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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온트 Jan 19. 2021

우리를 기억하나요(우리)

차승연 (고등학교 2학년, 18세)

- 조용한 편. 성적은 중위권. 엄마와 둘이 산다. 의외로 옆반 '김은지'와 친하다. 

사람과 친해지면 못 보던 성격들이 보인다. 편한 사람들 앞에서는 꽤나 쾌활하고, 쿨하다.

그나마 좋아하는 거라면 책 읽기인데, 2학년이 된 이후로는 영 시들해졌다.

올해는 이렇게 산다고 치고, 내년이면 고3이라 진로 문제를 고민해야 되는데

그냥 피하고만 싶다. 어차피 공부하면 엄마처럼 회사원이나 될 게 뻔한 거 아닌가.

승연은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회사에서 겪는 일들을 듣고 있자면 별로 회사원은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승연은 또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그것은 간혹 눈에 보이는 5층의 어떤 문이다.


차영자 (승연 母, 출판사 편집국 부장, 49세)

- 승연을 홀로 키우게 된 이후로 승연의 성을 바꿨다. 이전 성이 뭐였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고,

영자도 먼저 말하지 않는다. 떠나간 사람, 뭐 하러 입에 담아?

영자는 출판사 편집국에 근무하며 주 5일제로 일한다. 부장이 된지는 꽤 됐는데 생각해 보니

여기서 더 올라가고 싶진 않고, 그냥 만년 부장이나 하다가 승연이 취직하면 일을 관두고 싶다.

즐겨 하는 것은 승연과 맛있는 걸 먹는 것, 식탁에 마주 앉아 음식을 씹는 딸의 얼굴을 보는 것이

영자는 언제나 좋았다. 두 번째로는 그런 저녁상을 치우고 드라마를 보는 것. 종종 회사에서 출판한 책이

드라마화 되어 TV에 나오기도 하는데, 영자는 그런 건 안 본다. 일과 관련된 건 퇴근하면 잊는 편.

옆집 성호네 엄마, 윗집 은주네 엄마랑도 친하다. 셋 중에 유일한 직장인이라 평일 낮 수다모임에 끼지 못하는 건 아쉽다.


김은지 (고등학교 2학년, 18세)

- 시끄럽다. 말이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고, 싫어하는 것도 많고, 친구도 많다.

전학 간 학교에서 하루 만에 새로운 반 애들과 단번에 친구를 먹어버리는 확신의 외향적 인간.

그럼에도 은지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승연이다. 자존심이 세서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매달리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은지한테는 먼저 치근덕대게 된다.


510호 여자 (미상)

- 높은 옥타브의 목소리를 가졌다. 수년 전, 몸을 가득 채웠던 공허는 이제 조금 흐려진 듯하지만

완전히 그것이 사라진 건 아니다. 미련의 경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오늘도 노쇠한 부모님과

이제는 얼굴마저 희미해진 그 사람을 머리에 떠올린다. 2주에 한번 부모님 댁에 가 밥상을 차려드린다.

그때가 유일하게 그녀도 밥 다운 밥을 먹는 날이다. 


앞으로,

511호 

520호

548호 

512호 


전라남도 해사시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

그중에서도 승연이 사는 곳은 해사시의 구시가지, 상마동이다.

해사시 상마동 아이들은 해사초등학교, 해사중학교, 해사고등학교를 나온다.

예부터 평원이 있어 쌀농사가 잘 되고, 그만큼 햇살이 찬란하다 하여 해사시인데,

그 햇살에만 의지하면서 살다가 동네가 영 발전을 못 이뤘다.


해사고등학교

전라남도 해사시 상마동 위치.

해사중학교와 운동장을 나눠쓰는 공립학교. 예전에는 학년당 13반까지 있었는데,

어느새 한 학년당 7반까지 밖에 없다.

성적은 해사시에서 중위권. 간혹가다 가뭄에 콩 나듯 서울로 대학가는 녀석들이 나온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공공교육의 산실이라기보단, 인강 듣고 알아서 공부한 애들 덕에 얻은 결과들이다.

지어진 지 오래돼서 여전히 운동장은 흙바닥이고, 손 때 묻은 철봉과 정글짐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상마동에는 부모와 자식이 해사고등학교 선후배 간인 집안이 많다.


삼욱아파트

오래된 5층짜리 아파트 단지다. 총 8개 동이 있고, 중앙에 큰 놀이터를 하나 끼고 있다.

관리하는 관리소장도, 입주민 대표 부녀회장도, 아파트 초입에 있는 조이슈퍼 주인도

근 20년이 넘은 인연들이다. 

이상하게 좋은 시설은 하나도 없고, 다 오래되었는데 사람들이 이사를 와서는 나가지를 않는다.

옆 동의 누구누구가 주민들이 말을 건네는 첫 문장이며, 명절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부친 전을 나눠먹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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