직을 하는 직원에게 잘 쉬다 보면 좋은 소식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 다독여주었다고 했다.
우리는 비교적 임신 자체는 수월하게 되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시급함으로 따지면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일 텐데 하는 힘없는 이타심이겠지.
누군가가 도와주어도 쉽지않은 일.
이 와중에 그 어느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데 혼자서 으쌰 으쌰 하며 아빠의 몸에서 나와 길고 긴 여정을 지나 생존해 결국 하나의 생명이 되어버린 생존력 끝판왕 정자가 대단하게 느껴지긴 했다.
남편은 종종 말했다.
"어떤 놈이 나올까 너무 궁금해! 얘는 세상을 바꿀 만큼 강력한 놈일 거야!"
세상에 제 발로 찾아온 녀석에게서 우리는 당돌함과 강인함을 느꼈다. 설령 우리 만의 착각일지라도 그렇게 우리에게 와준 아기를 소중히 잘 키워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망발을 들은 적이 있어 황당하기도 했다.
"셋째? 이제 그만 낳아야지~! 너 안 힘드니?"
"너네 피임 안 했어? 우린 잘 관리하는데 어떡하냐 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가 했냐고?
놀랍게도 사촌 언니와 사촌 오빠였다.
아주 친한 사이냐고? 아니올시다.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전화통화 한번 안 하는 사이다.
난 그들이 왜 저런 이야기를 내게 서슴지 않았는지 여전히 이해불가다. 둘 다 아들 한 명씩 키우는 사람들이라 내가 미개해보이기라도 한 걸까? 뭐 표면적인 의도는 나를 걱정한다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진짜 나를 위해주려는 것이겠는가? 그냥 지껄여대는 소리지.
하나마나한 소리는 삼켜야 한다는 걸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의 단면적인 행태라고 생각하며 그만하라고만 잘라말했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면 난 그들에게 뭐라 말했을까?
누가 헛소리를 하였는가! 누가 헛소리를 하였어!
글을 쓰는 오늘 우리는 '비 계획성 셋째 임신'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딱 상황이 우리와 비슷했다. 아이 엄마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에게 친정엄마가 또 임신이냐며 욕지거리를 했다는 추가설명이 있었다.
집이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부부 사이도 좋아 아이가 태어나도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는데 그 어떤 이유로 그녀는 욕을 들어야 했을까 의아했다. 딸을 너무 사랑하기에 그 딸이 고생할 것이 싫어서 분노했다고 하기엔 부적절함이 한도를 초과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과도하게.
임신을 해도, 못해도 남들을 의식하고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네 모습이 왠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