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테우 어씽
바다와 가깝게 산다는 건 평범한 일상에 낭만을 만들어준다. 어릴 적 포항에도 살았지만 그때는 바다의 맛을 몰랐다.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나와 먹었던 라면이 맛있었고 밤바다 앞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홍합탕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휴가철마다 힘들게 텐트 치고 튜브에 바람 넣고 수박 한 통과 먹을 것 잔뜩 싸들고 갔을 엄마,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바다의 풍경은 내 기억 속에 희미하다. 하지만 코 안쪽까지 훅 파고드는 바다냄새는 아직도 생생하다.
파란 바다의 물빛이 좋고 파도 소리도 좋지만 바다의 푸른 냄새가 어린 시절로 가는 가장 빠른 최면의 신호 아닐까 싶다.
제주에 살아도 바다에 자주 가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입도 4년 차가 된 지금도 바다를 보면 들어가고 싶어 설렌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지만 모래사장을 밟으며 걷는 것이 유행이라길래 집 근처 바다로 가 맨발 걷기를 해봤다. 3월 즈음 걸었을 땐 약간 추웠는데 수온이 많이 올라온 지금 파도를 발등에 찰랑찰랑 맞으며 걸으니 기분이 참 좋았다.
지구의 기운을 발바닥으로 온전히 받으며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얻는다는 어씽(earthing).
해무 가득한 날 아침 바다수영크루들과 걸었고 또 다른 날은 저녁 식사 후 가족과 걸었다. 안개 자욱한 아침바다는 영화 ‘컨택트’가 떠오르며 앞이 보이지 않는 바다 끝에서 뭔가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신비로웠고 저녁 바다는 한치배들의 조명이 달빛처럼 빛나 손잡고 나란히 걷는 식구들 얼굴을 비춰주었다.
“엄마, 유리조각이나 가시 같은 거 밟으면 어떻게? 발에 해초 밟히고 그러는 거 싫은데…”
“여기 사람들 많이 걸어서 위험한 건 없을 거야. 한 번 맨발로 걸어봐. 폭신폭신 기분 되게 좋다?!”
“어… 정말이네. 생각보다 부드럽다!”
고요한 파도소리에만 집중하면서 앞서 걸은 사람들의 발자국만 보며 멍하니 머릿속을 비우게 되니 텅 빈 몸으로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도 같다.
모래를 힘껏 밟으며 내 발까지 왔다 갔다 하는 바닷물을 느끼고 싶다면, 이야기 나누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잔잔한 이호테우로 함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