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중입니다. #7화
인생에 순한 맛은 없다
9월부터 출산휴가가 시작되었다.
10월 첫 주가 출산예정일이니 아마 9월 넷째 주에 수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내게 최소한 3~4주의 여유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었다. 그동안에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그러자 마치 핑크빛 배경이 깔리고 산뜻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착각이 들었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좋아져 버렸다.
'마지막 휴가'를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기에 고민하다가
1. 보고 싶던 친구, 지인들 만나서 점심식사 하기
2. 살림살이 정리(물품 정리, 부엌 대청소, 옷 정리)
3. 적당히 많이 쉬기
이렇게 3가지로 큰 틀을 잡았다.
9월이기는 하나 아직은 8월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계절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데다 몸은 점점 무거워져 여러 어려움이 따랐다. 애들 옷 정리하는데도, 서랍장 정리만 해도 꽤 힘이 들었다. 재빨리 움직일 수도 여러 번 앉았다 섰다 하는 것도 못하니 속도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아니면 당분간 해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미룰 수는 없었다.
나는 입덧 약 덕분에 음식 섭취가 가능했던 게 원인이 된 건지 몸무게가18킬로나 늘어버렸다. 두 아이들 임신 때는 약이 없었고 오롯이 입덧을 다 견뎌내야 했기에 8킬로 정도씩 쪘던 게 전부라 관절에 큰 무리가 없었는데 이번은 달랐다.
치골은 금방이라도 아래로 무너져 내릴 듯 일어서고 걸을 때마다 통증이 일었고, 발목은 욱신거렸다. 발과 다리가 퉁퉁 붓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뒤뚱뒤뚱 걸어야 오히려 편했다.
두 아이는 계속 부푸는 풍선을 보듯 나의 배를 보며 매일 놀라워했고, 걱정이 되는지 내게 물었다.
"엄마! 이러다 배가 터지는 거 아니지?"
"절대 안 터져! 터지겠다 싶을 때 아기가 알아서 나오거든. 신기하지?" 하고 대답해주면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나는 그렇게 매일 출산에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이었다.
9월 셋째 주 어느 날이었다. 바쁘게 준비해 출근길로 달려 나가던 것에서 벗어난 내가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챙기는 것이 꽤나 익숙해진 시점이었다.
사촌들이 할머니 댁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이는 자기들도 자고 싶다며 짐을 챙겨 신나게 시댁으로 갔다. 코로나로 등교를 않던 시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일은 산부인과 외래진료가 있었고 수술까지는 최소 1주일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만날 사람 목록 중 고작 2번을 완료한 후였기에 3번 인물에게 며칠 내로 만나자고 연락하려던 참이었다.
저녁에 티브이 보면서 연락해 봐야지 하며 베란다와 거실 사이의 샤시를 청소했다. 퇴근길의 남편에게 뭐 맛있는 걸 사 오라고 할까 생각하다가 이내 다음 주에 부엌을 정리할 계획을 생각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월요일에는 오른쪽, 수요일에는 중간 쪽 뭐 이렇게 조금씩 나눠서 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혼자 끄덕이면서. 그러면 얼추 집 정리는 완료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하던 그때 전화가 왔다.
남편이 전화했나 했더니 오빠다.
친정아빠가 갑자기 한쪽 다리가 저리고 떨리신다며 병원 응급실로 향하고 있다는 거다. 당장 심하진 않은데 밤새 더 아프실까 봐 가는 거니 큰 걱정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1인만 동반 입실인 데다가 나는 임산부니 올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나니 집 안에 적막이 흘렀다. 창틀을 닦던 것을 멈췄다. 배가 뭉쳐왔기에 침대에 누웠다. 아빠가 아프시다니 어떡하나 싶고 아이들이 그리워졌다. 나의 불안함을 스스로 들키지 않으려면 아이들의 왁자지껄함 같은 것이 필요해 보였다.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퇴근이 늦어지는 남편을 기다리며 일부러 티브이를 틀어 집안을 여러 소리로 채워 넣었다.
예감이라는 건 정확한 걸까? 아니면 우연히 들어맞은 것에 불과할까. 잠들 기 전 문득 오늘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가서 자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날 새벽 4시 5분.
나는 툭 하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한 번이지만 매우 분명하고 강했기에 바로 몸이 일으켜졌다. 화장실로 향했다. 아래로 뜨끈한 것이 주르륵 흘렀다. 출혈이었다. 완전 전치태반인 내게 출혈은 긴급한 상황이니 전화하고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오라고 했던 담당 의사의 말이 귀에 쟁쟁하게 울려왔다. 두려움이 왈칵 몰려왔다.
나는 안방 문을 열고 엉거주춤하게 서서 새벽에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은 큰소리로 남편을 외쳐 불렀다. 야근하고 온 남편이 한번에 깨지 않아 힘을 실어 불러야했다.
"여보! 여보!!!"
아이들이 있었다면 모두 놀라고 겁에 질릴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집에 없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자꾸 내뱉으며 나는 집을 나섰다.
그게 새벽 4시 10분의 일이었다.
새벽의 서늘함 때문일까 자꾸 몸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