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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May 16. 2024

내가 서 있는 공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


제주에서 꼭 묵어보고 싶은 숙소가 있다. 바로 ‘포도호텔’이다. 둥그런 지붕이 객실을 품고 있는 단층의 숙소는 제주의 자연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고 하는 건축물들을 보면 외형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들도 있지만 이타미 준은 ‘겉’을 보고 들어와 ‘안’에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해 준다. 좋은 것을 보면 결국 거기에는 내가 있고 그 시간과 공간을 내 안으로 흡수시키면서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 같다.


미술관 입구


‘제주 오름을 동글동글한 선 그리고 넝쿨 모양의 포도에 빗대어 설계한 호텔, 전통 판소리의 흐름과 '담기다' '잠재하다' '해방' '열다' '닿다' '혼재하다'와 같은 언어를 공간적 개념으로 발전시킨 작품,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공간을 배치하기 위해 지면을 따라 형성되는 마을처럼 방과 방을 연결하는 중앙 통로를 두었고 이를 따라 낮은 계단을 놓았다, 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돌 자른 벽돌이 섞인 벽 지붕의 형태 부정형의 흐름 등으로 자연발생적인 작은 마을을 형상화했다.’

- 포도호텔 도슨트


이렇듯 이타미준의 건축물은 단순하고 간결하면서도 자연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이 아닌 주변과 어우러짐이 있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풍토, 경치, 지역의 문맥 속에서 어떻게 본질을 뽑아내 건축에 스며들게 할지를 생각한다.

조형은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해야 하고 공간과 사람 자신과 타인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여야 한다.‘

-이타미 준


이타미준은 건축을 완성하는 돌, 나무, 철 등 물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새롭게 탄생함과 동시에 그 자재들이 숨을 쉬고 바람을 통과하고 습기를 머금었다 내뿜는 시간이 쌓이면서 오가는 사람들도 함께 녹아들어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건축을 하고자 했다.


2층 전시장에서 이타미준의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는 재일교포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중간에서 끊임없이 뿌리를 찾고자 했고 한국적인, 동양적인 미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삶이었다. 건축에 대한 치열한 열정을 가족, 후배, 동료들의 목소리로 담아내 진솔한 유동룡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제주에 있는 이타미준의 건축물은 상징적이다. 방주교회, 포도호텔, 수풍석박물관, 두손뮤지엄으로 건축물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환경까지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낸다.


2층 전시실에는 그가 끊임없이 그렸던 스케치와 서예작품, 동양미에 대한 연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겹겹이 쌓인 고독의 시간들을 엿볼 수 있었다.


서재에는 건축에 관련된 전문서적과 일반인들도 접하기 쉬운 그림책들도 있어 대여한 후 읽어볼 수 있다. 창 앞에 책 두 권을 놓고 앉으니 그림 같은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후배들에게 항상 이야기했다는 말을 새겨보았다.


“끝까지 밀고 나가라.”


안과 밖이 모두 예술의 연장선
미술관 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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