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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Jun 17. 2024

글동무들과 윗세에 오르다

한라산 철쭉은 언제 피는가


제주도에서의 삶이 더 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글을 쓰기 때문이다. 기록을 남기지 않고 흘러간 시간들은 점점 흐릿하게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잡지사 인턴으로, 대학신문사에 몸 담으면서 ‘그림’ 다음으로 ‘글’은 가늘고 긴 실처럼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타고난 글솜씨는 없지만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다 보면 문장이 생각나고 그 문장들이 모여 내 마음을 대신해 주는 글이 완성되어 있어 묘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글 쓰는 삶을 선망하며 제주로 이주한 후 김재용작가님을 만나며 글쓰기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동안 글쓰기 수강생들을 모집한다는 많은 안내들을 보며 나는 서랍 속에 숨겨놓은 비밀노트의 열쇠를 손에 쥐고 열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마음 같이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그녀들의 글수다’ 11기 모집글에 귀신에 홀린 듯 나의 연락처를 남기며 그 비밀일기장은 빛을 보게 되었다. 작가님과의 첫 통화는 따뜻했고 함께 할 글동무들이 너무나 궁금했다. 첫 수업부터 나는 우리 집 장녀로서의 무게감을 들켜버렸고 처음 보는 동기들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시원했다. 그렇게 이제는 내 속에 있는 이야기,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됐다. 매일 글을 써야만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니 힘들었지만 써졌다. 글 쓰는 삶이 몸에 배어있지 않다 보니 노트북 앞에 앉아 하얀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조용한 아침이나 아이들이 잠든 후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며 숙제를 했다. 그렇게 내가 쓰고 싶었던 제주이주 후 느끼는 작은 행복과 하나씩 성취해 내는 일들을 써 내려갔다.


매일 글을 쓰며 작가님께 피드백도 받고 수정된 글을 다시 보며 ‘오늘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 ‘내가 이런 생각도 했구나’를 느끼게 되면서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며 자존감도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석 달의 시간은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게 해 주었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어떻게든 글로 남겼다. 잠도 미뤄가며 달렸던 탓일까 수업을 마치고 긴장이 풀리면서 쉬고 싶었다. 매일 쓰던 글이 일주일에 한 번으로, 이주에 한 번으로 늦춰지면서 다시 마음을 잡아야 할 때가 됐음을 느꼈다.


100m씩 오르고 올라
대피소에서 꿀맛 점심

지난 6월 초 한라산이 철쭉으로 물들 무렵, 작가님과 함께 윗세오름에 가는 일정을 함께 하면서 그리웠던 당근과 채찍을 다시 받게 됐다. 이미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거나 작업 중에 있는 선배들도 스스로를 쓸 수 있는 환경에 놓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글 이야기 속에서, 한라산의 기운 속에서 땀 흘리며 에너지를 주고받았다.


출발 전부터 흐린 하늘을 걱정했지만 안개 자욱한 어리목도 운치 있었고 대피소에서부터 거짓말처럼 펼쳐진 파란 하늘에 넋을 놓고 바라봤다. 내려오는 영실코스는 철쭉은 많이 없었지만 절경으로 펼쳐졌다. 여름을 맞은 초록의 한라산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파란 하늘을 보여준 윗세
오름 정상에서 어미새와 아기새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는 삶을 사는 그녀들을 만나고 와서 나도 다시 원고를 수정하려 폴더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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