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필름 무비 시네마

라이킷 26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Daniel Dec 20. 2020

매기스 플랜 (MAGGIE'S PLAN)

한여름밤의 꿈, 매기의 세 가지 플랜 그리고 알레고리

영화 <매기스 플랜>의 주제는 ‘사랑과 상상력’이다. 이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영화는 <한여름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으로부터 많은 것을 빌려 쓰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 중 하나인 <한여름밤의 꿈>이란 어떤 이야기인가?

옛날 그리스 아테네에서 꿈 많은 시인 ‘라이샌더’를 사랑한 검은 머리 아가씨 ‘허미아’가, 아테네의 자신만만한 귀족 청년 ‘디미트리어스’와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라이샌더와 함께 아테네를 벗어나 오베론의 숲으로 사랑의 도피행을 한다. 그런데 허미아의 친구이며 또한 디미트리어스를 사랑하는 ‘헬레나’, 그리고 디미트리어스가 그들을 쫓아 숲으로 들어온다. 얽히고 얽힌 두 쌍의 연인들은 숲에서 밤을 맞게 되고, 숲을 지배하는 요정의 왕 오베론과 여왕 타이테니아의 다툼 그리고 장난꾸러기 꼬마 요정 퍼크의 장난과 실수에 휘말리면서, 그들은 꿈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한여름밤을 보내고 모두 행복한 아침을 맞게 된다.

뉴욕에 살고 있는 ‘매기(Maggie)’는 퀘이커 교도이고 대학에서 예술전공 학생에게 비즈니스 기회를 연결시켜주는 카운슬링 책임자로 일하고 있으며, 친구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소소한 친절을 나누는 젊은 독신 여성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던 매기는 적극적으로 혹은 우연히,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세 개의 플랜을 순차적으로 세우고 실행하게 된다.

첫 번째 플랜은 대학 동창 ‘가이(Guy)’로부터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엄마가 될 준비가 되었지만, 어떤 남자와도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한 매기는 ‘남편 없는 출산’으로 사랑하는 아기를 얻으려는 것이다. 자신이 인식한 현실을 바탕으로 사랑을 찾으려는 매기의 상상력 넘치는 결단이다.

두 번째 플랜은 ‘빅토리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현대 가족 안의 다이내믹스와 가면에 대한 은유적 비판’을 가르치는 저명한 인류학자이며 방문교수인 유부남 ‘존(John)’에 관한 것이다. 매기는 존이 가족에 대한 자전적인 소설을 쓰고 있으며, 현재 소설 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고를 읽으면서 매기는 존이 소설을 완성하도록 돕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요정의 실수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매기는 인공수정을 시도하던 날 존과 불륜 과정을 거친 후, 사랑하는 딸 ‘릴리(Lily)’를 낳게 된다. 마치 아테네를 벗어나 오베론 숲으로 들어가는 듯한 존과 매기의 사랑의 도피행?

하지만 릴리가 첫 번째 플랜의 결과인지 두 번째 플랜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요정들의 다툼과 장난 그리고 실수로 운명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매기의 세 번째 플랜은 존의 아내, 그러니까 존의 전처인 ‘조젯(Georgette)’과 관련된 것이다. 조젯은 유명 대학으로부터 종신교수 제안을 받았고, 또한 학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는 유능하고 잘 나가는 교수이다. 존과 조젯에게는 십 대의 딸 ‘저스틴(Justine)’과 아들 ‘폴(Paul)’이 있다.

조젯은 혼합 비평 분야의 유능한 학자인 남편 존이 알레고리를 통해 논리를 전개하는 탁월한 학문적 능력을, 온통 알레고리로 가득한 것으로 느껴지는 소설에 허비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며 직선적으로 비판한다.

그런데 매기는 존과의 결혼생활이 3년쯤 지나고 조젯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조젯과 존이 재결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플랜을 세워 과감하게 추진한다. 조젯도 그 플랜에 동참한다. 매기와 조젯은 요정들처럼 존의 눈에 마법의 꽃즙을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엄청난 상상력이다. 하지만 그들의 플랜이 성공할까? 요정들의 다툼과 장난 그리고 실수는 언제나 그들의 플랜에 개입하고, 역시 운명은 예측할 수 없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 확실하다.

이 영화는 매기의 상상력으로 시작된 플랜을 둘러싸고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매우 일상적이면서도 수많은 에피소드와 대량의 대사를 통해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 알레고리를 보여 준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가족에 관한 알레고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기스 플랜>이 가족영화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영화는 가족에 관한 알레고리를 통해, 잘 규명되고 다소 희극화된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면서 ‘현대 가족 안의 다이내믹스와 가면’을 솔직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매기스 플랜>의 본령은 역시, 요정들의 다툼과 장난 그리고 실수로 인해 한바탕 소동을 벌이던 숲 속의 사람들이 그래도 마침내 각자의 사랑을 찾는다는 <한여름밤의 꿈>이다.

매기, 가이, 존, 릴리, 조젯, 저스틴, 폴,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매기의 또 다른 대학 동창 ‘토니(Tony)’와 그의 부인이자 매기의 직장 동료 ‘펠리시아(Felicia)’ 그리고 그들의 어린 아들 ‘맥스(Max)’!

그들에게는 사랑을 찾기 위한 상상력 가득한 플랜이 항상 준비되어 있지만,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개입으로 뒤죽박죽 되고, 예외 없이 그들은 플랜에는 없는 지점으로 흘러간다. 영화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때로는 희극적으로 때로는 의미와 메시지를 던지며 때로는 쓸쓸하게 보여 준다.

그래도 그들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플랜을 위한 상상에 빠져드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