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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May 24. 2024

한국미술의 힘

제주도립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우리 집과 제주도립미술관이 가까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미술관 앞 잔잔한 분수대 앞을 천천히 지나면 어린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이 마냥 좋았던 소녀의 스케치북 위로 시간이동을 하는 것 같다.


서울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규모 있는 전시가 제주도에도 열리게 되면 보통 도립미술관으로 온다.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도 다양한 전시가 있지만 공항과의 접근성 때문인지 미술전시는 도립미술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배를 타고 먼 길 온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들과 마주할 때는 서울에서보다 더 귀중하게 느껴진다.


2022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오랜 시간 수집해 온 한국미술 작가들의 작품들로 지역순회를 하다 9번째로 제주에 개최되었다. 도립미술관 1층 전시장을 꽉 채운 이건희 컬렉션 중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이 첫 번째로 우리를 마중 나와있었다.


[시대의 풍경 Landscape of the Times]

박수근 / 김환기

당대의 작가들은 격동의 시대 속에서 하루하루를 담담히 살아가는 한국인의 일상을 담았고 자연의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인 흔적들은 후손들에게 많은 위로를 선사해 줬다. 박수근, 이중섭 작가의 작품은 할머니의 할머니에게 들었을 것 같은 따뜻하면서도 슬픈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서 봤던 은지에 그린 아이들의 역동적인 모습에서 작가의 동심세계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전통과 혁신 Tradition and Innovation]

이상범- 산고수장

동양화가의 대표적 인물인 이상범은 조선 산수화의 민족적 전통을 잇고 있다. 한 벽을 가득 메우는 병풍 앞에 서니 바람을 맞으며 소를 끌고 가는 아이의 뒤를 따라 발걸음이 움직여졌다. 노수현의 ‘망금강산도’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금강산의 절경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누가 봐도 한국화가의 그림이라고 손 짚을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것이
나의 욕망이었다.
한국의 풍경, 흙냄새, 그리고 그것들을
에워싸고 흐르는 향토시를 나는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_ 이상범


작가들의 작품 옆에 그들의 사상이 담긴 짧은 글들은 그림을 이해하는데 깊이를 더해주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의 고독과 치열함은 어느 정도였을까 생각에 잠기게 해 주었다. 김흥수는 면을 분할하여 추상과 조형의 하모니즘을 구축해 한국의 피카소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느 것이나 나의 것이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이 격렬한 현실 속에 있는 인간의 호흡을 화면 속에 발견하고 모색하고 탐구하려는 것이다.
나는 자유다.’ _ 김흥수


[사유 그리고 확장 Reflection and Expansion]

시대의 변화로 인해 입체주의, 추상표현주의, 초현실주의가 얼굴을 드러냈고 전통과 현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한국미술의 가능성을 확대시켰다.


김기창 / 유영국 /이응노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고갱의 작품이 아닐까 할 정도로 강렬한 색채의 유영국작가, 민속적 화풍이 독특한 동양화가 박생광 작가의 작품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의 삶은 방향 없이 급회전하는 무질서한 현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는 생활에서 기꺼이 도피한다.
자연과 나의 내부로’ _ 장욱진



[시대와의 조우 Encounter with the times]

시_대_유_감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환기미술관, 김창열미술관에서 만났던 작가들 뿐만 아니라 처음 접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예술혼에 오랜만에 가슴이 벅찼다.


제주시 여고생들의 단체관람에 복잡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무료입장의 혜택을 얻으며 함께 전시를 즐겼다. 작품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이 핀 학생들을 보니 나도 그땐 그랬지.. 작가의 작품으로 영감을 받으며 수업을 했던 학창 시절도 떠오르고 친구들의 얼굴도 떠오르고.. 안과 밖으로 꿈과 추억에 젖은 날이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가족들과 한 번 더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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