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바다수영
겨울 내내 장마처럼 비가 오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매서운 날씨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따뜻한 햇살에 봄이 오나 싶더니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초여름의 계절이 성큼 눈앞에 와있다. 제주도의 날씨가 제일 좋을 때는 5~6월과 9월~10월이다. 습하지 않고 벌레들도 없고 햇살과 그늘이 적당한 선을 지켜주어 산을 가도 바다를 가도 다 좋은 시기다.
여름 바다수영을 즐기기 전 적응을 위해 4월에 이른 입수를 한다. 처음 들어갈 때는 얼음물에 머리를 담근 것처럼 시렸는데 지금의 수온은 17도까지 올라오며 철인슈트를 입으면 찬물에 금방 적응하게 된다. 가장 빨리 몸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바닷물로 가글을 하거나 슈트 목부분 안으로 물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 물이 가슴으로 들어와 체온으로 데워져 보온 효과가 있다.
바다수영 성수기니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입수할 날만 기다린다. 주중에는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로 이호테우 옆 현사포구에서 운동을 하는데 6시 입수 시간을 맞춰 가다 보면 떠오르는 해를 만날 수 있다. 내도동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오길 잘했다!’ 생각이 들며 바다에 들어가기 전부터 기분이 좋다. 아침잠을 이겨내고 바다에서 맞는 하루의 시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계절의 여왕답게 5월의 바다는 평화로움 그 자체다. 푸르면서도 진회색 빛이 감도는 수면을 가르며 내 옆의 버디를 따라 오른팔 한 번 왼팔 한 번 물 잡기 리듬을 함께 탄다. 바다에서 버디는 내 생명과 같다. 절대 놓치면 안 되고 목적지를 함께 보며 한 덩어리가 되어 물살을 가른다. 큰 조류를 만날 때 혼자서는 파도를 이길 수 없다. 함께 뭉쳐 발차기를 해야 빠져나올 수 있다.
둘이나 셋이서 함께 글라이딩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때 적당한 조류까지 더해주면 마치 물고기 떼가 된 것처럼 날면서 헤엄치는 기분이 든다. 물론 스노클과 롱핀을 끼고 장비에 의지하지만 수 없이 돌리는 스트로크와 킥으로 2km 남짓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아직도 신기하다.
올해 2년 차가 된 바다짬밥으로 이제 입수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줄어들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바다를 보는 것은 어떤 영화보다 신비롭고 감동적이다.
시야가 좋은 날이라도 내 컨디션이 맞지 않으면 반환점까지의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지고 돌아올 때까지도 몸이 무거운데 파도가 있어도 몸이 가볍고 잘 나가는 날이면 퇴수 후에도 파도를 탔던 그 기운이 남아있다.
제주도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이 계절이 하루하루 아쉬운 마음이다. 섬나라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바다수영을 할 수 있는 토요일은 생각보다 귀하다. 입수가 가능한지 ‘물때와 날씨’ 앱으로 조류와 바람을 확인하다 보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 우리를 허락해 주는 토요일 아침 바다는 어쩌면 신의 영역이 아닐까.
이제 뜨거운 태양 아래 끓어오를 여름바다가 다가온다. 힘차게 헤엄치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