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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ASS Apr 26. 2020

            
서울로 7017

공중에 묶인 서울 시민들


STREET 1 : 보행 - 서울로 

STREET 2 : 건축 - 서울로

STREET 3 : 재생 - 서울로

STREET 4 : 미래 - 서울로




세종대로 쪽에서 바라본 서울로7017


STREET 1 : 보행 - 서울로 

서울시가 만든 특별한 보행 공간을 경험한 후, 현대 도시 사람들에게 ‘보행’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궁금해졌다. 보행은 자유다.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것에서 사람들은 자유 의지를 느낀다. 보행은 가장 원초적이면서 근본적인 이동수단인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SEOULLO의 LL에 형상화된 걷는 두 발은 서울 시민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 같다. 


서울로7017에서의 경험은 특별했다. 대도시 한복판을 자동차 걱정 없이 거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드문 경험이기 때문이다. ‘걷는 것’은 이 고가도로 위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원이었다. 그러나 상쾌함과 더불어 오는 느낌은 찝찝함 이었다. 걷는 행위조차 서울 도심에서는 당연하게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질 좋은 걷기는 일상이 아닌, ‘서울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서울 시민들의 보행 권리는 지상이 아닌 공중에 묶여있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박소현 교수는 서울시의 보행친화정책이 서울로7017과 같은 특정 랜드마크에 국한된 특별 보행으로만 나타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 ‘걷는 도시, 서울’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일반 보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서울로는 주변과 단절하고 대조하는 방법을 통해 스스로의 특별함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전망대에 오른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의 맥락 밖에서 도시를 관조하게 한다. 그러나 공간이 진정으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그들의 삶의 맥락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서울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위니 마스의 '서울 수목원' 원 설계도 (서울 시청)


STREET 2 :  건축 - 서울로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은 서울로7017의 치명적인 허점이다. 고가도로 하부에서 마주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편하다. 나 또한, 세종대로 쪽에 횡단보도가 없어서 지하철역으로 들어간 후 나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야만 서울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용자의 동선은 공간 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디자인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사방으로 진입하는 움직임을 모아줄 수 있는 공간 설계가 서울로7017에 필수적 이었을 것이다. 


위니 마스의 원 설계도를 찾아보니,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연결로가 계획되어 있었다. 특히 기존의 지배적인 동서 방향 축성을 완화하는, 남북을 잇는 크고 작은 구조들이 눈에 띄었다. 연결로는 편의만을 위해 고려된 것이 아닌, 서울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장치이다. 연결을 통해서 서울로는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활기 넘치는 긴 광장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원래의 디자인이 실현되지 못했을까? 구 서울역과 관련된 문화재위원회의 규제, 빌딩 소유주들과의 이해관계 그리고 예산 등 서울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쳤다. 이를 해결하지 못했기에, 팔다리 없이 몸통만 남은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 것이다.


서울로는 위니 마스에게서 버려졌다. 나는 보행의 장애물을 밝혀내고 극복하는 과정까지 서울로 7017의 프로젝트로서 디자이너가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공간을 다루며 마주하는 문제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해결해나가야 한다. 디자인이 창출하는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다면, 그 디자인은 진화된 모습으로 실현될 수 있다. <월간 SPACE -596호->에 실린 위니 마스의 인터뷰를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은 디자이너가 설득의 대상을 국한시켰다는 점이다. 공간의 본질적 이용자인 서울 시민들을 설득했다면, 서울로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식물로 채워진 서울로7017의 상부 


STREET 3 : 재생 - 서울로

시민들을 위한 도시 재생을 표방하는 서울로7017 프로젝트가 정작 시민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거가 아닌 재사용’은 단순히 낡은 물건을 다시 쓰는 것에 불과하다. 생명과 연계하여 ‘도시 재생’이란 도시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한다. 뜻밖의 교차는 도시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로 프로젝트에는 공간이 재생할 수 있게 해주는 틈이 없다. 정부가 공간의 이용 행태를 규정했기 때문이다. 서울로는 시민들을 동서 방향으로만 걷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규율로 채워진 획일화된 공간인 것이다.


칠레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2004년에 슬럼가 주민들과 함께 ‘좋은 집의 절반’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비어있는 절반의 공간은 각 가정이 스스로 완성해나갈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틈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자신만의 집을 성장시키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처럼,  진정한 도시 재생을 위해서도 사람을 위한 틈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주연, 오지안 (공동작품). <조선2015>. 2015. 종이에 수채                                                           


STREET 4 : 미래 - 서울로

미국 도시 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좋은 도시에서는 거리의 발레가 펼쳐진다고 말한다. 되풀이되지 않는 즉흥 공연으로 가득한 거리는 그 자체로 생동하는 공간이며, 도시를 활력 넘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살아있는 도시의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거리’에 있다. 이제는 서울로에서도 발레가 펼쳐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서울 전체에 활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로는 고립된 공중 정원이 아닌, 일상과 얽히고 설킨 공중 거리가 되어야 한다.

중학교 시절 등굣길에 정동길을 걸을 때면,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공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동길은 언제나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로 붐볐고,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공간이었다 . 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역사의 흔적들이 현재의 공간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무대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거리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공연이 정동길을 살아 숨쉬게 만들어 주고 있다. 

 나에게 정동길은 항상 걷고 싶은 거리로 남아있다. 나는 정동길을 걸으며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서울로에서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도록 서울로에 빈틈이 생겨야 하며, 그들의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는 연결로가 갖춰줘야 한다. 서울로의 정체성은 식물을 감상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서울로는 서울 시민들의 빼앗긴 ‘도시를 걷는 경험’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을 잠재하고 있다. 이제는 서울로가도시인들에게 주어진 장기적인 프로젝트라는 것을 시민들 스스로 깨달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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